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492

참여하면 그만큼 사회가 좋아집니다

시만단체 열성회원 무슨 생각으로 기부하나
“회비만 겨우 냅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워요”
장대웅 환경운동연합 회원

사람 좋은 인상의 장대웅 환경운동연합 회원을 군자동에 있는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자원봉사활동도 하고 캠페인에도 자주 나가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게 뜻대로 잘 안돼요. 그래서 겨우 회비만 내고 있습니다.” 그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꺼내며 겸연쩍어했다. 10년 가까이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올해 초 회사를 설립한 뒤로는 아예 직원들에게도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의 활동을 소상히 설명하고 직원 전체가 그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회사명의로 다시 환경운동연합 회원에 가입했다. 그리고 그 회원증을 확대복사해서 사무실 중앙에 걸어두었다. 마침 그의 회사가 공원조성 등 조경공사를 주로 하는 건축토목회사라 환경과 무관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직원들도 기대 이상 적극 호응해 주었다.

대학에 학교 다닐 때부터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마땅히 참여할 수 있는 단체를 찾지 못하다가 지난 91년, 환경운동연합을 알게 되어 주저없이 가입했고 꾸준하고 줄기찬 관심과 참여로 환경운동연합에서 가장 적극적인 회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아, 그린피스가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전세계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도 다 후원자들이 많으니까 가능한 게 아니겠습니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그는 얼마 전 일본으로의 플루토늄 수송을 저지하기 하기 위한 환경운동연합의 프랑스 원정활동을 예로 들며 좀 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지 않은 데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10년 가까이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아내 김은덕 씨나 중학교에 다니는 큰 딸 은희, 초등학생인 아들 성진이 등 네 가족 모두가 열렬한 환경가족이 되었다며 빙긋이 웃었다. 집안에서 합성세제나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일, 분리수거 등에 오히려 가족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다. 매월 날아오는 회비지로용지를 챙겨서 은행에 내는 일도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이 빠짐없이 챙긴다. 환경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면 집안 분위기는 사뭇 ‘전투적’으로 격앙되곤 한단다. 또한 친한 친구들의 첫 회비를 대신내주며 ‘전도’를 열심히 한 까닭에 그의 주변에는 이미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한둘이 아니다. ‘DS1HOZ’, 아마추어 무선사이기도 한 장대웅 씨의 콜사인이다. 한가한 주말에 무전기를 챙겨 환경감시 캠페인에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여유’가 늘상 아쉽지만 소식지를 받아볼 때마다 환경운동연합과 자신이 한 몸처럼 여겨진단다.

“시민단체는 돈 걷는 데 너무 소극적이에요”
김태의 경실련 회원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등 몇 개 비영리 단체에 조금씩 나눠서 회비를 내고 있어요. 그런데 『참여사회』 구독료는 몇 달째 밀려 있을 거예요. 지로 용지가 몇 번 날아오더니 그 뒤로는 독촉이 없어서 좀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무심했던 점도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내라고 독측을 해줬으면 싶은 마음도 있거든요. 적극적으로 권해주면 직접 나가서 도울 생각도 있는데 말이에요.”경실련 창립회원인 김태의 씨.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회원이 아니라 회원의 부인이다. 그의 남편인 심상완 씨 이름으로 회원등록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김태의 씨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건의할 내용이나 문의할 게 있어서 전화하면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회원이 아니라 ‘회원가족’이라는 말이 시민단체와의 거리감을 느끼게 해요. 남편이름으로 가입해 있지만 그 회비는 사실 가족 전체가 내는 것이고 가족 모두가 단체를 지지하고 있는데도 말예요. ‘가족회원제도’ 같은 게 도입되면 어떨까요.” 김태의 씨는 경실련 창립 당시에 생후 2년이 채 안된 딸아이를 이웃집과 시어머니께 맡기고 어렵게 상근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일반회원’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그런 적극성을 가진 그에게조차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하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보통의 주부’들은 생각이 있어도 쉽사리 참여할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좀 더 명망있고 여유있는 사람들이나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수적으로 주저앉힌다고….

90년부터 96년까지 남편이 영국에 유학하는 동안 온 가족이 함께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도 경실련 소식지는 꼬박꼬박 받아보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비영리단체들이 기금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크리스천에이드’와 같은 단체는 가가호호 우편함에 정성껏 봉투를 돌리고 ‘당신의 1파운드가 아프리카 기아들의 몇 끼니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용처를 밝히고 봉투를 회수하기도 한단다. 또한 학교 후원회의 경우도 학생들이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 학부모가 얼마씩 후원금을 내는 식의 이벤트를 조직해 기금조성활동이 자체가 지역주민들의 작은 축제처럼 치러진다고 전하며 우리 시민단체들도 기금조성에도 좀 더 창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족 모두가 시민단체 홍보요원입니다”
안왕희 이재순 부부 참여연대 회원

25년간 군인으로 근무하다가 영관 장교로 예편한 안왕희 씨와 부인 이재순 씨. 이들 부부는 94년 참여연대가 출범할 당시부터 참여연대 홍보요원을 자임하며 주위에 열심히 참여연대의 활동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92,3년 무렵 뜻하지 않게 휘말린 송사 때문에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알게된 게 인연이 되어 그때부터 열성적인 회원이 되었다. 물론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부인 이재순 씨는 한동안 아예 상근 하다시피 자원활동을 하기도 해다. 직접 겪은 억울한 사법피해 경험을 토대로 상담, 자료정리 등의 일을 도우며 참여연대의 초창기 ‘용산시절’부터 활동가들과 가족 같은 유대를 다지며 열심히 일한 경험이 있다. 당시 활동가들은 이재순 씨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따랐다고 한다.

“뉴스에서 참여연대 관련보도가 나오면 집안 일처럼 여겨질 정도예요. 저뿐만 아니라 아들들도 마찬가지예요.” 한쪽 손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동안 참여연대에 발길이 뜸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재순 씨는 간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던 시절을 회상했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와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오다가 우연찮게 겪은 인생의 질곡이 자신들의 문제에만 국한돼 있던 이들 부부의 인식을 사회를 향해 열리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경찰서 같은 데와는 생전 무관하게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가 너무 없더라구요. 그 전에는 참여연대 같은 조직이 없었죠. 참여연대 출범할 때는 막연하게 어려운 일을 성심껏 도와준 박 변호사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돕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참여연대가 우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절로 그런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여연대 회원이라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더 회비도 많이 내고 좀 더 자주 가서 도와야 하는 데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안왕희 씨는 참여연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민단체고 자신이 그 회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회원임을 내세우기보다는 묵묵히 주변에서 참여연대가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매월 내시는 회비가 아깝다거나, 잘못 쓰이고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이들 부부는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오히려 좀 더 많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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