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824

개혁 기상도, 여전히 흐림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전반의 개혁의지를 재천명하였다. 무엇보다도 경제개혁의 핵심인 재벌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함과 동시에 ‘생산적 복지’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쳐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재벌개혁의 고삐가 다시 당겨지고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심화되어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시정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제 개혁 기류는 다시 상승하고 이에 대한 기대감 역시 상승기류를 타고 있어, 일부에서 제기하는 ‘색깔론’이 오히려 무색해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은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과연 제대로 될까?” 하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국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인사들은 이러한 국민들의 태도에 대해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개혁의 기상도를 전체적으로 볼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의문제기이다. 한편에서는 개혁의 상승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반개혁의 기류가 밀고 들어오고 있는가 하면 개혁을 떠받치는 힘이 빠지게 하는 현상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개혁기류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세력도 문제다. 종합적으로 개혁 기상도는 ‘여전히 흐림’을 보여주고 있다.

심상찮은 반개혁의 기류들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마무리 손질되던 즈음 국회에서는 3개의 ‘교육개악법’이 통과되었다. 당초 정부가 교육개혁을 위해 내놓은 사립학교법안 등에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에서 자문기구로 격하시키고 평교수가 참여하는 대학 교무위원회의 설치 조항을 삭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파견된 관선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등 교육민주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개혁적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국회에서는 이전부터 형성되어온 터이지만 정작 개혁법안을 제출했던 교육부마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자아내고 있다. 적어도 교육분야에서는 반개혁의 기류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는 일선 교원들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반개혁의 기류가 우리사회의 특정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사회의 종합적 표현인 정치분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야당이 반개혁 내지는 개혁반대로 기조를 잡은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나 김종필 총리의 ‘오리발 파문’은 별도로 치자. ‘국민의 정부’만 하더라도 줄곧 개혁을 표방하고 이번 8·15 경축사를 통해 다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신뢰회복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른바 현실정치의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반개혁세력과 손잡음으로써 반개혁의 기류를 걷어내는데 미흡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기류형성에 기여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반개혁 세력의 저항에 개혁부진의 책임을 전가하기엔 개운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들어서는 개혁신당을 운위하고는 있지만 소위 명망가에 손짓하는 과정에서 반개혁의 기류는 심상찮게 출몰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오면 올수록 이러한 기류가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은 개혁의 기상도를 더욱 흐리게 한다.

개혁을 위해선 과거청산이 필요

개혁의 상승기류가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상이 여전히 흐린 것은 반개혁의 기류가 말끔히 걷히지 않은 데에 있다. 흐린 기상은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따라서 개혁을 갈망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힘 빠지게 한다. 최근 이런 부류로 힘 빠지게 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전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형평에 어긋나게 사면한 것은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 역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과거를 복원시킨 것에 다름아니다.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정치권이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리는데 앞장서는 것도 힘 빠지게 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재개를 선언하여 이른바 ‘후3김 시대’의 도래가 운위되고 있다. ‘후3김’ 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느니 않느니 하는 정치권의 논란은 극히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은 미래로 진보하지 않고 과거로 퇴행하는 기미만 있더라도 힘 빠지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거가 수다하다. 현실개혁을 위해서는 현재와 가까운 과거부터 손대지 않을 수 없다. 그럴수록 ‘과거와의 단절’을 질타하는 반개혁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가까운 과거의 인물일수록 시퍼렇게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거청산에 저항해 반개혁의 기류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반개혁의 기류를 걷어내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다. 그것은 곧 청산해야 할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현실을 개혁함과 동시에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고서는 개혁의 기상도가 결코 밝아질 수 없다.

청산해야 할 과거를 청산하는 것은 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인 만큼 과거청산 없이는 현실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기득권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상 반개혁의 기류는 강해지게 마련이며 그러할수록 개혁의 기상도는 더욱 흐려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반개혁 기류의 존재는 새로운 반개혁 기류가 형성될 빌미와 여건을 조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반개혁 기류의 형성도 경계해야 하지만 기존 반개혁의 기류를 걷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혁을 위해 과거청산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이치이다.

인적 청산이 개혁의 핵심

기존의 반개혁 기류를 걷어냄으로써 새로운 반개혁 기류 형성을 방지하고, 개혁이 안정적으로 상승기류를 타 개혁의 기상도 전체를 밝게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혁 기류를 이끌어 나갈 개혁세력의 형성이다. 반개혁 기류를 몰아낼 정도로 강하고도 안정적인 개혁 기류의 생성과 더불어 그 기류를 향도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대다수가 과거의 기득권자인 반개혁 세력이 개혁을 주도할 위치를 상당수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개혁의 기류가 걷히기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반개혁 기류의 새로운 생성과 확대가 우려될 뿐이다. 8·15 경축사에서 보인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의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과연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하고 회의를 하는 이유도 결국 따지고 보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반개혁의 기류를 걷어내는 것은 과거청산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인적 청산이 가장 핵심적이다.

마침 ‘국민의 정부’ 일각에서 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일찍부터 국민들이 외쳐온 아우성이었다. 반향없던 아우성이 이제야 겨우 나지막하고도 조심스런 반향을 얻었을 뿐이다. 모처럼의 반향이 반개혁의 기류에 의해 실종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적 청산’이 큰소리의 아우성으로 어우러져 반개혁의 기류를 걷어냄으로써 개혁의 기상이 청명한 가을하늘처럼 활짝 개이기를 바란다.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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