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794

시민단체 돈벼락 맞다?

시민단체 정부지원 민간보조금 지원실태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이 옷로비 사건으로 한참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졌을 때 뜻밖의 전화 두 통을 받았다. 시점은 법무부 장관의 퇴임 직전과 직후. 정부부처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김 전 법무부장관의 ‘경질’ 소식이 일간지 석간 1면을 장식하던 날 오전, 정부부처 관계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시민단체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정권 핵심의 한 관계자도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김 법무부장관이 옷을 벗었으니 시민단체들의 예정된 기자회견 등이 취소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질문을 해왔다. 소위 ‘제5권부’로 부상한 시민운동의 위력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다.

김대중정부의 이같은 시민운동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그야말로 시민단체를 한국사회 개혁의 파트너로 삼고 싶다는 개혁의지의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여당이라는 취약한 정치지형을 메우려는 계산된 측면이다.

정부지원으로 시민운동 위축 우려

행자부의 시민단체 프로젝트 지원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다소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정부가 야당의 빗발치는 반대를 무릅쓰고 민간단체들에게 지원한 150억 원이라는 막대한 액수의 돈이 시민운동의 확장을 통해 회비로 운영되는 자생 재정구조를 마련할 기회를 원천봉쇄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은 여기에 그친 게 아니다. 소위 관변단체를 포함해 민간단체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한다면 국정홍보처는 올해 “민주공동체의식 실천사업” 명목으로 61개 민간단체에 1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경쟁률은 3대 1. 당초 180여 개 단체가 110여억 원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역시 올해 학부모단체를 대상으로 3억 원을 지출할 예정이고, 농림부는 ‘농(민)??비자)??부) 협력사업’을 올해 신설해 1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민간보조예산 중 가장 큰 덩치는 문화관광부다. 올해 예산 중 무려 537억 원이 29개 민간단체 보조예산으로 책정돼 있다.

다음으로는 보건복지부. 보건, 장애인단체 등에 180억 원의 예산이 잡혀 있다. 노동부는 ‘근로여성 정책’ 명목으로 YWCA,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등 7개 단체에 64억 원, 주부 직업훈련 기관 또는 단체 보조금으로 100억 원이 책정돼 있다.

이밖에 기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중앙정부 각 부처에서만도 민간단체에 보조하는 예산은 총 1,000여억 원이나 된다. 기획예산처가 작성한 ‘민간보조예산 현황’상 2조 9,820억 원과는 큰 괴리를 보이고 있지만 엄청난 예산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민간 보조금도 중앙정부 이상의 규모다. 부산시가 올해 법과 조례 등에 따라 지원하는 예산은 130억 원. 인천 역시 매년 연초에 벌이는 공모사업을 포함해 140억 원이다. 광주도 민간에 위탁하는 사업비를 포함 147억 원이 배정돼 있다.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가 각각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민간 보조금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초자치단체의 민간단체 지원 액수를 가산한다면 시민들이 낸 세금중 막대한 금액이 민간단체로 흘러들어간다는 결론이다.

시민단체는 ‘관변 지원’ 들러리?

사실 정부의 이같은 민간단체 지원은 과거부터 해왔던 것들이다. 최근 들어 두드러진 특징은 그동안 정부지원을 받기 꺼려했던 소위 ‘공익적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양상. 정부로부터 지원받기 위해 관변단체들과의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 방식도 과거 경상비 위주의 지원방식이 아니라 행정관청의 업무를 민간단체들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업공모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업 타당성 심사를 통한 지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관변단체와 비교할 때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원은 극히 적은 실정이다. 행자부 프로젝트 지원액 75억 원 중 3대 관변단체인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17억 1,000만 원), 한국자유총연맹(8억 1,000만 원),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5억 2,000만 원)에만 무려 41%가 지원됐다. 중앙정부 부처 중 민간단체 보조예산이 가장 많은 보건복지부의 경우 대한적십자사(30억 원),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17억 9,000만 원), 한국의료관리연구원(17억 5,000만 원), 대한나환자관리협회(17억 원) 등에 큰 액수를 배정했고, 엄밀하게 시민단체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2억 5,000만 원), 한국여성의전화(2,500만 원), 한국여성민우회(2,400만 원), 한국여성단체연합(2,300만 원) 뿐이다.

타 부처도 이와 비슷한 실정. 문화관광부의 경우 대한체육회(256억 원)를 비롯해 독립기념관(69억 4,000만 원), 예술의 전당(31억 3,000만 원), 청소년 대화의 광장(29억 3,000만 원) 등에 큰 액수를 배정했고, 시민단체는 전무하다. 민간보조의 내용상 단지 생색용에 머물 뿐 과거와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얘기다.

춘천YMCA, 원주환경련 정부지원 거부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거부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실시한 프로젝트 공모사업에서 당첨된 춘천YMCA와 원주환경련이 그 대표적 예. 춘천 YMCA 김종경 사무총장은 “강원도의 경우 2억여 원의 공모사업에 98개 단체가 신청했으며, 이들 모두 당첨됐다”며 “새마을이 위탁운영하는 자원봉사센터에 4,000만 원을 미리 책정해 놓고, 50여 개 단체는 사업 내역과 무관하게 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민간단체 보조금 심사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일부 시민운동가들은 “제1섹터(정부)가 담당해왔던 영역을 민간이 경영하면서 효율과 창조성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위 ‘제3섹터 경영’은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기구가 마련돼 게임의 룰만 정착된다면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시민단체의 재정을 정부지원에 의존하게 되면 자생력을 잃게 되고 자칫 대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독립적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재정난을 겪는 상황에서 경상비를 인정하지 않고 시민단체가 사업비의 일정 부분을 조성해야하는 ‘매칭펀드’방식의 정부지원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행자부는 오는 9월 4일까지 지원단체들로부터 사업 중간보고서를 받아 이를 면밀히 검토한 뒤 점수를 매겨 ‘F학점’ 단체에겐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만약 이같은 행자부의 방침이 현실화된다면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정부지원이 시민운동의 저변확산에 쓰여질 지도 아직은 미지수.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현재 정부여당이 입법추진하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안」에 대해 기대하는 바 크다. 이같은 논란을 불식시킬 정부 간접지원방식이 명문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민간단체 활동에 들어가는 우편요금을 면제하고, 기업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금품에 부과하던 증여세도 감면된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최근까지 논란이 돼왔던 시민단체 직접지원방식도 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문제삼았던 것은 이 법안의 심사위원회 구성건. 완전공정경쟁의 틀을 갖추려면 심사위원회의 구성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주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법안이 통과된다면 보조금 지원 내용에 있어서 과거와 별반 달라질 게 없고, 시민단체들이 한푼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 원칙없는 배분방식에 동조한다면 시민운동의 발전에 되레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이는 정부와 새 정부간에 새 지평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시민운동의 자생 기반은 돈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운동’으로 획득해가는 것이라는 지적이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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