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1115

나눔의 공동체 가꿔가는 미래화폐의 오늘과 내일

21세기 대안의 삶을 찾아서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지금, 자본의 논리가 패권을 장악한 세상의 풍경은 음울하다. 야멸찬 돈의 힘, 싸늘한 시장의 논리만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규정하고 질서를 강제한다. 풍요로운 대지에 땀을 쏟아 아무리 풍성하게 농작물을 길러낸 농부일지라도, 수십 년 연마한 기술이 몸에 익은 노련한 기술자라도, 또 역시 아무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지혜와 힘과 기술, 생산물이 시장에서 팔려 돈으로 화하지 못하면 그것의 쓸모와 가치는 전무한 것이다. 때문에 ‘돈이 되는가?’하는 물음은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규정하는 잣대로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 따위는 거추장스럽고 때로 구차하다. 돈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 다수가 이런 질서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뒤로는 더욱 그렇다. 인간소외와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는 데에도 ‘남보다 많이 모은 돈’만이 유용하다고 선전될 지경이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살벌한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 사람에 대한 웅숭깊은 배려가 작용하는 거래방식은 없을까. 문득 이런 물음을 던져봄직하다.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미래화폐, 지역화폐(LETS :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스템이다.

화폐경제의 몰인정한 논리를 보완하자는 취지로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미래화폐, 지역화폐는 지난 1980년대 초 실업률이 급등했던 캐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코목스 지역에서 활기를 잃어가는 지역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던 마이클 린튼(Michael Linto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이미 전세계적으로 1,600여 개의 시스템이 가동중이며 이는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문화적인 특성 때문인지 잘 안되고 있으며 미국도 유럽에 비하면 덜 활발한 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녹색평론』이 지난 96년에 처음 소개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이후 미내사)이 98년 1월에 공고를 내고 그해 3월부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직접운영하는 시스템 외에도 현재 1,3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인천정보통신센터를 비롯해 송파구청 자원봉사센터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시스템이 가동중이다. 아직 시작단계라 활발한 거래, 안정적인 운영을 기대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신뢰만 잃지 않으면 얼마든지 ‘-계정’이 늘어도 좋다

미내사는 기존 회원 1,000여 명을 상대로 이 시스템을 제안해 비교적 순조롭게 미래화폐시스템을 가동했다. 직접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제도에 대한 연구와 보완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직접 시스템을 키워나가기 보다는 전국 각 지역에서 다양한 시스템이 가동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이를 널리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내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fm시스템(미래화폐)은 애당초 지역화폐 개념으로 출발한 레츠와 달리 전국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에 와서는 굳이 직접 왕래가 가능한 좁은 지역으로 그 대상지를 국한시킬 필요도 없어졌다. 미내사의 fm시스템에서 지역의 의미란 공간적인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이 시스템의 취지에 공감하는 특정한 사람들의 범주를 규정하는 의미에 보다 가깝다. 실제로 지역화폐, 미래화폐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미내사가 전국을 대상으로 가동하고 있는 시스템에는 현재 4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fm시스템의 1만 fm은 1만 원의 가치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지역화폐의 회원들은 누구든 필요에 따라 화폐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다. 화폐를 발행한다고 해서 인쇄된 지폐를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회원들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서로에게 제공하고 그 가치에 상응하는 지역화폐가 각자의 계정에 가감될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충청도에서 유기농 쌀농사를 짓는 회원이 현미를 fm(미내사의 미래화폐 단위) 100%로 내놓는다. 한 가마에 20만 fm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만약 10가마의 현미를 내놓았다면 그의 계정은 +200만 fm이 된다. 반대로 이 쌀을 한 가마 가져간 사람은 자기 계정에 -20만 fm이 기입된다.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와 물품이 없으면 계속 -만 누적될 수도 있다. 100%라는 말은 기존화폐를 전혀 받지 않고 fm만으로 값을 치러도 좋다는 말이다. 교통비, 유류비, 전기료, 공과금, 세금 등 현실적으로 fm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지금의 조건에서 fm 100%로 서비스와 물품을 제공하기란 이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동의와 확신이 없으면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다.

