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4년 06월 2024-05-28   2961

[인터뷰] 마지막 지식인 – 김동춘 사회학자

김동춘 사회학자 차종관

“한국의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지식의 생산과 유통의 체계도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생각해야겠다. 영상매체와 컴퓨터의 보급 등으로 인해 문자매체의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낮아졌고, 전반적으로 종합적이고 추상적인 지식보다는 실용적이고 가공된 지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보다는 경험분석적인 학자, 실무 전문가의 입지가 눈에 띄게 넓어졌다.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정보, 인적자원, 현실감각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대학 및 자유로운 지식인 집단의 위상은 저하되었다. 한편 사회운동의 약화와 부분적인 제도화에 따라 독립적인 지식인들이 대학에 몸담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은 크게 협소해졌다. 대학에 몸담은 학자나 학자 지망생들도 업적 관리에 필요한 엄격한 학술논문 작성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점차 대학 밖의 변화되는 현실에 대해 해석하고 비평하는 작업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

1966년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비평》 창간 30주년을 맞아 1996년 봄호에 사회학자 김동춘이 쓴 ‘한국 사회과학과 창비 30년’이란 글의 한 부분이다. 그는 이미 한 세대 전, 지식인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직감했다. 이듬해인 1997년 성공회대 교수가 된 그는 올해 1학기를 끝으로 27년 만에 강단에서 내려온다. 그는 최근 《경제와 사회》 기고한 글에서 “정년을 맞아 대학을 떠나려고 하니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하는 느낌도 있다”며 “1996년 러셀 저코비의 ‘마지막 지식인’을 인용하며 우리 세대가 한국에서는 마지막 지식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그런 우려나 예상이 섬찟할 정도로 현실이 되어버린 감도 있다”고 썼다.

‘마지막 지식인’ 김동춘을 ‘교수’라는 직업 속에 담기엔 부족하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봄, 구로고 교사였던 김동춘은 정치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고 교사모임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으로 떠났고 199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정책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사회 구성에 힘을 보탰고, 과거사정리법 제정을 비롯해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등 국가폭력 문제 해결에도 참여했다.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를 기리기 위한 단재상(2006년)과 언론자유를 위해 헌신한 송건호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송건호언론상(2016년)도 수상했다.

이젠 퇴임을 앞두고 교수 생활을 정리하고 있다. 보직을 내려놓고 강의와 지도학생의 수도 줄여왔다. 지난해부턴 청년·교사들과 모여 공부하는 ‘좋은세상연구소’를 만들고 유튜브도 시작했다. 그는 유튜브에서 자신을 ‘정치사회학자’로 칭하면서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노동·한국전쟁·가족주의·교육 등 주제가 결국 ‘지배’의 문제, 즉 권력은 어떻게 유지되고 사람들은 권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로 연결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요즘 청년들이 책을 읽지 않아 책과 글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새로운 모임과 매체에서 ‘정치적 시민’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준비 중인 실천적 지식인, 김동춘을 성공회대학교에서 만났다.

30대였던 1996년에 미국의 68세대가 제도권으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고 든 예감이다.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대학교수가 돼 논문 쓰기 바빠 사회적 역할이 줄었다. 68세대가 체제에 흡수되면서, 노암 촘스키나 다니엘 벨 등 68세대의 윗세대가 마지막 지식인의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1980년대에는 20대가 대부분의 시민단체, 학술단체 등을 세팅했다. 그런데 1996년쯤 되니 20대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몰아칠 때였다.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생존하기에 바빴고, 대학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후배 학자들이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됐다. 당시 예상한 것보다 현재 상황은 더 나빠졌다.

자생적 연구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학계 내부가 어려우니까 밖에서 연구회를 만들어 공부하는 건 1980년대에도 그랬다. 공부와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고 학계가 계속 보수화되고 좋은 성과가 나오기 어려우면 밖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젊은 지식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대학 밖에 지적인 센터를 만들자는 취지의 주장도 해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개편하자는 논문도 썼는데, 대만이나 프랑스처럼 사회과학원을 만들어 대학의 헤게모니를 견제할 수 있는 지적인 단체가 필요하다. 대학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정치인이 없다.

