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4년 07-08월 2024-06-28   1028

[이슈] ‘좋은’ 언론 규제는 없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

Annebell Dogger, unsplash

뉴스의 시작, 검열의 시작

기원전 59년경, 로마제국 원로원은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를 발행했다. 악타 디우르나는 처음엔 벽보 형태였다가 차츰 손으로 가죽에 쓴 문서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악타 디우르나가 등장한 시대는 카이사르를 비롯한 3인의 정치인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로마를 함께 통치하던 시절이다. 이들은 권력을 분점하고 로마를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초창기 악타 디우르나에는 원로원 결정사항과 식민지 소식이 주로 실렸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첫 황제로 즉위한 뒤에는 악타 디우르나는 황제 권위를 치켜세우기 위한 선전 글귀가 가득한 관보로 전락했다. 그 시기에 시장에선 민간이 발행하는 악타 포풀리acta poluli 같은 경쟁지가 등장한다. 악타 포풀리에는 관보에 실린 황제와 원로원 소식과 더불어 항구를 통해 전해지는 식민지 소식, 사건 사고, 물가 정보, 원형경기장 검투 일정, 정치인 추문 등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었다.

그 당시 악타 디우르나와 악타 포풀리를 만든 사람은 대다수 잡혀 온 지식인 노예였다. 가사노동부터 농사, 전쟁에 이르기까지 로마 경제를 떠받친 건 노예였다. 신문을 만드는 필경사도 그들 중 하나였다. 지금같이 인쇄된 신문이 정기적으로 발행된 것은 요한 카롤루스가 1605년 9월 셋째 주에 신성로마제국 엘자스 공국 스트라스부르크시에서 발행한 렐라찌온Relation이었다. 민간 인쇄업자가 창간한 주간신문은 주로 공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현안에 대해 보도했다는 특징이 있다.

검열과 언론통제도 신문창간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인 엘자스 공국은 상업과 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제후국이지만, 민간업자가 대공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회불안을 촉발할 수 있는 정보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스웨덴 제국의회에서 1766년 12월 2일 언론자유법을 처음 시행할 때까지 유럽에서 뉴스의 역사는 곧 검열과 싸움의 역사였다.

우리는 어땠을까? 조선왕조는 500년간 일성록, 비변사일기,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같은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을 남겼지만, 민중이 직접 조보를 복사해서 판매하는 것은 금지했다. 선조 때 조보를 필사하여 한성부에서 판매했던 상인들이 있었다. 용감한 시도였지만, 반정으로 집권한 선조는 사사로운 정보유통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철저히 탄압했다. 나라는 작고 왕의 소갈머리는 좁아터졌었다.

오늘날도 한국의 기자는 ‘기레기’ 소리를 들어가며 과로와 저소득, 직업병에 걸려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시장에서 경쟁하는 통속적이다 못해 저속한 인터넷매체가 넘쳐난다. 기술발달의 축복 속에 너나없이 커피숍 개업하듯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는 시대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전달된다는 측면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 나르는 비논리적인 감상문을 맞춤법 한번 살펴보지 않고 유포하는 것도 현실이다. 통속신문이나 광고지와 다름없는 언론사는 늘어나지만, 정확한 정보와 환경비판을 하는 의견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언론사는 오직 비트코인 채굴하듯 인터넷에서 조회 수 채굴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행정기관과 정치권은 ‘가짜뉴스’Fake News를 핑계로 언론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나쁜 뉴스는 있어도 ‘가짜’ 뉴스는 없다

