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535

시위 두번에 10년넘게 불법사찰 받은 기막힌 사연

시위 두번에 10년넘게 불법사찰 받은 기막힌 사연

"주동자도 아니고 그냥 뜻을 같이 하는 단순 가담자로 시위에 참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10년을 감시당해야할 만큼의 중죄입니까?”87년 6월, 대학 3학년 휴학 중이던 음영천 씨는 6월항쟁시위에 참가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로 인해 음영천 씨는 10년 가까이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왔다. 87년 6월항쟁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으로 시위에 한두 번 참가했을 뿐인데, 그 ‘경력’은 긴 세월동안 그를 괴롭히는 꼬리표가 됐다.

87년 6월항쟁이 있기 전까지만해도 그는 소위 ‘사회운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도서관에 출근하던 ‘학구파’였다. 시위에 참가했던 그때도 동기는 ‘순수한 젊은이로서의 정의감’이었다.

“10·28 건대항쟁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접하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거죠. 그 시절 그게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당했다. 6월항쟁에 대한 평가가 그렇듯 그 자신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라고 생각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그가 거리시위에 참가한 것은 딱 두 번. 두 번째 시위에 나갔을 때 그는 경찰에 붙잡혀갔다. 단순 가담자로 훈방됐어야할 그가 구속까지 됐던 이유는 경찰조사에서 꾸며진 조서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 그는 “나는 정당한 일을 했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 썼고, 지금껏 그 신념엔 변함이 없다. 그 한 줄의 문구가 10년동안 감시당할 빌미가 된 것이다.

시위는 민주항쟁, 참가자는 죄인?

징역에서 풀려난 그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서관으로 가 취직시험 준비에 열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취직시험에 그는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그가 준비한 시험은 각종 국영기업체 공개채용시험이었는데, 필기시험에는 무난히 합격했지만 면접에서는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재수를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집시법 위반 경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너무 큰 충격과 좌절감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그때는 제가 국가보안법 사범인 줄 알았어요. 한 번의 시위경력으로 이렇게 인생이 망가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죠.”그래도 그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불합리하게 불이익을 당하고는 있지만 자신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만해도 자신이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이 자신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90년 10월쯤. 친구 소개로 취직돼 지방에 가 있을 때의 일이다. 서울 집에 올라왔더니, 어머니가 “강남경찰서 형사가 와서 네 근황을 묻고 가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계속 형사는 집으로 전화를 해 그의 동태를 묻곤 했다. 경찰이 묻는 내용은 직장명, 위치, 출퇴근 시간, 자주 만나는 사람 등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일들로 그가 받은 고통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직장에도 적응하지 못해 자주 옮겨 다녀야 했고, 항상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야 했다. 92년 결혼한 부인은 정기적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남편이 정말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큰 시국사건이 있을 때는 더욱 마음을 졸여야 했다. 97년 대선 전에는 집 근처 다방에서 담당 경찰을 만나 그가 요구하는 양식대로 카드를 작성해 준 일도 있다.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6월 민주항쟁은 제 이름을 찾았죠. 최근에는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당당한 애국시민인 저는 아직까지도 죄인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잘못된 겁니까?” 그는 울분을 터뜨린다.

시위 전력자 4등급으로 분류해 관리

작년 12월, 참다 못한 음영천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신청을 냈다. ‘과거에 대한 미련, 이제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피해의식, 세상 정직하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좌절감 등의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배상받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음씨는 청원서에 적고 있다.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가 보상금으로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음씨는 ‘사찰 사실에 대해 밝히고 그에 대한 검찰측의 사과를 받는 것, 그리고 불법사찰이 발 붙일 곳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배상신청 심의과정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이 민간인 사찰을 조직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음씨의 경우는 그 사찰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검찰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87년 3월 사회안전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공안사범 사후관리지침’에 따라 각종 시국 공안사건 관련 인사들의 동향을 4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해 카드로 관리해왔다. 관할 경찰서에서 동향을 파악해 2개월에 한 번씩 보고토록 한 사찰카드는 검찰측이 밝힌 것만해도 서울지검에 50여 장 남아 있다고 한다.

문제는 검찰이 사찰의 근거로 삼아온 사회안전법이 이미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회안전법은 75년 제정 이래로 수많은 시국 공안관련 민주인사들의 족쇄가 됐던 대표적 반민주 악법이다. 이러한 사회안전법이 폐지되고, 사찰대상의 요건을 더욱 강화한 보안관찰법으로 대체된 것이 지난 89년의 일이다.

새로이 제정된 보안관찰법에 따르면, 사찰대상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중에서도 ‘3년 이상의 실형을 받았거나 재범 위험성이 높은 자’에 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소지가 높아 인권 차원에서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의 사회안전법이 망령처럼 떠돌면서 민간인 인권유린의 무기가 되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경미한 집시법 위반이나 보안법 사범 등에 대해서도 사찰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현재 서울지검에 남아 있는 사찰카드의 수를 50여 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빙성은 없지만, 서울지검의 사찰 대상자가 50명이라고 인정한다면 전국적으로는 몇명이나 될까? 최소 수백 명은 될 것이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다.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인권’을 강조한 ‘국민의 정부’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사실 ‘국민의 정부’는 인권중시를 강조하고 있다. 또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인권’을 강조해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신장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해에는 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사건의 피해자 145명이 낸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민간인 사찰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판결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 독재정권이 국민의 기본 인권마저 침해해가며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사찰’이라는 망령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정치인, 각계 인사 그것도 모자라 민간인 사찰까지, 불법사찰에 대한 파문은 심심하면 한 번씩 불거져 나와 파문을 일으켜 여론을 술렁이게 한다.

작년 12월 경찰의 민간인 사찰 존안자료 사건, 국회 529호실 사건, 그리고 이번 사건. 모두가 이번 정권 들어서 발생한 사찰관련 파문들이다.

소송의 목표는 ‘재발방지’

음영천 씨의 국가배상신청은 기각됐다. 검찰청 심의위원회는 ‘동향파악 사실은 인정되나, 그 방법이 강압적이거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배상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이제 음씨는 국가배상소송을 앞두고 있다. 음영천 씨는 국가배상신청을 통해 얻은 성과는 사찰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송에서는 그에 대한 검찰의 사과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 그리고 재발방지가 목표다.

음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에 등급별·지역별 사찰 대상자의 수와 내용 공개를 요구하는 요청서도 보내놓은 상태다. 민간인 사찰로 인한 다른 피해자의 제보도 함께 받고 있다.

“이제 법원의 판단에 맡길 뿐이죠. 사찰 사실은 이미 밝혀졌으니, 이번 재판에서는 그에 대한 위법성과 배상 여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판을 통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이 없어지는 것까지가 기대하는 성과입니다.” 음씨의 재판결과가 어떤 식으로 내려질 지, 더 나아가 음씨의 사건이 우리 사회의 인권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국가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침해당한 국민은 빼앗긴 권리에 대해 주장해야 하고, 기본권리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재발방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이고, 인권 신장의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김현정 자유기고가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