전체를 보고, 멀리 보는 사람이다. 전문성을 기초로 정치·사회적 의제에 최종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의대 정원 문제까지 법으로 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회다. 공론장에서 정치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고 그 결정에는 학문적 베이스가 깔려야 한다. 학문은 공적인 영역으로 당장의 이해관계 너머를 보는 작업이고,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나 필요하다.

논쟁이 많은 사안이다.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변호사, 학자 등으로 있는 것보다 정치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하거나, 지명도가 있으니 선거 승리를 위해 동원되는 것 아니겠나. 그게 본인의 의지와 맞물리는 건데 각자 필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정치를 할 기회가 있긴 했지만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치의 세계와 지식의 세계는 괴리가 있다. 학문적 입장으로 글을 써왔는데 제도권 정치가가 되면 이를 굽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정체성 자체가 부인될 수도 있는 일이다. 정책 작업에 도움을 주는 일도 많이 하고 진실화해위에서 공무원 생활도 했다. 좁은 의미의 정치는 하지 않았지만 넓은 의미의 정치는 해왔다. 학자는 자문 역할을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김동춘 사회학자 차종관

당시 1기 진실화해위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2기 진실화해위가 그럭저럭 활동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위원장이 바뀌면서 역행하고 있다. 1기 때 피해자로 분류했던 한국전쟁 부역 혐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가해자로 분류되고 있다. 억울한 사람의 신원을 회복하는 쪽이 아니라 빨갱이 프레임으로 군사정부가 했던 식으로 몰아가는데 이는 입법 취지와 반대되는 방향이다. 중단시키는 게 낫다.

시민교육을 콘셉트로 하는 조직이다. 시민교육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 될 수 있지만 특히 변화에 중요한 지점을 생각하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청년들은 아직 변화 가능성이 있어서다. 두루뭉술한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비판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2022년 말에 낸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가 ‘민주당이 왜 개혁조치를 하지 못했나’에 대한 내용이다. 민주당 역시 거대 보수양당 구도에 어느 정도 안착했다. ‘못해도 2등’이다. 정치적 갈등은 치열하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대표성은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육 문제 등 본전도 못 찾고 표만 떨어지는 문제는 건들지 않는다.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중산층 이상만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에게만 어필한다.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지율 관리와 선거에만 매달리니 저출생 문제 등 중요한 문제들이 30년째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민주화 흐름에서 2030이 다양한 조직을 만들고 이끌었다. 일단 그 사람들이 은퇴를 한다. 성공회대도 조희연 교수(現 서울특별시교육감)와 NGO대학원 만들었을 땐 잘나갔고 졸업생들이 시민단체 주요 역할을 했는데 이제 물러나는 타이밍이 됐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그 시대에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겨레 등 진보를 표방했던 흐름이 의미가 있었고 진보적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유효한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때와 직면한 이슈도 다르고 세상도 달라졌다.

6월 초에 《권력과 사상통제》라는 책이 나온다. 27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연구 작업이다. 분단·냉전체제가 어떻게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고 있는지 다뤘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가는 매장되는 사회다.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하니 증세를 하자”고만 해도 “너 빨갱이냐”고 하지 않나. 이런 사회에서는 공적 담론이 형성되기 어렵다. 정치적 탄압을 떠나서라도 남과 다른 생각을 표현했을 때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나 배제하는 분위기가 있다.

요새 참여연대는 병원밥 같은 느낌이다. 영양은 골고루 있어 몸에는 좋은데 맛이 없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현상유지만 한다. 참여연대에서 1인시위를 처음 했고, 공익소송을 통해 사회운동을 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머리띠 두르고 단식하는 노동운동이 익숙하던 시대에 새롭게 개척한 방식이었다. 최근 들어선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참여연대가 모든 이슈를 다 커버하는 조직으로 가기 어렵다. 참여연대는 공익적 NGO, 준정책·준정치 조직이다.

남은 소임이라면 양당 독점구조를 깨고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모델을 보여주는 역할인데 이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이젠 전문영역으로 가는 게 좋겠다. 종합시민단체인데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조직을 쪼개야 한다. 지역의 풀뿌리 운동 등은 원론적인 측면이 있으니 이들과 결합해서 새로운 담론을 던질 수도 있고. 풀뿌리 대중 조직이 아닌 상태에서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담론제기자 역할을 해야 하고,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 사진 차종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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