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1040

이들에겐 대한민국이란 없다

‘사회안전망의 부재’에대해 비판적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대에 반해 이 법은 도시 최빈민층이라고 할 수 있는 무주택자 ·노숙자 ·쪽방 거주자를 보호하기는 커녕 기존 제도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본지는 여전히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지역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 기획은 앞으로 2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전세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성경 얘기부터 해보자. 한 포도농장의 주인이 일꾼을 썼다. 동틀 무렵에 한 무리의 일꾼이 와서 성실히 일을 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또 한 무리의 일꾼이 왔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또 한 무리의 일꾼들이 와서 일을 했다. 밤이 오자, 농장 주인은 일을 마치게 하고,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했다. 주인은 공교롭게도 아침 일찍 와서 종일 일한 사람이나 해질 무렵 온 일꾼들이나 똑같이 두 달란트씩 주었다. 이러니 종일 일한 일꾼들은 반발한다. 이에 대해 주인 왈 “이것이 하늘나라의 복음”이라고 일축한다. 현재의 임금 개념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좀 발휘해보자. 아침 일찍 농장으로 온 사람, 그들은 달리 해석하면 노동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일터에 온 사람은 인력 시장에서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 즉 장애인 노약자 병자 등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주인은 왜 이들에게 똑같은 대가를 허락했을까? 이렇게 해석해보자. 개인의 능력, 노동력, 노동시간의 차이를 막론하고, 최소한 인간으로 살기에 필요한 조건인 두 달란트는 똑같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장애인이건, 노약자이건 먹고 자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주어져야할 최소한의 몫, 두 달란트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사회복지 개념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할 두 달란트.

성경이 쓰여질 당시,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이전에 살았을 저자의 문제의식을 서기이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자부하는 인류는, 한국사회는 현재 어떻게 제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가?

반드시 확보되어야할 두 달란트

영등포 역과 담벼락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는 쪽방지역. 다르게 설명하면, 영등포 롯데백화점 뒤, 화려한 건물 뒤에 가려져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 행정구역으로는 영1동, 영2동으로 분류한다. 쪽방이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에다 별도의 욕실이나 화장실이 달려 있지 않은 방을 말한다. 방을 작게 쪼개어 개조하여 ‘쪽방’이라 불리는데 영등포 지역에는 약 800여 개 쪽방에 600∼700여 명이 거주하는 걸로 추산하고 있다. 이 지역 실태를 보기 위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와 동행했다. 그러나 골목 어귀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쉽게 골목으로 성큼 들어서지 못한 이유는 본능적으로 느껴진 그쪽과 이쪽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외견상 옷차림에서부터 너무나 다른 그들. 우리 속의 이방인, 그들 속의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양자가 다 느끼는 바였다. 선뜻 다가가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았다. 엄청난 벽이 존재함을 느꼈다. 거의 노숙하다시피한 허름한 옷차림, 연탄불이 꺼졌는지 다리를 절룩거리며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어두운 공간으로 사라지는 사람, 집 문 앞에서 어떤 이와 절망적인 표정으로 얘기하는 소위 말하는 난장이, 가분수…, 술 취한 목소리로 밖으로 갑자기 튀어나와 집안에다 욕설을 퍼붓는 한 여인….

술에 취해 거리를 쓸고 다녔을 법한 차림새의 한 사내가 옆으로 스친다. 그가 앞질러 앞에서 걸어가는 걸 보고서야 안도감이 든다. 혹시 뒤따라와 목덜미를 낚아채고 시비를 걸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이 지역에 대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울타리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서 비롯된다. 오랫동안 쪽방지역을 조사해온 서종균 씨(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쪽방지역민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선입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사람들에 의하면 쪽방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이 알콜중독자라고 한다. 그러나 실상 많은 사람을 접해보면 다수가 알콜중독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그들이 한평 남짓한 방에 기거할 정도로 가난한 건 게으름이 원인이다. 서종균 씨는 일반인보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 저학력에 따른 무지, 장애·질병 등의 이유 때문이지 “게으름이 근본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셋째,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행이나 욕설 등을 감안할 때 일반인보다 성격이 다소 거칠다. 그는 이 의견에 대해 그들을 막상 만나보라고 한다. 그러면 같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나약함을 가지고 있을 뿐 절대로 거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이 지역을 직접 방문해 쪽방 거주자들을 만나면서 이들에 대해 얼마나 사회적·제도적 배려가 취약한지,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지는 편견이 이들을 얼마나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지 확인했다.

거주자 중 50% 이상은 주민증 없어

‘햇살보금자리’. 영등포 쪽방지역에서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상담·지원하는 시민단체이다. 이곳에서 몇 명의 쪽방 거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주민등록 말소자였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이동성이 강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소득이 낮은 도시의 최빈곤층이기 때문에 이사를 할 때마다 전입신고 및 주민증 갱신을 하지 못해 말소된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어렵지만 추정컨대 거주자의 약 50% 이상이 주민증이 없는 상태일 거라고.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긴 했지만, 이러한 주민등록 말소자인 경우는 기초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다. ‘햇살보금자리’와 참여연대 수급권운동본부는 주민등록증 말소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재발급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거주자들 사이에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다”는 입소문이 돌아 햇살보금자리로 상담을 받으려고 한둘씩 모여든 것이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보니까…. 평생 건설업 일용직으로 먹고살기 바쁘기도 했고, 그런 노가다 일에선 꼭 주민등록이 없어도 됐기 때문에 그냥 이럭저럭 살았단 말입니다.”

