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684

정치권력의 월권이 부정과 야합 키운다

대우해법 어떻게 볼 것인가

97 년말 휘몰아치던 경제위기의 태풍이 물러가고 한국경제는 태풍잔해 제거와 복구 성공의 팡파르를 자랑스럽게 울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대우라는 불안스런 불발탄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묻혀 있었고, 그래서 태풍잔해 복구는 불안한 미완성의 복구였다.

우리 경제는 이 불발탄이 언제 터지려나 하는 우려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대우 스스로에 의해 이 불발탄이 원만히 제거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7월 20일 공식적으로 차입금의 만기 조정 요청을 하면서, 결국은 대우 불발탄의 뇌관에 불은 붙었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린 우리 경제가 대우라는 폭탄의 폭발로 다시 큰 비용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7월 20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구조조정 가속화 방안」은 표현이 그럴 뿐 사실은 기존 채무의 이행불능과 그에 따른 채무상환 조정의 정식 요청에 다름아니었다. 점점 악화되고 있는 자금 사정 속에서 급전으로 연명해오던 대우가 사실상 부도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구조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정부는 8월 12일 「금융시장 특별대책」을 통해 혼선을 거듭하던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기본틀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채권단(실질적으로는 정부)이 마련한 구조조정 계획에 따르면 구조조정 이후 대우그룹은 자동차 및 관련 무역부문만 남게 되어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그 규모 및 사업영역이 급격히 축소 재편되게 된다.

덩치로 재벌 서열 3위의 대우가 이런 지경에까지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리한 확장 때문이다. 대우 김우중 회장은 최근 수년간 세계경영이라는 기치 아래 신흥시장의 잠재력에 도박을 건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우중 회장은 거의 곡예에 가까운 자금조달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귀신이 아닌 한 그 곡예의 결과가 높은 부채비율로 귀결되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신기’는 결코 부릴 수 없었다.

영업상황이 나빠지자 자기자본이라는 유사시 안전판이 너무나 얇은 상태에서 바로 부도의 위험으로 직결된 것이다. 그동안 매우 근면하고 사업 확장에 성공해온 김우중 회장은 이제는 결국 실패한 기업가가 될 처지에 놓였다.

대우 구조조정의 방법과 지켜져야 할 원칙

대우로서는 당연히 구조조정을 자신의 주도 아래 행하고 싶어할 것이다. 계열사 매각을 통해 채권을 회수하고 잔여 계열사들을 우량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채권단으로서는(대우도 이 점에서는 이해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대우의 모든 계열사들의 기업가치를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 기업의 상태를 유지시켜야 하는데, 채권단은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런 만큼 대우측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우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위기를 오히려 협상의 무기로 삼을 수도 있다. ‘내가 망하면 다 같이 죽는다(too big to fail)’는, 겉으로는 점잖게 표현될 ‘배째라’ 위협이 그것이다. 이런 요소는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채권단의 지휘자인 정부에게 더 큰 압박을 줄 수 있다.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구조조정 추진 방식과 관련하여 금융감독위원회가 갈팡질팡한 것도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성공여부는 계열사들의 원만한 매각 여부에 달려 있다. 대우전자는 이미 매각이 성사되었으나 중공업이나 건설 등의 매각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덩치가 너무 커 인수능력자의 범위가 세계적으로도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매각이 원만하지 못하고 사태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대우그룹은 부도 상태에 처하게 되고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의 대우채권은 대거 부실화된다. 그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되면서 다시 금융과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총체적 경제위기 상태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97년말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대우사태가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현실에서 시장은 아직 전혀 통제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도취와 공포라는 비합리, 나만의 이익추구가 집단적 손해로 귀결되는 구성의 오류와 죄수의 딜레마 게임 상황은 정부에 의해 주의깊게 통제돼야만 한다.

사태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될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해결책은 기본적으로 방임이든지 아니면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자금의 투입이나 대우채권의 출자 전환과 같은 개입이다. 전자는 금융기관들이 대우 부실의 충격을 자체 흡수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얘기인데, 대우 차입금의 규모로 볼 때 현실성이 약해 보인다.

출자 전환은 대우의 채무를 주식자본으로 전환함으로써 대우의 차입금 상환 부담을 줄이고 부도를 막으며, 차후에 출자지분을 매각하여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대우채권의 출자 전환은 정부(소유 금융기관)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실상 대우그룹의 국유화 조치를 뜻한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자금의 투입은 대우 부실채권을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떠안는 경우이다. 이때 공적 자금의 투입은 원리상 어디까지나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공공적 목적을 실현하는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도덕적 해이 병폐 치유, 재벌에서부터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체이다. 기업의 죄악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데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이익을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회는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과 경영자를 정확히 솎아내서 제거하는 데 잘 기능하는 장치, 기업지배구조를 지녀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태까지 이것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정부가 그 판단을 해왔다. 정부는 그 일을 잘해 왔는가? 오늘 한국경제는 대우그룹의 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벌구조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들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권력의 행사는 법질서 안에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재벌이 밉더라도 그에 대한 정치권력의 월권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속에서 언제나 거대한 부정과 야합이 싹터왔다. 잘 작동하는 기업지배구조의 확립과 정치권력의 정확한 행사면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나 권력의 남용에 있었지 권력의 부족에 있지 않았다.

이윤호 순천향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