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801

누워서 침을 뱉는다

안에서 자책하는 참여연대운동

글을 쓸때마다 나의 붓대를 짓누르는건, 조해일의 연작소설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이며, 그 가운데서도 마지막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이다.

불학무식한 도둑이었다는, 임꺽정이 그의 연인 여옥으로부터 컁題 을 배웠다는 얘기도 희한하거니와, 허순이라는 선비의 {근기야록}(根機野錄)에 적혀 있다는 그의 문장론은 더욱 희한하면서도 숙연하게 울려온다.

“알고보니 글이란 것이 본디 바른 말을 적는 것, 바른 말을 적으면 바른 글이 되고 그른 말을 적으면 그른 말이 된다. 또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 바른 말은 바른 생각에서 나오고 그른 말은 그른 생각에서 나올 터이다.  이렇게 허두를 뗀 그의 문장론은, 왜 세상에는 바른 생각을 지니고서도 거짓말, 거짓 글을 쓰는 이들이 있는가를 회의하다가 마침내는 천하의 절창을 울려내고야 만다. “다 까닭이 있겠으나 생각건대 이는 오로지 그 사는 일의 바르지 못함에서 비롯할 터이다. 그러나 정녕 바른 글이란 바로 사는 데에서 비롯한다 하겠다. 하면 아, 바른 글을 짓기는 얼마나 힘겨운고. 세상 일 모두가 한 가지 이치로구나.  도둑의 문장론을 읽고 난 선비 허순은 감탄의 한 마디를 그의 {근기야록}에 남긴다. “이것은 한낱 도둑의 글에 지나지 않으나 그 참됨을 가지고 의론할진대 그 어느 재상의 문장도 이에 미친다고는 할 수 없다. 

바로살기를 얼마나 행동화했는가

컁효【  본 참여연대媤  고백하라는 글자괴에 왜 난데 없다면 난데 없는 임꺽정의 문장론인가를 묻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글을 쓸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글쓰기의 두려움과 힘겨움은 더해만 간다. 바로 살기라는 그 한 가지 이치를 좀처럼 이루어내지 못하는 탓이다. 바른 말, 바른 글의 과녁은 갈수록 멀어져만 보인다. 그 마당에 비롯 캅 낢琉꿔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망정, 분명히 캑淪γ자리에 앉아 있는 참여연대를 스스로 매질하라는 강요는 아무래도 임꺽정의 컹馨餠辰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는 일찍부터 캑㈎梔  침뱉기媤  자청해온 자이다. 주제넘게도 이웃들에게까지 캑㈎梔  침뱉기媤  권고해온 텃수이다. 스스로와 이웃의 맷집 불리기에도 목청을 높여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의 글자리는 오직 나 스스로만을 매질하라는 게 아니다. 참여연대의 우리까지를 매질하라는 명령이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그것은 적어도 이중고(二重告)를 안겨주는 부담이다. 그 하나의 까닭은 언제나 말해온대로 캑㈎梔  침뱉기嘶  아무리 준엄하다고 할지라도, 남의 매질 만큼은 준엄하지 못하다는 보편적 진리로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침이든 매질이든 캑淪γ가 캑淪?惑으로 맞아야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날려지는 모든 화살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먼저 쏘아지는 것임을 거듭 확인해 두고자 한다.

실상 임꺽정의 문장론으로 글머리를 연 뜻도 문장론을 피력하고자 함에서가 아니다.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운동도 말과 글의 작업을 요구한다. 그러나 임꺽정 투로 부연하자면, 운동 그 자체가 온몸으로 쓰는 글이며, 바로 살기를 추구하는 행동의 글이다. 세상 일 모두가 한 가지 이치라는 글의 절창은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가. 그의 바로 살기란 도둑질과 나눔이었다. 그리고 글의 바로 살기란 하늘은 하늘이며 임금도 사람이라는 바른 이름의 기조 위에서 펼쳐졌다. 그것이 그의 바로 살기를 채워가는 내용이었으며, 시체 말의 운동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참여연대의 캑淪γ인 나는 얼마나 바로 살기를 행동화했으며, 바른 이름의 기조를 관철하고자 하는 열정에 몸을 떨었던가. 아무리 바로 살기에는 먼 삶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물음앞에 긍정의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그저 캣蓉┛  식是繭箚킬  캇만方“  식是繭遮쨉藍  폄하에도 불구하고 시류의 파편들을 두루 감당해내기에도 숨이 가빴던 지난 5년이 아니었던가.

참여연대에 들어설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거창한 구호 앞에서도, 임꺽정은 어김없이 떠올라 나를 부끄럽게 한다.

“시민의 힘, 세상을 바꾼다. 

