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1308

무식이 유죄

검게 광채가 도는 눈을 다시 한번 보자니까 아저씨는 부끄럽다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회색빛으로 죽어버린 눈이 감춰질까 하고 검은색 콘텍트렌즈를 구해서 꼈답니다. 아저씨는 95년 6월,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을 뻔했답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다 당한 사고였습니다. 그후 각막이식 수술을 받고, 공사장 콘테이너에서 겨울을 보내며 치료를 받았답니다. 일년 가량 그곳에서 눈칫밥을 얻어 먹자니 너무 괴로워 다시 공사판으로 나섰답니다. 96년 3월, 아저씨는 캄캄한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다 철판에 맞아 그 눈을 결국 잃고 말았습니다.

아저씨가 우리 상담소에 처음 연락한 것은 두 번째 사고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습니다. 처음 다쳤을 때는 공상처리해서 회사가 치료비를 냈는데, 두 번째는 아무도 병원비를 내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원비는 차치하더라도 회사측에서 고용한 깡패 같은 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라며 그냥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아저씨는 연신 주위를 살피며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그 깡패 같은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누누이 강조하는 폼새가 저를 못미더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렇게 깡마른 여자가 깡패들하고 어떻게 싸울까?’ 아저씨가 소속돼 있던 회사는 토목회사로 아파트 건설 초기에 토목공사만 간신히 끝내고 사라졌습니다. 일부러 부도를 냈다는 소문, 사장은 중국으로 도망갔네, 이사는 지리산에 숨었네, 그럭저럭 소문은 들리는데 회사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는 회사의 모모라는 사람들은 순 건달에 주먹패들이었습니다. 짧게 깎은 머리,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 목에는 개목걸이가 번쩍거리고, 거들먹거리는 이마에는 번들번들 개기름이…. 무조건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며 병원비라도 받고 싶으면 중국 가서 사장을 잡아오라는 둥 어거지에 큰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싸우다 싸우다 결국은 원청에 달라붙어 별의 별 짓을 다 한 뒤에야 산재로 하게 되었는데….

원청에서는 첫 사고가 공상으로 이미 끝난 건이라 하여 자기들은 책임질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몇차례 원청을 접촉하여 결정한 내용이 첫 사고는 어차피 공상처리했다고 하니 못 받은 휴업급여를 받아내는 것으로 종결하고 두 번째 사고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차피 같은 눈을 다쳤으니 두 번째 사고만으로 장해급여를 받아도 금액은 같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우리야 손해볼 것이 전혀 없다는 꿍꿍이 속에 슬쩍 회사를 봐주는 척하며 첫 사고는 휴업급여만 정리해 주면 문제삼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큰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모든 것이 다 끝나고난 뒤였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한쪽 눈이 실명되었으니 장해등급 8급이고 장해급여가 얼마 나오겠구나 계산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실제 나온 금액은 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깜짝 놀라 알아보니 8급에서 첫 사고로 손상된 정도가 12급이니 그 만큼을 빼고 가중 손상된 부분만 지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첫 사고도 산재로 해 보자고 부랴부랴 준비했지만 산재보험 청구기한인 3년이 이미 1주일가량 지난 후였습니다. 아무리 길길이 뛰어도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낙심하는 빛이 역력한 아저씨 앞에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신중히 살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꼬박 2년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내 실수 한방에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길에서 전화가 옵니다. 백두산 계절이 또 바뀐다며…. 이번 계절 가기 전에 한번 놀러오라고….

이란주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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