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664

‘대한항공 서비스아카데미’로 친절교육 받으러 간 시민운동가들

지난 7월 14일. 강서구 등촌동 대한항공 서비스아카데미.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이곳에서 하룻동안 ‘친절교육’을 받았다. 1차 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참여연대 활동가 20명 중 약속시간인 아침 8시 40분까지 교육장에 도착한 사람은 불과 4명이었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그런가? 월요일 조회 때 각 국실마다 불러대던 수많은 행사와 집회일정을 떠올리면 과연 이 자리에 몇명이나 참석할 수 있을지 자못 불안하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 지난 9시 10분, 모두 12명이 모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예정된 활동가들이 절반 조금 넘게 참여한 것, 그나마도 제 시간에 맞춰 온 활동가는 거기서 또 절반도 안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활동가들이 이번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

친절교육? 우리한테 필요한 건 친절교육이 아니라 지구력 훈련 아닌가?’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더라도 하룻동안 ‘친절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대단한 변화가 있겠는가라며 교육결과에 대해 지레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낸 활동가들도 적지 않았다. 설혹 친절교육의 필요성은 십분 이해하더라도 당장에 산적한 업무를 하룻동안 전폐하고 선뜻 교육에 나설 적극성을 가진 사람은 또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튼 교육결과를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서비스교육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서 나아가 서비스마인드를 도입하겠다는 여러분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참고로 오늘 마지막 교육인 전화예절 시간에는 평소 여러분들의 전화받는 태도가 어떠한지 사전에 모니터링한 녹음 테이프를 들어보면서 점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임강사인 권선영 씨의 말이 떨어지자 활동가들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 전화 목소리를 미리 녹음해뒀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친절하게 통화할 걸’ 이런 때늦은 후회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들의 전화받는 태도에 대한 모니터링은 기왕에도 시민들이 항상 민감하게 해오지 않았겠는가. 그들의 입소문은 또 얼마나 빠르게 세간을 떠돌아 다녔을까. ‘참여연대에 전화했더니 말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참여연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해에서 비롯된 근거없는 폄하가 아니라 이런 일들로부터 비롯된 이유있는 문제제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첫 교육은 VTR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세와 복장 말씨 등을 교정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저래?’ ‘내가 저렇게 어색하단 말이야?’ 대형 모니터에 재현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대개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황망히 고개만 까딱 숙이는 인사나 다리를 벌리고 꾸부정하게 선 모습, 뒷짐을 졌다가 다른 손을 쓰다듬었다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하는 어색한 손동작, 당황하며 빠르게 대충 얼버무리는 말투에 대해 끝없는 지적사항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평가를 동료들이 메모해서 모아준다. ‘좀 더 자신감 있는 표정이 필요해요’ ‘환한 미소가 참 좋아요’ 대개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자신을 ‘객관’의 눈으로 돌아보는 기회로도 의미있었지만 옆에서 함께 일해온 동료를 이렇게 자세히 바라보며 뭔가 관심어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소중했다.

첫 시간이 끝나고 두 명의 활동가가 교육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 중 모 활동가는 ‘대한항공’이라는 말만 기억에 담고 김포공항에 가서 국제선 청사와 국내선 청사, 그리고 대한항공 전산센터를 방황하다가 물어 물어 뒤늦게 등촌동 교육장으로 찾아왔다고 해서 폭소를 자아냈다. 또 다른 모 활동가는 ‘정장’을 하고 교육에 참석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다가 전날 밤 12시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동대문 야시장에 가서 구두를 사서 신고 왔다고 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친절은 프로정신에서 나온다

다음시간은 ‘표정관리’에 대한 교육이었다. 굳어 있는 안면근육을 풀기 위해 눈썹을 올렸다 내리고 양미간을 찌푸리고 더러 입을 쩍 벌리기도 하는 얼굴체조. 활동가들은 서로의 우스꽝스런 표정을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문득 사무실에서 흔히 마주치는 활동가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활동가는 친절한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말은 십분 이해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방문객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에 지쳤다는 말을 했다. 그런 상태에서 도저히 미소를 띠게 되지 않더라는 고백적인 푸념에 모두들 무거운 마음이 된다. 이에 대해 교육을 담당하던 김예리 강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진정한 프로라면 자신의 기분과 조건을 감추고 ‘처음 방문’하는 고객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자칫 합리적으로 근무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도외시하고 무한히 자기를 희생하고 억누르라는 말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그러나 뚱하게 화난 표정이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것 말고 어떤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교육장 주변에서 마주치는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 그들은 경쾌한 억양으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끝없이 ‘안녕하십니까?’를 되풀이했다. 대꾸를 하기도 성가실 정도로 그 반가운 표정의 인사는 집요하고 끈질지게 이어졌다. ‘그 인사가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고 있는 것일까’, ‘이런 가식적인 인사치레는 무의미하다’ 이런 반론도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계속되는 그 인사를 듣고 있자니 가벼운 목례조차도 인색한 스스로의 무뚝뚝함에 생각이 미쳤다. 왜 우리는 눈길이 마주치는 타인들에게 환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걸 꺼렸던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먼저 건네면 상대가 나를 얕잡아 본다고 생각했을까. 비장한 표정 안에 자기를 감추고 있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고 생각했을까.

마지막 교육과정. 아침부터 활동가들을 주눅들게 만든 문제의 ‘전화예절’ 시간. 소형녹음기를 통해 들려오는 활동가들의 목소리. 오후 시간에 녹음했는지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지치고 피곤한 말투다. 벨이 네다섯 번 울려도 받지 않는 전화. 그나마 늦게 받은 전화에서 아무런 인사도 없이 ‘예 참여연댑니다’ 하고 울려나오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 회원가입의사를 밝히는 상대에게조차 묻는 말에만 마지못해 대답하는 소극성. 그것은 어떤 특정 활동가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처리하시다보니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스스로 부인하고 싶은 전화목소리에 풀죽어 있는 활동가들에게 담당강사가 위로와 지적을 동시에 한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참여연대 OOO입니다’ 빠르고 경쾌한 목소리로 이렇게 전화를 받으면 어떻겠는가고 제안한다.

활동가들은 몇 번이고 이 말을 소리내어 연습했다. 사무실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일말의 의구심이 없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들만은 리듬을 타고 경쾌하게 울렸다. 참여연대를 찾아오는 수많은 시민들이 이 경쾌한 인사에 작은 위안을 얻게 되길 기대해본다. 그들은 우리사회의 불친절한 세력에게 수없이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이 아닌가. 아침에 마지못해 끌려왔다는 표정이던 활동가들은 하루 교육을 받고는 상당히 고무된 표정으로 교육장을 나섰다. 그리고 실제로 좀 더 친절해졌다. 친절해진 그들의 얼굴에서 더욱 따뜻한 참여연대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것 같았다.

인터뷰│권선영 대한항공 서비스아카데미 선임강사

참여연대 활동가들을 교육시키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기업체나 공무원들에 비해 굉장히 자유롭고 활기찬 태도였습니다. 조직 풍토가 그대로 반영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참여연대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과는 다른 동기로 교육에 임했겠지만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에서 서비스에 대한 스킬을 도입하면 훨씬 많은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화모니터를 사전에 하는 등 준비를 많이 하셨던데요.

“교육대상의 특성을 이해해야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에 접속해 참여연대 홈페이지도 가보고 관련자료도 많이 보았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참여사회 아카데미 강좌도 수강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을 마친 활동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교육을 받을 때는 누구나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관성에 젖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한 일들이 많더라도 친절하고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시민들을 만나겠다는 지금의 결심을 유지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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