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1월 2000-11-01   843

민관합동조사 기대반 우려반

시한에 쫓기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0여 년 동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끈질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둬 99년 12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지난 10월 1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9명의 위원과 민·관 합동 조사단으로 구성되었다. 각고의 투쟁 끝에 만들어진 진상규명위원회.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거’. 과연 민ㆍ관 합동의 한계를 딛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대통령도 노벨평화상 받았는데, 옛날처럼 거짓말하면 안 되지. 똑바로 해야 돼.”

지나가던 50대의 한 시민,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현판식을 하려는데 다가와서 거듭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지난 시절 반민특위의 활동에서 청문회, 특별검사제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상조사가 국민들의 의구심을 제대로 풀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러니 국민들로서는 정치적인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은폐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법제정에서 위원회 구성까지 의문사진상조사의 길이 순탄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법제정도 유가족들이 1년이 넘게, 422일 동안 여의도에서 천막농성을 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김학철 조사단장의 말이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의문사 진상조사에 대한 요구는 1988년부터 시작되었다.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135일 농성을 시작으로 10만명 서명운동, 국회청원 등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진상규명을 촉구해왔다.

정부는 10월 17일 위원장으로 양승규 교수(가톨릭대학교 법학과)를, 문덕형 실장(전라남도 기회관리실)과 김형태 변호사를 상임위원으로, 그외 비상임위원 6인을 임명하고 50여 명의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 조사 대상이 되는 ‘의문사’는 69년 삼선개헌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으로 한정된다.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위법한 직간접적인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했다고 추측되는 죽음에 대해 올해 12월 31일까지 진정을 접수받는다. 진정된 사건은 30일 이내에 조사여부를 판단해 진상조사의 개시나 각하를 결정한다. 진상조사가 개시된 사건은 60일 내에 조사를 종료해야 한다.

우선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해본다면 조사관 수와 조사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로 접수된 수만 44건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건들이 접수될 것이다. 이것을 파악하고 조사여부를 판단함과 동시에 실지조사를 벌여야 하는데 조사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현재 의문사로 추정되는 사건의 많은 증거들이 인멸된 상태이다. 알려진 정보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어 있으므로 진상조사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적 증거는 거의 없다고 보죠. 그러니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직접 가해자나 책임자가 부인하면 조사는 난항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김학철 단장은 앞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사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조사권한이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특별법에는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출석요구를 받은 사람에게 동행명령권만 있을 뿐, 구인장을 발부하는 등의 강제적인 조치가 없다. 단 실지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 1,000만 원에 처해진다는 조항이 있다. 직·간접 가해자거나 책임자인 경우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과태료를 물고말 개연성은 충분하다.

또 하나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죽음이 초래되었다고 추정되는 사건이다. 물적 증거나 자료가 대부분 군·경찰을 비롯한 국가 기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조사시 정보공개에 성실히 임할지도 의문이다.

조사관 역시 민·관 합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민·관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 의견이 갈라질 수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파견나온 것이며, 다시 일하던 기관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조사시 부담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육군고등검찰부 이동호 씨(고등검찰관)는 말했다. 실지조사가 착수되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 관에서 파견나온 조사관들은 누구나 이런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부에서는 팀교류를 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위원회는 총 4개의 조사과가 있다. 조사 1과에서는 검찰관련 사건을, 2과는 경찰관련, 3과는 군관련 사건, 그리고 특별조사과는 위원이 특별히 명하는 사건에 대해 조사활동을 벌인다. 그가 말하는 팀교류라는 것은 군·경찰·검찰 조사관들이 자기 관할기관의 사건 외에 다른 조사과로 돌아가면서 조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문제가 지적되자 내부적으로 방법을 모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관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은 민간 조사관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동호 검찰관은 “수사의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그래도 공무원들에 비해 의지와 신념이 있으니까 상호보완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간 조사관들은 “역사적 의미에 대해 큰 의미부여없이 파견나와서 근무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공무원들의 관료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양쪽의 문제제기는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가 양쪽 입장차이로 결론 맺을 것이 아니라 진상조사라는 대의에 충실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한 민간단체에서 파견된 조사관은 “되도록이면 서로 사소한 다툼이나 의견대립은 피하자고 내부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김학철 조사단장은 “예상되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뚫고 나가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그 동안 과거청산이 일부 저항세력에 의해 항상 좌절되었다. 외국에서는 남아공진실조사위원회 같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다른 나라와 연대해서라도 인류의 인권신장을 위해 기여해야 할 것이다”며 신념을 밝혔다.

의문사는 왜곡된 현대사의 비극적인 상징이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출범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진상을 밝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 마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근엄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 역시 진상규명이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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