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참된 말과 글의 길

lexmilo, unsplash

이 세상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다른 것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지 못한다. 한 개인의 일생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과 뭇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우리는 이것을 생명의 그물망, 생태계라고 부른다. 생태계의 대상과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우리는 부모를 비롯하여 형제, 친구, 동료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생태계 그물망 속에서 한 개인은 이미 사회적 인간이다. 또 인간은 땅과 대기의 자연물과 삶의 그물을 엮는다. 피할 수 없는 관계인 생태계는 존재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생태적 존재인 우리는 선순환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악순환으로 살 것인가. 나만, 우리만 잘살기 위해 이 생태계를 배제하고 혐오하면서 독점적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더불어 오손도손 살 것인가. 악순환의 생태계 속에서 과연 나는 평화롭고 복되게 살 수 있는가.

생태계의 혈관은 소통이다. 피의 흐름이 멈추거나 골고루 적소에 흐르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호모 사피엔스의 소통 도구는 언어이다. 각자가 품은 ‘뜻’을 전하고자 ‘말’을 했다. 표정과 몸짓과 상징을 사용하여 욕구와 감정을 전달했다. 이후 문자 시대에는 법령을 만들어 사회를 유지하고, 문학으로 뜻을 전달했다.

붓다와 예수, 공자와 소크라테스 같은 스승들은 광장에서 말로 뜻을 전했고, 제자들은 질문과 대화로 배웠다. 제자들은 저잣거리에서 일어난 일을 전달하고 스승의 논평을 구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해석하고 판단했다. 이후 현장의 대화는 경전과 문학작품으로 진화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읽으면서 스승이 남긴 뜻을 짐작했다. 언론의 탄생과 진화 과정이다. 이렇듯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생태계를 연결하며 유지해 왔다.

오늘날의 언론은 다종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가공하여 사회 곳곳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언론의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여론이라는 그물망 안에서 살고 있다. 언론 생태계는 매체, 독자 그리고 국가기구 등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이 생태계의 선순환 조건은 ‘진실’이다. 언론의 진실이란 사실의 왜곡과 조작을 멈추고 진의를 잘 해석하여 전달하는 일이다. 즉 관점, 파악, 해석, 전달의 모든 과정이 진실이고 정의여야 한다. 그러나 불순한 목적이 개입되면 악순환이 일어난다.

여론의 조작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이 유혹에 취약하다. 반대편 매체에 색깔을 입히고, 우호적인 매체가 성에 차지 않으면 즉시 더 자극적인 매체로 관심을 옮긴다. 극단적 관점으로 서슴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선동하는 유튜브 채널 등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런 독자들의 편향된 태도에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언론 생태계의 악순환으로 시민들끼리 내전 중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세태가 아닐 수 없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1 에서 나오는 언론의 폭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사실을 부풀리고 비틀면서 타자를 악마화하는 언론의 행패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소설에서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신문기사를 그대로 믿은 이웃들이 주인공 카타리나를 혐오하고 불신하듯이, 오늘날 편향과 사익이 가득한 매체와 독점에 사로잡힌 권력, 그리고 깨어있지 못한 독자들이 언론 생태계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불순한 매체를 바로잡지 못하면 즉시 그 매체의 음험하고 교묘한 의도에 잡히는 과보果報2 를 받는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실로 안타깝다.

남명 조식 선생의 ‘우음’偶吟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아끼는 것이
범 가죽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구나
살아있을 때는 못 죽여 안달하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칭찬을 하네

사후칭미死後稱美는 죽은 후에 기린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 비난과 칭찬을 받은 이는 임란의 의병장 중봉 조헌1544~1592이다. 중봉이 그릇된 정책을 바로잡고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자고 했을 때,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민심을 교란한다고 비난하며 모함하던 이들이 임란 이후 중봉을 칭찬하는 세태를 남명이 꼬집은 것이다. 이런 여론의 변심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언론이 정론직필하지 못하고 독자 시민이 아둔하게 휩쓸리면 권력은 이를 즐긴다.

이제 언론 생태계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그런데 말과 글을 휘두르는 이들이 하도 교묘하여 참된 말과 글의 길이 험난하다. 그래도 가야 한다. 다른 길이 없기에.

편집장의 말


이제 시절 인연이 다 하여 <월간참여사회>의 편집위원장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동안의 관심과 응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여하고 연대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참여연대의 여러 길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1.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개인의 명예를 다룬 소설.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되는 고전이다. ↩︎
  2.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준말. 불교에서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 ↩︎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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