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526

21세기의 민주주의는 안녕할 것인가

이제야 20세기의 마지막 날은 저물어 가고, ‘진짜’ 21세기의 아침이 밝아오려 한다. 역시 억지로 끌어다 써버린 ‘가짜’ 21세기의 첫해는, 어쩔 수 없이 세기말의 짙은 어둠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시간은 ‘가불’을 허락하지 않는다. 희망도 동일하다. 언제나 존경의 염으로 우러르게 되는 봉화의 농사꾼 전우익 선생의 말투를 흉내낸다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드는 법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권력의 무리는 시간이나 희망의 ‘가불’이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아니, 정직하게 말한다면 환상의 ‘가불’을 시간이나 희망의 ‘가불’인 양 최면코자 한다. 전율할만한 사태이다. 더구나 그들이 찬미해 마지않는 정보화의 약진은 링컨의 명언을 뒤엎고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이는 조작의 기술마저 개발한다. 한마디로 무서운 세상이다.

이른바 언론의 미디어망, 바꾸어 말해서 정보전달의 그물을 독과점하는 몇무리의 ‘제국’들이 입을 맞추고 나선다면, 거짓의 세계도 진실의 세계로 쉽사리 둔갑한다. 구태여 이 땅에도 진입하게 되리라는 루퍼트 머독이나 타임워너 그리고 베르텔스만 그룹들의 이름을 헤아려야 할 나위는 없다. 그들 언론재벌은 이미 ‘새로운 제국’이라는 명명을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자랑으로 내세운다. 가령 CNN 방송의 방자한 자부를 들어보라. “우리의 뉴스는 전지구의 뉴스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이 채택하지 않은 뉴스는 뉴스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윤과 ‘제국’의 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뉴스를 조작한다. 이를테면 세계를 경탄케 했던 걸프전쟁의 생중계 방송도 그 하나의 본보기라고 한다. 생중계라는 미명 아래 방독면과 스텔스 전투기 그리고 패트리어트 미사일 따위를 밀어주며 전쟁의 진상을 은폐했다는 언론학자들의 고발에 접하면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날의 경탄이 치욕으로 덮쳐든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진행중인 지구화의 한 지주인 정보화의 단면이다. 언론 ‘제국’들의 횡포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이들은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를 읽어보기 바란다. 어이없는 21세기의 ‘가불’과 이에 가세한 언론 미디어들의 ‘오보’는, 세기말과 이어진 새로운 세기의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증상이다. 덩달아 등장한 ‘제국’과 지구화와 정보화 따위의 낱말들은 바로 오늘과 내일을 잇는 열쇠의 언어가 아니던가. 그 가운데서도 제국 또는 제국주의는 20세기의 전반과 후반을 주름잡는 끈질긴 언어이다. 거칠게 말한다면 20세기의 전반은 제국이 쇠퇴하고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였다고도 정의된다. 그러나 후반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국민국가가 희석되어가고 새로운 ‘제국’이 일어서는 시기로 접어들었다고도 진단된다.

이러나 저러나 20세기는 ‘제국’의 낱말을 빼버리고 말할 수 없다. 20세기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낱말인 전쟁 역시 그 제국 또는 제국주의의 함수에 다름 아니다. 다만 싸움터의 싸움거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이제 오늘과 내일의 싸움은 ‘무역전쟁’이거나 ‘경제전쟁’이라는 명패를 달고 진행된다. 건너뛰어 말한다면, 새로운 ‘제국’과 새로운 ‘전쟁’을 촉발하는 지렛대는, 이른바 세계화라고도 말해지는 지구화의 현상이며 지구화의 이데올로기이다.

고전적인 뜻을 저버리고 새롭게 등장한 시장의 우상은 모든 질서를 허물고 세계를 지배코자 한다. 울리히 벡은 심지어 시장무정부주의라는 명명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초국민기업과 자본은 하늘을 나는 새들보다도 경쾌하게 국경을 넘나든다. 때문에 울리히 벡의 ‘초국민기업’은 차라리 ‘통(通)국민기업’으로 번역되어야 옳을지도 모른다. 분단의 장벽, 휴전선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새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선 참으로 반가운 추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경제 또는 신경제자유주의라고도 일컬어지는 시장만능의 지구화는 우선 인간을 인간다운 자리에 놓아두지 않는다. 지켜주지 않는다. 지난 날의 산업사회가 인간을 기계의 톱니바퀴쯤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었다면, 이제 지구화 시대의 시장주의는 인간을 자본과 시장의 부품쯤으로 떨어트려 가고자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또는 구조조정 따위의 언사는 그 같은 발상의 수사학적 표현일 뿐이다.

