월간참여사회 2024년 03월 2024-02-26   486

[이슈] 그 많던 ‘수리 장인’은 어디로 갔을까


글 김희숙 소설가,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진행자

지난 1월 내가 진행하는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에 출연한 초대 손님이 “프랑스에서는 옷을 수선할 때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자원순환 관련 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생긴 지원금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전자제품 수리비를 지원하더니 이제는 옷수선비까지 보태준다.

초대 손님에게 추가 질문을 하다가 문득 9년 전 일이 떠올랐다. 집에는 유행이 지나 옷장에서 십수 년째 자리만 차지하는 남동생의 무스탕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처치 곤란 무스탕으로 손주들 조끼를 만들어보겠다며 옷수선집을 찾아갔다. 수선집 사장님은 손으로 옷을 한 번 훑더니 조끼 말고 작은 무스탕도 하나 만들라고 권했다. 1주일 뒤에 가보니까 놀랄 만큼 예쁜 어린이 무스탕과 세련된 조끼가 있었다. 옷에 붙어있던 부자재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활용했는데, 백화점에서 새로 샀다고 해도 믿을 만한 모양새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 집에서 열심히 옷을 고쳐 입었다. 유행 지난 통바지, 기장이 애매한 재킷, 어깨선이 안 맞는 코트 등. 사장님은 “우리 집은 옷을 다 뜯어서 전체를 다시 바느질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다 1년 반이 지났을까. 오래된 원피스들을 고치러 갔더니 사장님이 인사를 했다. “앞으로는 다른 수선집을 가셔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적자가 나서 가게를 닫는다고 했다. 섭섭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아직도 나는 그만큼 수선 솜씨가 좋은 분을 만나지 못했다.

만일 프랑스처럼 우리나라에도 제품을 수선하고 수리하도록 지원하는 법안이 생긴다면, 사장님도 어디선가 옷수선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물건 내가 고쳐 쓴다는데, 이렇게 험난해서야

스마트폰에 청진기를 댄 모습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탄소를 절감하는 자원순환 실천 방식은 옷수선 말고도 많다. 작년 한 해 동안 〈오늘의 기후〉에서는 ‘수리할 권리’ 즉, 수리권을 서너 번 소개했다. 알고 보니 수리권은 생각보다 폭넓은 권리였다.

수리권은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고 있다. “단종된 제품이라 해도 계속 수리해서 사용하도록 부품을 생산해 AS센터에 비치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고, “애초에 제품설계도를 공개하거나 유사 부품은 무엇인지 알려주어 소비자가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소비자가 직접 수리하거나 전파사를 통해 제품을 수리하면 이후 제조사 AS센터에서 서비스를 보장하지 않는 관행이 부당하다”는 요구도 있다.

잘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고 권리인데, 이런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미처 못 했다.

수리권에 대해 방송할 때마다 청취자 문자나 SNS 댓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품은 휴대폰이다. 휴대폰은 액정이 깨지거나 이런저런 굵직한 손상이 가기 쉽다. 이때 제품을 수리하려고 제조사가 지정한 AS센터에 들고 가면 “고쳐서 쓰는 것보다 성능 좋은 신제품을 저렴하게 사는 편이 낫다. 지금 구매하시면 할인행사 기획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기 일쑤다. 수리 비용이 휴대폰 단말기 비용의 40~50%가 될 정도로 비싸면 누구라도 신제품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한 번이라도 지정 AS센터가 아닌 곳에 수리를 맡기면 그 뒤로는 제조사가 AS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출시된 지 조금 오래된 모델은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수리를 거절당하기 일쑤다.

부품 문제는 냉장고·세탁기 등의 다른 전자제품을 수리할 때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골칫거리다. 잘 관리하면서 오래 쓰던 제품인데 고장이 나서 수리하려면 제조사가 부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리만 하면 충분히 더 쓸 수 있는데도 부품 몇 개가 없어서 버려야 한다.

부품을 교체해 수리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얼마 전에 전기밥솥의 성능이 예전 같지 않아서 AS센터에 들고 갔다. 다행히 고무패킹만 교체하면 된다고 해서 기뻐하다가 “고무패킹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갈아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의아했다. 전국의 전기밥솥 사용자들이 모두 1년에 한 번씩 고무패킹을 갈아야 한다는 말인데,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제품을 만들 때부터 달리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전기밥솥을 고칠 수 있는 지정 AS센터는 숫자가 많지 않았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꽤 멀었다. 고무패킹을 들고 먼 길을 돌아오면서, 도대체 지정 AS센터는 왜들 이렇게 멀리 있고 숫자도 적은 건지 궁금했다. 옷은 수선집 어디에 가도 고칠 수 있는데, 전자제품은 왜 제조사의 지정 AS센터에서 수리하지 않으면 마치 불법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엄격하게 금지하는 걸까.

그나마 휴대폰이나 대형 가전은 사정이 낫다. 수리를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 이제는 AS센터도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오디오·카메라는 어디서 고쳐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내 서랍에도 고장 난 로모 카메라 두 대가 어찌할 바 모르고 무려 23년을 잠자고 있다.

그런데 수리권을 방송하던 날, 한 청취자가 “세운상가에 가면 뭐든 다 고쳐줘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제작진이 취재해보니 사실이었다. 전자제품 자원순환의 최일선에는 뜻밖에도 이제는 사라져가는 전파사들이 있었다. 세운상가나 유명 전자상가에 자리 잡은 신의 손, 노익장 기계공들은 온라인으로 수리 주문을 받고 택배로 상품을 주고받으면서 전국의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쳐주고 있었다.

없는 부품도 찾아내 척척 수리하는 장인들이 서울이나 대도시에만 있는 건 아니다. 경기도 연천에서 제로웨이스트샵 ‘순환카페 1.5도’를 운영하는 강신호 님과 이애경 님은 〈오늘의 기후〉에 직접 출연도 하고 글도 보내주는 애청자다. 어느 날 SNS에서 이분들이 연천 읍내에서 수리권 토크 모임을 연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강신호 님이 연천시장에서 오랫동안 전파사를 운영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낡은 가전제품 고치는 이야기를 듣다가 마련한 모임이었다.

모임에서는 대기업 AS센터 40년 경력자를 모셔 간단한 전자제품 자가수리 팁도 듣고 에어컨 관리법과 세탁조 자가청소법을 배우기도 했다. 동네의 아는 분들이 강연자로 나서면 아무래도 주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 하고 기획한 모임인데 벌써 3회 차에 이른다.

누구나 쉽게 고쳐 쓰고 다시 쓰도록

방송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탄소절감 실천을 이야기하다 보면 뭘 사지 말자, 먹지 말자,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일쑤다. 그럴 때면 청취자 게시판에 “아니, 그렇게 안 사고 안 쓰면 탄소는 줄겠지만 우리나라 산업은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자원순환을 제대로 하려면 소비자가 뭘 안 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쉽게 물건을 고쳐 쓰고 다시 쓰도록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옷수선집·전파사·재활용센터 등 물건의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곳에 지원금이 간다면, 쓰레기가 자원이 되도록 돕는 여러 기업체에 지원과 투자가 간다면, 탄소절감과 자원순환은 새로운 순환산업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일상의 자원순환은 낡고 고장난 물건을 수선하고 수리하는 장인들의 솜씨가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가치 또한 사라지거나 흘러가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되면서 ‘하나밖에 없는 고유함’으로 재평가된다면, 사람도 귀하게 여기는 시대를 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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