얼마나 가슴설레이고 피끓어오르는 외침인가. 그러나 시민의 힘은 여전히 소망대로 모아지지 않는다. 캭첫刮愎  시민운동是繭遮  핀잔이 자학과 자탄의 언어로 굳어진 지도 오래이다. 부끄러움을 가중하는 건 운동의 현실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바꾼다? 외침과 물음이 겹쳐지는 가운데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물음쪽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바로 살기를 억누르고 가로막는 세상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인가?

지도력의 혼미가 정체성과 전략의 혼미로

남들을 들먹일 겨를은 없다. 그것은 참여연대가 간직해온 해묵은 고뇌의 물음이다. 아니, 참여연대 5년의 역사 이전에 참여연대를 발상했던 이들의 해묵은 고뇌의 물음이기도 하다. 모두가 알지 못하거나 잊었을지도 모르므로, 그야말로 해묵은 지난 날의 자료 한토막을 여기 옮겨 적어두고자 한다. 그 캬굳營척蔭의 자료가 오늘과 내일의 참여연대를 두루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을 마시는 이는 무릇 그 원천을 생각해야 한다(飮水思源)는 충정쯤으로 헤아려 주기 바란다.

“포스트 군사정권 시대에 자본측은 군부정권의 비합리적 유산을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캡醍  것을 시장 자율에 맡기라侍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포스트 군부정권시대의 대안적인 시대정신, 대안적인 사회운영원리를 보다 진보적으로 규정하고 선도해가지 않으면 민간정부의 시대는 반민중적인 컥謎뼈  시대  그러면서도 민중적인 담론이 주변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2002년 혹은 2007년의 수권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대안적인 정책 프로그램과 대안적인 진보운동의 논거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총론적인 대안 프로그램과 분야별 정책팀을 만들어 진보적 대안들을 구체화해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1900년대 초반의 고뇌를 그대로 드러내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날의 문장은 문장으로만 끝나버린 탓으로, 선견의 밝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운동의 실패를 뼈져리도록 확인케 하는 비명의 문장이 되고 말았다. 그날에 꿈꾸고 고뇌했던 캇固낱萱  거친 총론화匙  여전히 꿈과 고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총론화에 이르지 못한 귀납법의 파편들만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러온다.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나는 오늘에도 “참여연대운동은 무엇인가?粹遮  지겨운 물음에 간명한 응답을 보내지 못한다.

그것은 나 혼자의 어둠 탓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안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묻는 물음이 끊어지지 않는 것도 그 하나의 반증일 터이다.

때문에 더러는 캑肉甁蠢의 딱지가 붙어 있는 자체평가의 기록들을 훑어보면, 눈에 뜨이는 진단과 대안들에 쉽사리 만나게 된다.

어떤 동지는 <시민참여부족→상근자 의존→재정수요 확대→재정확보를 위한 단체 위상 쌓기→이슈 중심의 사업→시민참여 촉발 대중사업 결여→시민참여 부족>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또 어떤 동지는 <진보적 시민운동의 선두주자>와 <종합적 행동적 대안추구의 선도주자>의 구실을 참여연대운동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연대운동의 확대강화를 통한 운동권의 캔예釜섭쪘 와 새로운 공동전선의 형성이 모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바는 없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어느 것 하나, 참여연대의 기본전략으로 선택된 바도 없다. 가혹하다면 가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그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캑淪γ인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역시 지도력의 혼미가 정체성과 전략의 혼미로 이어졌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처절하게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마당에 일부 상근 운동가들의 캅晥素 와 캥濚タ廢 따위를 거론할만한 텃수는 못 된다. 이를테면 상근 운동가들은 단체조직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열정을 지닌 일원의 운동가여야 한다든가, 운동의 지향이 신념이 되지 못할 때, 운동가로서의 존재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열악한 생존의 조건이 운동가적 자부심이 아니라 현실적 고통이 될 뿐이라는 어떤 동지의 충고를 인용하는 것도, 무리로만 여겨진다.

이젠 나에게 주어진 종잇장이 다해간다. 간추려 말하건대 참여연대는 나날이 거듭 태어나야 하다. 거듭 태어나기를 거부한다면 참여연대운동은 지속될 수 없다. 지속되어야 할 가치도 잃게 된다. 이제껏 거듭 태어남의 역동성을 이끌어내지 못한 나같은 무리는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새로운 지도력, 참여연대의 동지들과 더불어 숨쉬는 민주의 지도력만이 참여연대운동, 나아가 이 땅의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아직도 희망의 근거는 살아 있다. 그 하나가 바로 월간 {참여사회}의 이번 달 기획일 터이다. 스스로 누워서 침을 뱉도록 하고, 참여연대에 대한 매질을 밖에서 끌어들이는 겸허와 용기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의 근거이며, 임꺽정이 갈파했던 천하의 이치인 바로 살기의 바탕이 아니겠는가.

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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