지불능력보다 신뢰가 중요

유기농 현미를 내놓은 충청도의 농부와 동시에 천안에서 농자재를 판매하는 상인이 자신의 농자재를 fm 50%에 내놓았다. 물론 그 사람이 꼭 쌀을 가져간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는 상품을 생산 또는 구입해 판매하는 비용 때문에 아직 100% fm으로 내놓기는 어렵다. 때마침 게시판에서 그 내용을 발견한 농부는 필요한 농자재를 반만 현금을 주고 구입한다. 쌀을 내놓고 +200만 fm이 되었던 계정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반드시 +계정이 있어야만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얼마까지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하한 규정도 없다. 다만 누구든 자신과 거래할 상대방의 거래목록을 열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상대의 거래내역을 통해 그가 어떤 소비를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계속 -계정만 늘어가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소년가장으로 당분간 돈벌이를 못하는 어려운 처지라면 그가 쌀을 사겠다고 할 때 기꺼이 쌀을 줄 수 있다. – 계정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도 불구하고 불요불급하지 않은 곳에만 계속 소비를 하고 있다면 그와의 거래를 거절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거래 당사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권한(미래화폐)을 발행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은 그 화폐로 구매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물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기존의 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기존 영어회화교습이 월 10만 원쯤 한다면 이를 기준으로 영어회화 10만 fm 100%라고 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실례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의 종로구 가회동 사무실 인테리어공사 역시 fm시스템을 통해 시공되었다. 물론 세 곳에서 견적도 받았고 가장 합리적인 견적을 제시한 회원에게 낙찰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미내사는 자신들이 소유한 강당을 100% fm으로 내놓고 있다. 게시판에 팔리기를 희망하며 내놓은 항목에는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많다. 얼핏보기에는 기존 생활정보지의 정보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물건과 서비스는 현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철골구조물 설치, 유기농산물, 인천-광주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화물운송을 fm으로 내놓은 회원도 있고 명상, 요가, 단식 지도와 아이돌보기, 외국어와 컴퓨터 교습, 컴퓨터 수리 등도 있다. 반면 피아노를 가르쳐 줄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도 게시판에 함께 올라와 있다.

이 새로운 시스템에도 이를 유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기존 화폐경제와 같은 야멸찬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굳이 지칭하자면 건강한 상식,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회원들의 자율적 판단 같은 것이다.

미래화폐 시스템이 좀더 보편화되면 실생활에서 현금의존도가 훨씬 낮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 쌀과 야채를 fm 100%로 갖다 먹고 시간여유가 있는 주말에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집에서 만든 요리를 대접하면 대가가 치러지는 식으로 말이다. 사람이 더 이상 구매력 있는 사람과 빈털털이로 구분되고 이에 따라 사람의 가치마저 등급이 매겨지는 몰인정은 많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도 지금보다는 훨씬 친근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 fm시스템 전담자 윤홍순 홍보실장

1년반 동안 미래화폐시스템을 가동해본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전망이나 가능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가입회원을 늘리는데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긍정성과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에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거래가 활발해지고 그 내용이 충실해지면 자연히 진심으로 취지를 공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고 그에 비례해서 시스템 내에서 fm만으로 생활이 영위되는 부분이 확대되리라고 판단합니다. 아직까지는 현재 화폐의 문제를 보완하는 정도지만 점점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갈 수 있을 겁니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현실의 불안정성을 다들 실감하게 되었고 실업자가 급증한 것도 이 시스템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리 계정의 금액이 늘어나도 이자가 불거나 하는 게 아닌 만큼 맹목적으로 치부를 하기 위해 남을 짓누를 필요도 없고 자신의 개성껏 화폐를 발행하고 타인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구입할 수 있는지를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이 시스템이 지닌 가능성은 생각보다 엄청나다고 여겨집니다.”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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