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658

교수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

반론 : 안경환 교수의 「교수들의 데모」에 대하여

지난 8월호 참여사회칼럼 안경환 서울대 교수의 기고문 「교수들의 데모」에 대한 반론을 김창록 부산대 교수가 보내왔다. 김 교수는 교육부의 두뇌한국(Brain Korea)21은 이 나라 대학의 전면적 황폐화를 초래할 파멸적 정책이므로 전면 백지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BK21 찬성그룹에게는, 이 문제 때문에 거리로 나선 교수들의 문건을 잘 읽어보고 심각하게 숙고하라고 당부했다.<편집자 주>

지난 6월 4일 공고된 교육부의 「두뇌한국(Brain Korea) 21」에 반대하여, 전국의 1,000여 명의 교수들이 6월 15일과 7월 8일 부산과 서울에서 개최한 두 차례의 전국교수대회에 대해 흥미롭게도 7월 8일 밤부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비판은 잘못된 것이거나 적어도 빗나간 것이기에 ‘거리로 나선 교수’들은 참으로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거리로 나선 교수’들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 대비, 고등인력양성체제 구축”이라는 교육부의 구호와는 달리, 「두뇌한국21」이야말로 이 나라 대학의 전면적인 황폐화를 초래할 파멸적인 정책이므로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두뇌한국21」이 서울 중심의 극소수 ‘일류대학’의 응용과학 분야에 대해 국가의 지원을 몰아줌으로써 기존의 수직적 대학서열구조와 서울집중-지역소외구조를 고착화시키고, 기초학문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대학과 학문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를 심화시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공모하는데 무슨 특혜지원이냐’라며 되받는다. ‘고기반찬 먹을 능력도 없는 자들이 반찬투정하며 밥상을 엎으려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만일 「두뇌한국21」이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비판은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두뇌한국21」은 개별 교수가 아니라, 수십 명의 교수들로 구성되는 대학원 학사단위에 대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그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대학의 교수는 애당초 신청도 할 수 없다. 반대로 그런 규모의 대학에 소속된 교수는 능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지원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런 규모의 대학은 기획예산처가 교육부를 ‘지원사격’하면서 들먹인 “지난해 예산편성 당시” 교육부와 “지원키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서울대를 비롯한 5개 대학”이다『한국일보』 7월 19일자). 보다 심각한 문제는 “두뇌한국21의 공문이 서울대에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의 일”이며, 공고가 날 즈음에는 서울대는 이미 “책임급 연구진의 선정과 팀워크 구성을 모두 마치고 참여 교수 선정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는 것이다(월간 『인물과 사상』 1999년 8월호, 157면). 이쯤되면 「두뇌한국21」은 극소수 수험자에게 사전에 문제지가 유출된 부정시험에 다름아니다. 공모라는 형식은 사전선정이라는 머리 나쁜 늑대가 덮어 쓰고 있는 조잡한 양의 탈에 불과한 것이다.

비판 중에는 ‘대학원생’을 내세우는 것도 있다. ‘자기가 지원을 받지 못하면 대학원생을 양성하는 데 쓸 인력양성비는 없어지는 편이 더 좋은가’라거나, ‘이 사업의 핵심이 대학원생의 양성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교수들이 반대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것이다. 요컨대 ‘거리로 나선 교수’들은 학문후속세대를 아예 신경쓰지 않거나 혹은 그들이 지원받는 것이 못마땅해서 시가행진까지 한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국내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보따리장사’를 거쳐 교수가 된 필자로서는 심한 모멸감마저 느낀다.

만일 교수들이 그런 이유 때문에 거리로까지 나섰다면, 그것은 반지성적인 작태로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교수들은 결코 대학원생들이 지원받는 것이 ‘배가 아파서’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거리로 나선 교수’들은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 자체가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극소수 대학원의 학생들에게만 지원이 주어짐으로써 우수한 학생들을 빼앗긴 대다수 대학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잘못된 구조를 문제삼은 것이다. 게다가 그 지원이 기존의 다른 지원들을 몰아서 주는 것인 까닭에 자신들의 대학원생들에게는 지금까지 주었던 지원조차도 앞으로는 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에 거리로까지 나선 것이다. 대학원생 운운하는 ‘불순한 생각’은 신청이 곧 선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청하기 전부터 선정된 이후의 상황을 ‘염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그래서 거리로 나서지도 않은 극소수 대학의 교수들에게나 허용되는 ‘사치’일 뿐이다. 따라서 위의 비판은 연구에 쏟아야 할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거리로 나선 교수’들이 아니라 바로 그 시간에 ‘학교에 앉아 불순한 잡념을 농하고 있던 교수’들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비판 중에는 ‘어차피 의견이 갈릴 텐데 여론수렴 안한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라거나, ‘그래 문제있다고 치자. 하지만 국가적 차선이다. 밥상 엎어봐라. 당신들만 손해다’라는 것도 있다. ‘국민의 정부’의 이데올로그인 ‘시사평론가’의 이러한 주장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결국 ‘국가가 하는 일에 말이 많다. 그냥 따라와라’로 귀결되는 그의 논리는 그가 비판해마지 않은 독재정권의 논리와 한 치의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부적을 휘두르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정당한 비판을 압살한 채 치달리는 어설픈 관료들의 독선적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또 다시 증명해야 하는가? ‘IMF국치’ 하나로 충분하지 않은가? 국민의 세금 1조 4,000억 원이 투여되는 대학정책을 입안하면서 교수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철저히 배제한 것이 작은 문제인가?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에 대해 전국 4,275명의 교수들이 반대의견을 제출했음에도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그 반대한 내용을 그대로 담은 「두뇌한국21」을 국회의 결의조차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공고한 것이 작은 문제인가? 교수대표기구의 거듭되는 교육부장관 면담요청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없다가 제2차 전국교수대회가 끝난 다음에야 ‘일정이 안 맞는다’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전문대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고 있던 국장이나 만나보라고 한 것이 작은 문제인가? ‘국가’의 정책이면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쳐야 된다는 말인가? 잘못은 가능한 한 빨리 바로잡는 것이 피해와 희생을 줄이는 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국가정책의 경우 특히 그렇다. 잘못된 국가정책은 즉시 백지화하고, 올바른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교수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돌 던질 생각 아예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사회에서 교수들은 비록 ‘상류층’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가진 자’ 집단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교수들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책은 다수의 교수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다만 거기에는, ‘대학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인 교육관료들이 대학을 어설픈 정책의 실험장으로 전락시켜 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대학정책의 민주화를 위해 교수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는 또 하나의 질책을 추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그 현장인 대학의 민주화는 결코 사회나 국가의 민주화에 뒤떨어지는 일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대학과 그에 관한 정책을 민주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교수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거리로 나선 교수’들이 외친 것이 바로 그 대학정책의 방향과 형성시스템의 개혁과 민주화였다. 그들은 반민주적인 대학정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교수다운 점잖은 방법’이 모두 좌절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거리로까지’ 나선 것이다. 그것이 ‘때늦은 외침’이라고 탓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개혁의 외침’이 아니라 ‘집단이기주의자의 투정’을 읽어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거꾸로 선 세상읽기’인 것이다.

비판자들에게 부탁한다. 먼저 ‘거리로 나선 교수’들의 주장이 담긴 문건들을 충분히 읽어 보고, 위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해 보라. 그래서 이 나라 대학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에 동참한다면 다행이겠다. 혹시나 그러고도 돌을 던져야겠다고 확신한다면, 그때는 ‘정면으로’ 던져라.

김창록 부산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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