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4년 06월 2024-05-28   670

[여는글] 지금, 여기 함께!

Unma Desai, unsplash

올해도 2700년 전 태어나신 부처님 생신을 잘 치렀다. 부처님은 어김없이 오셨지만 우리는 과연 그분의 ‘뜻’대로 잘 살고 있을까? 붓다가 이 세상에 오신 뜻, 예수가 십자가로 백성의 고통을 짊어진 뜻은 무엇일까?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에 우리가 찬탄하는 여러 행사가 과연 붓다와 예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있을까? 진정한 축하는 그분들의 ‘뜻’을 잘 새겨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분들의 거룩한 행적이 과거에 갇히지 않고 지금, 여기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붓다와 예수의 삶을 살펴보면 그분들의 뜻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모든 생명들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행복이다. 차별을 넘은 평등, 대립과 반목을 넘은 평화, 불안과 고통을 넘은 지극한 행복의 구현이다. 붓다와 예수는 이 뜻을 펼치기 위해서 수행을 했고, 경계를 넘어 사랑과 자비를 실천했으며, 이 땅에 열반과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런 거룩한 뜻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애초에 거룩한 분이어서 당연히 거룩한 뜻을 품었을까? 아니다. 삶은 주어가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서술이 주어의 격을 완성시킨다. 거룩한 뜻을 품고 펼쳤기에 거룩한 분이 된 것이다. 붓다와 예수가 인류 구원의 뜻을 품은 구체적인 계기는 당대의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웃의 아픔을 듣고 그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차별과 대립을 어떻게 도울지 깊이 숙고했다. 그렇게 ‘뜻’의 씨앗은 사람들의 삶터에 뿌려졌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회에서 나는 이렇게 설법했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자기 삶의 영역에 장막을 치지 않았습니다. 가리고 포장하면서 신비로운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걸식하며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24시간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었고 동시에 이웃들이 사는 모습을 생생히 보았으며 그들의 아픈 소리를 가슴 깊이 들었습니다. 붓다의 뜻은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뜻에 동참하는 우리가 부처님오신날의 주인공입니다.”

붓다와 예수의 뜻을 따르려면 우리는 어떤 뜻을 세워야 할까?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고, 잘 듣고, 가슴 깊이 느껴야 한다. 잘 보고 잘 듣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을 편견 없이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 존재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의 실상을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와 이웃, 나와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 숙고해야 한다.

중국 선종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 선사의 《종용록》 에서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의 가치를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입이 코에게 물었다. “먹고 마시는 일도 내가 하고 말도 내가 하는데 너는 무슨 공이 있어 나보다 위쪽에 있는가?” 코가 말했다. “오악五嶽 중에 중악中嶽이 존귀하기 때문이다.” 코가 다시 눈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내 위에 있는가?” 눈이 대답했다. “나는 일월과 같아서 사물을 비추어 밝게 하는 공이 있다.” 눈이 눈썹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공이 있어 나보다 위에 있는가?” 눈썹이 말했다. “나는 공이 없음에도 위쪽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 허나 나를 얼굴 아래쪽에 두어 눈썹 위에 눈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어떤 몰골이 되겠는가?”

붓다의 뜻은 모든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제 자리가 빚어내는 조화로운 세상,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가 아닐까? 그런데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좀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구현하려는 ‘뜻’을 읽어내기 어렵다. 정권 획득의 뜻만을 매우 치졸하고 교묘하게 드러낼 뿐이다. 오로지 이기려는 의도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뜻만이 보인다. 최근 의대 정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경청하고 대화하면서 설득하고 합의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한판 승부 정치가 판을 친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하다. 법과 강제력으로 목적을 획득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로지 자기편 사람들만 보고, 자기편 소리만을 듣는다면 정치의 참뜻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그릇된 뜻, 치우친 뜻의 정치는 종국에는 모두의 가슴에 상처와 분노만 키운다. 부디 모든 생명을 평화롭게 하는 ‘뜻’의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

부처님오신날, 붓다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 여기 함께!’가 아닐까.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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