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734

무책임 행정에 발 묶인 15가구 재산권

동작구청의 황당한 건축물대장 조작과 범칙금 부과

복지부동, 탁상행정, 뇌물과 부정… 우리 사회의 행정을 바라보는 일반시민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을 때에도 주정선씨(33)는 ‘그래도’ 소리없이 시민들의 손발이 되어 애쓰는 공무원이 훨씬 더 많다고 믿었다. 그리고 교사로서 그 같은 믿음을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 주씨가 ‘행정을 믿은 죄’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늑장행정으로 인해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집을 빼앗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착오를 무마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기재했다가 정정하는 행정관청의 어처구니없는 추태를 보아버린 주씨의 요즘 심경은 말 그대로 참담하다.

행정을 믿은 죄!

사건은 1995년 11월, 주씨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 ?빌라 건물(동작구 흑석3동 소재)에 대해 감리가 진행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감리는 개정 건축법으로 인해 구청이 직접하지 않고 김모 감리사에게 위임되었다. 감리 결과 빌라는 건축법상 위반 사실이 없음을 행정청이 확인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3개월 뒤인 1996년 2월 구청의 ‘상설 점검’에서 ‘지층 노출’ 등의 위반 사항이 적발된다. 공사 도중 암반층을 발견, 설계변경 없이 그 위에다 건물을 올린 바람에 한 개 층이 더 올라가 버렸고, 이로 인해 일조권 침해시비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관할 구청인 동작구청이 건교부령 ‘건축물대장의 기재 및 관리 등에 관한 규칙’ 제10조 제3항에 따라 건축법상 위반 사실을 ‘적발 즉시’ 건축물대장에 기재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아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얽히기 시작했다(‘건축물대장의 기재 및 관리 등에 관한 규칙’ 제10조 제3항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제1항의 신청에 의하여 건축물대장의 등·초본을 교부하는 경우로 당해 건축물 및 대지의 현황이 허가를 받거나 신고된 내용과 다르게 되어 있는 등 관계법령에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 건축물대장의 등·초본에 이에 관한 내용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주씨가 이 건물에 입주한 때는 당시 96년 10월. 당시 주씨는 주택 내부의 견실함뿐 아니라 건물대장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매입했다. 그런데 햇수로 3년이 지난 5월 주씨 가족을 포함, ?빌라 거주 19가구는 동작구청으로부터 위법건축물임을 이유로 이행강제금 2,500만 원을 물라는 통보를 받는다. 더 놀란 사실은 1개 층을 허무는 시정조치를 하지 않으면 매 6개월마다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는 것.

6개월마다 이행강제금 2,500만 원 내라?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정신적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위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사고 팔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하니 급할 때 담보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이사도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구청측은 초지일관 ‘알아보지 않고 구입한 입주자 책임’을 강조했다.

“공신력 있는 행정서류인 건축물대장에도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알아봐야 합니까. 위반사실 확인 즉시 등본에 기재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한 공무원은 저희가 마치 재수없이 장물을 구입한 것처럼 말하는 겁니다. 산 사람 책임이라는 거죠. 거기다 문제가 있으면 건축주나 감리사한테 물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감리사에게 위임한 구청의 책임은 없어집니까? 심지어 문제가 발생하자 공무원이 나서 감리사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 달라는 건의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주씨의 항변이다. 실제로 허위로 조사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건축사 김모 씨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이후 주씨는 관계부처에 탄원서를 쓰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씨는 더욱 기막힌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

“민원을 계속 제기하자 구청측에서는 지난 96년 7월 30일부터 건축물대장에 위법건축물이란 표시를 기재했다고 주장하더군요. 97년 7월에도 매매가 이루어졌는데도 말입니다. 다른 일 때문에 97년 8월 28일 발부받았던 복사본이 없었다면 아무 소리 못하고 당했을 겁니다. 눈뜨고 당하는 격이죠. 그때에도 위법건축물이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에 항의하자 일주일만에 날짜를 빼버렸더군요. 그때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결국 나라나 행정 스스로 시민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분노한 주씨는 책임회피를 위해 공문서까지 위조하는 행정 관계자들을 본격적으로 고발하기 시작했다. 검찰청에 조사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내는 한편 인터넷에 그간의 과정을 상세하게 게재한 것이다. 다행히 변화가 있었다.

동작구청, 문제생기자 공문서까지 위조

문제가 확대되자 구청측은 이행강제금을 연 2회에서 1회로 줄여주고, 금액도 감액해 주겠다고 물러섰다가 급기야 지난 8월 중순 이행강제금에 대해서는 면제해 주겠다고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위법건축물은 적발 즉시 등재하도록 공무원에 대한 교육도 강화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구청이 책임을 인정한 것도, 위법건축물 사실이 해제되어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이행강제금 부과 문제도 대상이 ‘법령 위법자’인 건축주들에게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 또한 사람이 만든 만큼 불합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합리한 법이나 제도가 드러날 경우 잘못을 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함으로써 합리적으로 바로 세우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번 경우에도 준공검사를 외부 민간 감리사에게 맡길 때의 위험, 공직자의 부조리, 시차로 인한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 등을 시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모든 서류를 준비할 거라고. 우리 공무원은 법을 오히려 방패로 활용하는가 봅니다.”건축주 다섯 가구를 제외하고, 주씨 가족을 포함한 15가구는 가능한 한 관련있는 모든 이에 대해 책임 소재를 철저히 물을 계획이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겠지만 그래야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이 바로 선 나라’ ‘국민의 정부’ ‘○○○가 뽑은 제일의 친절 자치기관’ 등 현란한 구호의 반대편에 정당한 권리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시민들. 씁쓸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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