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452

실업대책, 발상을 전환하라

제2의 실업대란을 예고하는 각종 징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IMF를 극복한 검증된 실업대책’이라며 이전 실업대책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정부에 대해 노동·시민단체들은 기초생활보장법이나 정부의 실업대책 사각지대에 놓인 장기 실업자군, ‘일하는 빈곤층’의 문제를 제기하며 공공근로 등 사회적 일자리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점차 장기화ㆍ고착화돼 가는 국내 실업문제에 대해 발상을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2000년 1월 1일이 밝아오던 순간, 광화문에서 열린 밀레니엄쇼를 감상하던 국민들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IMF로 인한 고통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듯했다. 이제, 위기는 다 넘겼다는 자부심도 묻어났다. 그런데 2001년 1월, 다시금 공장이 멈춰서고 실업자들이 거리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건설·농림·어업부문의 일용직 노동자의 실직과 신규 졸업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동절기라는 계절적 요인 외에도 지난 해 건설업체 퇴출과 대우자동차사태에 연이은 협력업체의 구조조정, 게다가 앞으로 예상되고 있는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까지 거치면 올 2월경에는 120만 명(노동부 집계 96만 명) 가량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노동부는 공공근로, 창업지원, 직업훈련, 인턴제, 채용장려금제 확대조치를 골자로 한 고용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동시에 2001년 2월을 정점으로 실업자가 줄어들고 구조조정과 4대 개혁이 마무리되는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몰라보게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되풀이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제2의 실업대란이라는 심각성에 비춰볼 때 너무나 한가한 관측이며, 실업대책이라는 것도 재탕 삼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김호진 노동부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MF를 극복했다는 것은 ‘검증받은 실업대책’을 갖고 있는 것”이며,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 일시적 실업은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분야에서 20만 명, 3D업종에 10만 명의 일자리가 남아돌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직업훈련 등으로 실업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과연 ‘검증 받은 실업대책’인가?

그러나 그 동안의 실업대책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 그렇게 일시적으로만 참으면 되는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적인 예가 바로 장기실업자들의 존재다.

한국도시연구소 신명호 부소장은 “서구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실업문제도 점차 장기화ㆍ고착화될 양상을 보이는다. 그동안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실업률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 하는 부분에만 집중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피상적인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업운동 관계자들은 그저 실업상태로 있다가 단기적인 일거리가 있으면 잠시잠깐 일하는 상태를 반복하는 ‘일하는’ 장기실업자들의 존재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 개인적인 능력과 체력의 한계 때문에 정보관련 직업훈련을 받을 수도, 3D업종에서 오래 버틸 수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로 일용직 등을 전전하는데 IMF 당시 노숙자로 그 일부가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공공근로사업이 시작되면서 이 가운데 일부는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게 됐다. 2000년 1단계의 경우 여성(55.2%), 50대(36.8%), 초등학교 졸업 이하(41.6%), 일용직(32.3%) 등이 가장 많은 구성비를 보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지난 해 중순 공공근로사업의 축소가 논의되자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보고한 장기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은 설득력을 갖는다. 따라서 공공근로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확대가 있어야 하고, 이를 제도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민간위탁기관에서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공공근로와 같은 임시 일자리를 안정적인 일자리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민간에 위탁된 공공근로사업을 ‘자활사업’의 하나로 개념화하여 그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무료간병인 파견사업, 태백 생명의 숲 가꾸기 사업, 집수리사업, 음식물찌꺼기 재활용사업과 같은 민간위탁형 외에도 봉제업, 도시락 배달업, 청소 용역업, 건설업 등의 창업형도 있는데 이것은 자활생산공동체운동으로서도 이제 맹아적 단계를 지나고 있다.

공공근로의 제도화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해야

이런 움직임은 유럽 등에서 활발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운동과 전망을 같이 한다. 지난 12월 6일에서 9일까지 성공회대,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국제포럼에서는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사례 소개와 함께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한국적 제도화를 위한 각종 논의가 진행되었다.

한국 사례로 소개된 한 복지간병인사업과 같이 사회적 일자리는 여러 측면 중에서도 공공부문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서비스를 확충하는 동시에 노인, 장애인, 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이 직접적인 서비스 생산자로 보호된 시장 내에서 고용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객관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실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장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EU 8개 회원국의 경우 사회적 일자리와 같은 제3섹터에서 99년 현재 720만 명 규모의 고용창출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사회적 일자리의 운영 주체는 민간 비영리단체들이 대부분이지만 비용의 상당부분은 유럽사회기금과 각국의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이정운 사무국장은 “현재 조건부 수급자로서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7~80%가 생계급여를 받아야 하는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렇게 기초생활보장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위해 조속히 ‘사회적 일자리 특별법’과 같은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1년간 중장년층 여성 92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온 복지간병인 사업도 3단계 연속 참여할 수 없다는 공공근로 규정에 걸려 숙련되기 시작한 인력들이 또다시 경쟁시장으로 밀려나면서 실업자군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연구원 황덕순 부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민간위탁형의 존립근거는 정부의 위탁에 있는데, 특히 취약계층의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공공부문에서 특정한 영역을 할당해 주거나 초기에 창업에 소요되는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실업정책의 기본 출발에 대한 문제제기도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이수봉 소장은 “현재 정부는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해 실업자를 양산한 후 사후약방문 식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문제”라며 “근로시간단축과 같이 예방실업정책으로 방향을 돌리고 공공근로의 제도화 등과 같이 실업정책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월 ‘사회보장과 노동의 유연성’을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시간제 근로나 육아휴직, 전직훈련 등 정규 고용상태에서 이탈된 이동성 노동시장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돌봄으로써 고용시장에 실효를 가져왔던 90년대 유럽의 사례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최선의 실업정책은 고용이라는 믿음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100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을 조성하면서도 정리해고노동자를 위해서 그 10%도 안 되는” 예산규모를 책정하고, “최소 3,600억 원이 필요한 내년도 공공근로사업에 단 500억 원 정도만 책정”해 놓은 정부의 행태를 보면 갈 길이 첩첩산중임을 느낄 뿐이다.

한혜영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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