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741

KYC상임운영위원장 이인영 전대협 초대 의장

운동에 필요하면 정치도 해야 한다

전대협 초대의장 이인영. 최근 젊은층 수혈대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이다. 87년 6월항쟁의 주역으로 지난 10년간 재야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전국적 청년단일조직으로 6월항쟁세대의 조직적 정치진출을 고민했던 이. 그는 최근 불어오는 젊은층 수혈바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3월 기존 청년운동단체들간 통합을 통해 생성된 한국청년연합회(KYC) 상임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그를 만났다. 지난 4월 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진출과 시민사회운동의 병진구조’를 강조했다.

젊은층 수혈론이 세간의 핫이슈입니다. 최근 수혈대상으로도 거론되고 계신데 젊은층이 제도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저는 찬성해요. 그렇다고해서 우리 세대가 정치권 진출만 해서는 안 되겠죠. 정치권에 진출하고, 동시에 시민사회 자체를 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켜내는 것 그것도 동시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겁니다. 결국 우리 세대의 역할은 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을 동시에 병진시켜내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둘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96년 전국적 청년단일조직 건설을 주장하면서 386세대는 개별적 정치진출이 아닌 조직적 배출 형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개별적으로 진출하더라도 나중에는 어떤 집단적 모색과정, 저는 여전히 그런 것을 선호하는 편이거든요. 현실정치권에 들어가서 훌륭하게 정치활동하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여전히 남아서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독립체가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기성정당에서 우리 세대 전체의 정치적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어렵잖아요. 또 개별적 선택과정에서 우리 세대가 가진 정치적 동질성이 해체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 세대의 동질적인 정치적 아이덴티티를 보장할 수 있는 조직체가 있고, 그 속에서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진영 활동가들은 이번 수혈론에 대해 DJ가 무슨 곶감 빼먹듯이 역량있는 운동가들을 쏙쏙 빼먹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도 하는데….

그렇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동시에 정치적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 갈거냐. 사전에 우리 스스로 이런 문제에 대해 입장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도 반성해야죠. 제가 민족민주운동진영에 오래 있으면서 넘을 수 없었던 한계들을 시민운동이 돌파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시민운동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요. 그런데 이런 시민운동의 건강한 기능들을 어떻게 실제 정치에 참여해서 대안을 만들거냐, 그것도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런 점에 비춰본다면 우리는 성공하지 못한 거나, 국민승리21 같은 네 번의 독자정당 실험이 있었지만 현실로서는 한계가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대안을 찾아야겠죠. 또 헌혈도 아니고 일방적 수혈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나는 원하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적 정치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 구조,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 이것이 동시적으로 없는한 우리는 계속적인 개별적 수혈의 대상이 되고, 그게 반복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97년 대선때 국민승리21에 참여해 진보정당운동도 하셨는데,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건설운동이 잘 안 되는 구체적 한계는 뭐라고 보십니까?

97년 대선 당시 저는 전국연합 조직국장이었고, 전국연합 방침이 국민승리21에 참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직적 결정에 따라 참여한 거죠. 제가 느꼈던 한계는 뭐랄까, 하려면 제대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준비가 미진했었다, 또 하나, 차라리 선거과정에서 이후 유력한 정치단체의 출현을 예고하는 정도에서 활동했다면 대선 이후에 반드시 어떤 발언권이 형성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97년 대선때의 실패, 참 받아들이기 어렵더라구요. 정권교체는 됐는데 진보진영은 정치적으로 많이 무기력해진 것 같다, 평가가 많이 절하된 느낌이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어요.

현재 사회운동진영이 그리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지금 정치권 진출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87년 이후 굉장히 폭발적으로 대중운동들이 확장됐잖아요. 그런 토양속에서 시민운동도 성립될 수 있었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지난 10년간 운동부분에서는 빠른 성장을 했어요. 10년만에 각계각층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대중조직들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정치적 과정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피드백할 거냐. 이런 부분에서 한 고리가 거듭된 실패를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했고, 또 너무 제도정치권 속으로 빠져들어 실패했고. 결국 우리는 이 두가지 편향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나 대중운동 발전 못지않은 정치적 대안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오히려 저는 그런 대안들을 일찌감치 모색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새로운 시도나 모색을 하는 게 여전히 때가 아니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에는 우리의 통합된 힘으로 정치적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불가피하게 운동진영 내에서도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서는 분화가 있으니까 그것이 소극적으로 진척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세력화 후 정치세력화? 이것은 지금 다소 단계론적 접근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부 학계에서는 386세대론 자체가 허구일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전대협 초대의장으로서 또 학생운동 출신으로 지금껏 사회운동을 해오면서 아직도 자기대중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면에서는 많이 취약하죠. 왜냐하면 제가 있었던 전민련이나 전국연합 등이 상대적으로 대중적 기반이 축소됐기 때문에 더 그렇죠. 반면 학자나 전문가로서 자기분야에서 지난 10년간 열심히 살아온 우리 동료들은 새롭게 사회적으로 변화된 지지력이 있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죠. 다만 저는 당시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아직은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들이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띄고 다시 구조화되지 않으면 저도 그런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는 다른 사회와 달리 80년대 역사적 자산이 하나의 세대적 층으로, 어떤 동질적 가치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수 있는 근거로 있다,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시 사회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조금 서로 격려해줄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해요.

학생운동 졸업하고, 재야단체에세 10년간 복무하셨는데, 사실 그동안 맘먹기에 따라 현실 정치권에 들어갈 기회도 있었을텐데, 굳이 지난 10년간 운동을 떠나지 않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7년 6월항쟁 승리의 기쁨과 87년 대선에서의 패배의 분루. 징역에 있으면서 어쨌든 패배한 것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고, 사랑받은 만큼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지난 10년간 운동에 복무했던 것이구요. 그러나 지금은 어떤 책임감이라기 보다는 뭔가를 성취하는 것들을 위해 살고 싶어요. 예수가 산상교훈에서 무언가 패하려고 온 게 아니라 무엇을 이루려고 온 거라고 얘기했듯이 우리도 지난 10년간 6월항쟁의 탄성 속에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6월항쟁의 정신, 가치를 이루기 위해 살고 싶거든요. 그것은 어느 순간 우리가 기필코 이뤄야하는 사회적 주류, 정치적 주류, 이런 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6월항쟁을 완성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럼 평생운동을 하실 건가요?

평생운동, 좀 어렵네요. 그런데 하여간 운동의 대의대로 살게요. 거기서 정치가 필요하면 정치도 할 것이고…. 하지만 현실정치는 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대안을 찾아서 하려고 그래요. 그건 뭐 아직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이제는 제가 정치는 절대 안하겠다, 그런 건 거짓말일 수 있다고 봐요. 올바른 것 같지도 않고, 운동의 성장 속에서 정치진출은 필요한 문제로 올 것이고.

2000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신가요?

지금 제가 내린 결론은 일단 개인의 거취 이전에 우리 세대의 운동구조, 조직구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현재화할 거냐, 거기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나 개인의 거취문제들이 얘기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물론 저보다 먼저 용기있게 결정하신 분들도 있지만, 저같이 전체적인 구조를 먼저 생각하고 그 이후의 거취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필요한 것 같아요. 또 제가 정치단체를 만들자는 것과 현실정치에 저 스스로 참여하는 것은 별개인데, 개별적으로 수혈된다, 안된다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지금은 ‘그런 제안이 오면 어떡하지? 굉장히 당황스럽고, 골치아프겠구나’ 그런 정도예요. 그런데 그런 연락이 안올 것 같은 데요?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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