멀리 남의 땅을 건너다 볼 필요도 없다. 오늘도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을 보라. 구조조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목 자르기이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우상을 떠받드는 무리는 태연히 말한다. “몸집을 줄이고 기업이 살아나야만 새로운 일자리가 불어나게 된다. 그래야만 산업이 줄어든다.” 그러나 ‘노동 없는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기업의 성장이 반드시 고용의 확대와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바로 지구화 시대 기업의 새로운 추세이기도 하다.

때문에 거듭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실업의 군상은 늘어만 간다. 그렇다고 저들이 미사여구로 떠벌리는 사회적 안전망도 가난할 뿐이다. 노숙의 차디찬 풍속도는 이 시대의 아픔을 드러내는 알몸의 모습이다. 더할 수 없는 비극의 풍경이다. 그 비극에 견준다면 사치스러운 넋두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뿌리깊은 비극은 민주주의의 위기 또는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노동의 안정은 민주주의의 소산이면서 또한 민주주의의 지주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란 그것만으로 확보되는 자유일 수 없다.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경제적 자유의 터전 위에서만 정치적 자유도 피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노동의 불안정은 바로 민주주의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노동의 문제를 노동자의 문제만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이들은 현재진행중인 지구화의 흐름을 국가와 경제의 분열이거나 분화로도 표현한다. 시장경제의 승승장구는 이미 국가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뜻인가. 이제 지구화의 시장은 오히려 인간을 번롱하는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마침내 프랑스의 외교관 출신 교수인 장 마리 게에노는 『민주주의의 종언』을 예언한다. 국경의 붕괴와 더불어 이제껏 일정한 영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국민국가는 몰락해간다. 그리하여 온 세계가 국경을 넘어 네트워크의 묶음으로 바뀌어진다. 이런 상황에 걸맞는 정치조직이란 경계를 갖지 않는 망망한 ‘제국’, 그것도 어쩌면 ‘황제 없는 제국’으로 변질되어 갈 것이 아닌가. 그 새로운 ‘제국’의 시대는 일상적인 폭력의 시대로 떨어져 갈 것이다.

그의 예언이 적중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민주주의의 안녕이 위협받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조짐만은 틀림없이 감지된다. 이 한마디를 증거하고자 멀다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앞서 가는 이들의 뜻을 비슷하게나마 옮겨두어야 한다는 강박이 문장의 난삽함을 부른 듯 하여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길이며 쌓아온 글이다. 더러는 모자랄 지 모르나, 나는 그만한 전체를 바탕삼아 두 마디 말만을 이 글자리에 새겨두고자 한다.

그 하나는 이 시대의 증상을, 아니 그 증상의 뿌리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시장과도 동일하게 민주주의가 만능의 처방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주의는 인간을 저버린 오늘의 지구화를, 인간을 위한 내일의 지구화로 바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인류 모두가 한 가족이 되는 지구화의 더불어 삶이란 얼마나 오랜 인류의 꿈이던가. 그 해묵은 꿈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무장’을 스스로 풀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모두가 시장의 지구화만이 아닌, 민주의 지구화 시대를 사는 지구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

그 둘은 시민사회운동의 지구적 연대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시장의 우상을 떠받드는 저들만큼, 이 시대적 요청을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의 문제’로 깊이 새기지는 못 했던 게 아닌가. 감히 단언코자 한다. 이 나라 안의 모순을, 이 나라 안의 운동만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세기의 ‘가불’을 방불케 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비록 모순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구화의 세계질서는 이미 한 나라의 재량으로 벗어날 만큼 느슨하지 않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그리고 인간을 위한 지구화를 열어나가고자 한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의 수작쯤으로 비치는 운동, 어쩌면 소꿉놀이쯤으로 비하될 수도 있는 운동의 지평에서 벗어나야만, 우리의 민주주의, 세계의 민주주의의 안녕은 지켜진다.

김중배 언론인 ·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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