제22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언론 오보와 인터넷에서의 허위정보로 인한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를 규제하는 언론처벌법이 여야를 막론하고 쏟아지고 있다. 일명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는 시도다. 어떻게 해서든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는 여야를 구분하지 않는다. 로마 시대나 신성로마제국의 중세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는 근절할 수 있는 대상인가? ‘가짜뉴스’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흔히 ‘가짜뉴스’라고 지칭하는 대상은 보도과정에서 부실한 취재로 발생한 오보부터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이용한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그리고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사례까지 모두 포함한다. 심지어 정치인에 대한 풍자와 해학마저도 ‘가짜뉴스’라 부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가짜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 혹은 소식을 전달하는 정보는 정보 내용이 미흡하거나 과장될 수 있고, 이용자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뉴스 자체가 가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정보는 그것이 허위든 아니든 새로운 내용이면 뉴스이다. 그렇다고 ‘가짜뉴스’라는 현상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언론이 허위정보를 확인도 없이 퍼 나르거나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비틀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판적인 언론 보도는 악의적 목적으로 생산한 허위정보가 아니라면 정당한 환경비판으로 수용해야 한다. 지난 202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언론피해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논란이나 2024년에 다시 수면에 오른 가짜뉴스 차단법은 허위정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줄이겠다는 표면적인 목적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이 ‘가짜뉴스’ 처벌을 위한 법률이 실효적이려면,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을 검토하고, 언론활동 상의 고의성과 중·과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등을 법률로 열거해야 한다. 쉽지 않은 난제다. 이미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 제1항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는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묶어서 간단히 설명하면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때는 죄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형법에서 말하는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사실 혹은 허위사실을 공공연하게 공표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지난 2024년 5월 31일 발의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손해액의 3배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악의’는 “허위를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현실적 악의)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허위를 누가 입증해야 하고, 무엇이 허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빠져 있다. 또한 3배 손해배상은 중·과실에 해당해야 하지만, 이를 열거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추상적, 주관적, 불명확한 개념인 ‘악의’,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 ‘왜곡’이라는 기준은 법관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도록 위임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이 법은 제21대에 발의했던 같은 법안에 있었던 ‘정무직 공무원과 후보자’, ‘대기업과 주요 주주’ 등의 공익 침해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의 예외로 인정한 ‘악용 방지 조항’도 삭제되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언론인은 공인에 관한 비판기사를 쓸 때 3배 손해배상을 각오해야만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나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해 익명으로 비판할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인 인터넷마저 촘촘히 규제하는 법안이 다시 등장했다. 지난 6월 12일에는 ‘네이버·유튜브 가짜뉴스 차단 의무화법’으로 명명된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의견표출을 규제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김장겸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이 나왔다. 이 법안은 유튜브, 네이버와 같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허위조작정보 유통 방지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만일 유튜브 등의 플랫폼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징역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규제 입법

공인에 대한 비판을 틀어막기 위한 ‘가짜뉴스’ 입법 논의는 허위정보 유포자 형사처벌(정보통신망법) → 플랫폼 사업자에 허위정보 방지 책임 부여(정보통신망법) → 인터넷 게시물 차단 제도 강화(정보통신망법) → 손해배상 강화(언론중재법) → 공직선거법상 규제 대상에 가짜뉴스 포함(공직선거법)처럼 큰 원을 그리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 그 어디에도 명확하게 ‘허위’와 ‘진실’이 무엇인지, 어떠한 경우를 중·과실로 볼 수 있는지, 악의적인 행위의 정도와 유형을 정의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불확실한 언론통제라는 규제의 문만 크게 열어놓고 있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인터넷신문을 통해서 빠르게 확산하는 ‘가짜뉴스’ 퇴치를 위해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가짜뉴스심의전담센터를 설치하여 법적 근거도 없이 인터넷신문에 대한 심의를 시작했다.

다시 반정을 통해 집권한 선조의 불안한 영혼과 벌거벗은 대공의 부끄러움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그러나 모두 정치 탓은 아니다. 권위를 상실하고, 품위를 실천하지 못하는 언론을 누가 추앙하겠는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언론계는 여전히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한때 언론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맞서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은 포기상태이다.

언론통제에 대한 헛된 욕망은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언론도 스스로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칼끝이 특정 언론사로 향하지만, 원칙과 규칙이 모호한 칼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무뎌진 공권력만큼 무서운 폭력은 없다. 공권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제와 억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를 되돌리기 위한 사회적 비용과 폐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 한번 만든 도구는 정권이 교체되어도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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