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4년 03월 2024-02-26   299

[여는글] 작은 불편도 못 참는데 지구를 살리겠는가

오른쪽에 있는 손에는 푸른색 지구가 놓여있고, 왼쪽에 있는 손에는 나무와 사슴이 놓여있다.

지난 2월 14일 나는 지구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다녀왔다. 기후위기와 생태전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와 작가, 활동가 등 70여 명이 지구에게 뭐라도 응답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모인 자리였다. 모임의 이름은 기후정치원년 시민선언(이하 시민선언)이다.

시민선언 참가자들은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과 정파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에 의지가 있는 정당·정치인에게 투표하자”고 나섰다. 당면한 기후위기 해결과 생태 전환을 위해 책임 있게 입법할 후보를 공천하도록 모든 정당에 촉구했다. 또한 선거가 끝나고 열리는 첫 국회를 이른바 ‘기후 국회’로 열어 다음 사항을 실현하라고 요구했다.

첫째, 온실가스 감축과 재난 대응체계 구축 등 국가 차원의 전면적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공약으로 발표할 것. 둘째,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무책임한 토건·개발 공약을 전면 철회할 것. 셋째, 22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 전환을 위한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 넷째, 기후위기 문제를 전담할 국회 상설위원회와 행정부처를 신설할 것 등이다. 더 이상 지구 생태계를 몇몇 시민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으며,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법과 제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이 선언에 담겼다.

이런 연유로 청정 고을 지리산 자락에서 공기 혼탁한 서울로 발걸음을 했으니 그야말로 아픈 지구가 나를 부른 셈이다. 무절제한 온실가스 배출과 탐욕스러운 개발의 무한 질주는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연쇄적으로 대기와 토양과 생물들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니 내가 사는 지리산도 언제까지나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는 아닐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살리는 생태 그물의 복원력은 이미 급격하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
걱정하고 논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지구촌 모든 국가와 시민이 전력을 다해 협력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설계하고 경영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다뤄야 할 때이다.

나는 시민선언이 열리는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 가려고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시골 사람인 나는 그곳에서 새삼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거의 한결같이 손에 든 음료수를 마시는데, 다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지인들은 대부분 텀블러를 사용하기에 그 행렬이 참으로 생경하고 당혹스러웠다. 이것이 도시 사람들의 일상임을 나는 새삼스레 알아차렸다.

그래서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민선언 장소까지 수백 미터 길을 걸으면서 다회용 컵으로 음료를 마시는 사람이 몇 명일까 유심히 관찰했다.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는 하나의 같은 세계를 사는 듯하지만 실은 다른 여러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삶의 가치와 지향이 다르면 실제로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예민하게 본질과 전체를 포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혜로운 삶,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토해내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지구 생태계 파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말로는 생태계를 걱정한다면서 작은 불편 하나 감수하지 못하고 당장 편리함만을 따라간다면 자기 삶의 생태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이 무너지고 있는데 지구를 살리겠다고? 작다고 해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이를 진지하게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자기 삶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복원하는 첫걸음이다.

현상은 복잡한 듯하지만 원인은 매우 단순하다. 걷잡을 수 없는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의 원인도 단순하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과욕과 남용이다. 그렇다면 해결도 간명하다. 단순 소박한 삶이다. 내가 적절하게 소유하고 소비하면 지구 생태계는 보란 듯이 살아난다.

조선시대 문신 김정국1485~1541은 이렇게 말했다.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거처가 사치스러워 분수에 넘치는 자는 화를 당하기 쉽고, 작은 집에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름과 지위를 누립니다.” 이 말에 종친 이종1433~1476은 이렇게 덧붙인다. “큰 집을 옥이라 하고 작은 집을 사라고 한답니다. ‘옥’을 파자1하면 시지尸至, 즉 송장에 이른다는 뜻이 됩니다. ‘사’는 쪼개서 읽으면 인길人吉, 곧 사람이 길하다는 뜻이 되지요. 큰 집에 사는 자는 화를 받고 작은 집에 사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야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시지인길尸至人吉, 즉 부족해야 넉넉하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지나치게 소유한 사람에게선 내면의 결핍이 보인다. 반면 부족한 듯한 삶의 경영에서는 내면의 자족과 여유가 보인다. 지구촌 가족 개개인의 삶이 모두 이러할 때 자연도 건강하고 사람도 건강하게 조화로운 생태계가 빛나지 않겠는가? 나부터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그 길을 걸어보지 않겠는가?

1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눔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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