주민등록 말소에 대한 정해선 씨(45세)의 답변이다. 쪽방지역 거주자들이 한 지역에서 오래 지내기도 하지만, 그의 경우는 서울역 뒤 쪽방과 영등포 쪽방을, 혹은 쪽방과 노숙을 왔다갔다하는 편이다. 쪽방은 월세로 10∼15만 원, 또는 일세로 4,000∼7,000원 정도이다. 햇살보금자리 이기옥 간사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쪽방 거주자들의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이 노숙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현재도 거주자들의 50%가 노숙한 경험이 있고, 노숙과 쪽방생활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쪽방거주자들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고 전했다.

이날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상담을 하러 온 사람 중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가 있었다. 남궁태우 씨(83세). 그는 주민등록증뿐 아니라 호적조차 없다.

그가 사는 쪽방으로 가서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은 인생경력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기꾼 놈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 적도 있었지. 이제는 아무도 안 믿어. 사람들과 얘기도 하기 싫어.”

사회에 대한 불신감과 소외감을 철저히 안고 사는 사람. 그는 주민등록증 때문에 세 번이나 사기를 당했다. 주민등록증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40만 원 주면 해주지”라고 해서 없는 돈에 40만 원을 마련해 이튿날 갔더니 꾀이던 그 사람은 돈만 받고 달아났다. 몇년 후, “60만 원 주면 해주마”고 약속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또 떼어먹고 없어졌다. 그리고 또 다시 “IMF 터지고 나서 98년이지, 이번에는 80만 원이라는 거야.” 마지막까지도 세상은 그의 간절한 희망을 저버렸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이다. 그러니까 북에 호적이 있다. 해방되고 난 후 북에서 일본으로 갔다. 거기서 결혼까지 했고, 아이가 한 살될 무렵, 한국전쟁이 터졌다. 휴전될 무렵, 그는 부인과 아이를 먼저 북으로 가는 배를 태워보내고, 얼마 후 뒤따라가기 위해 원산행 배를 탔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원산이 아니라 부산이었다. 그가 배를 잘못 탄 것이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까지 끌려가 고문·폭행을 겪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주민등록도 없이 산 지 50여 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맨몸 하나뿐이었던 그는 남의 집일부터 농사일, 산판, 공사판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이제 나이 여든을 넘어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상봉한다고 떠들면 눈물이 날 뿐이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이산가족상봉도 못하는 처지를 생각하며 몸에 꽉 끼는 좁은 방안에 덩그라니 누워 있으면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한번씩 혼자 엉엉 울어. 음력 섣달 그믐이 되면 그냥 방바닥에 대고 하염없이 울지. 요즘은 잠이 안와. 주민등록증 만든다고 햇살보금자리 갔다오고 난 후부터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그렇게 신경 썼더니 오줌에 피가 섞여 나와.”

그는 여느 때처럼 눈물을 글썽였다. 같이 갔던 자원봉사자가 그건 어디 아파서 그런 거지, 신경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꼭 병원에 가서 물어봐야 된다고 일러줬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요즘 잠을 통 못 잤어. 이것 때문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현재 수세미 장사를 한다. 요즘은 통 안 팔려 하루 1∼2만 원 정도 버는데 매일 거리로 나설 만큼 건강하지 못하다. 그 돈으로 방세 14만 원을 주고, 남은 얼마의 돈으로 삼시 세끼 손수 끼니를 해결한다. 말이 그렇지 세 명이 앉아 있기도 비좁은 방에 냄비 하나와 쌀 20kg짜리 한 부대와 계란 두 개만 보일 뿐이다. 쌀과 계란은 최근 그의 방을 방문한 어떤 이가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사주고 간 거라고 하는데, 그것으론 충분한 영양섭취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를 통해 쪽방 생활의 단면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쪽방지역에 지원되어야할 문제는 최저생계비 외에도 상담센터이다. 거주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어야할지 안내해줄 통로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거주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줄 지원단체가 없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의 정보수집 경로는 같은 쪽방지역 거주자들의 입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쪽방상담소’ 설치ㆍ운영의 시급함을 호소했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조만간 서울지역에 쪽방상담소 두 곳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구멍난 기초생활보장법, 쪽방엔 찬바람만 가득

쪽방지역이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1일, 영등포 쪽방지역에 화재사건을 통해서이다. 1명이 사망하고, 30여 가구가 불에 타 800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있었다. 판자집 좁은 공간을 다시 1층, 2층으로 나눠 1평 남짓한 크기의 방을 만들고, 심지어 욕실 창고였던 공간을 개조, 잘게 쪼개 쪽방을 만드는 실정이니 한 가구에 불이 나면 쉽게 인근 방으로 옮겨붙어 화재 발생시 엄청난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햇살보금자리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는 구청장을 면담해 쪽방에 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요구했다. 이로써 쪽방지역에 대한 민관합동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갑자기 한파가 밀어닥친 12월 11일, 시민단체와 영등포구청이 합동으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 팀과 합류해 현재 거주자 중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보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기초생활보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지난 달부터 16만 원이 통장으로 들어와 있습디다. 그런데 이게 정말이지….”

김영훈 씨(57세)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한때 그는 현대조선조 용접반장까지 지냈다. 건설현장에 가서도 용접기술이 있으니 여기저기 불려다녀 수입이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지하철 5호선 터널공사 도중 허리를 다치게 됐다. 산업재해보상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현재는 약에 의존해 통증을 달래지만, 변변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로선 노동을 통해 수입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

“내가 몇 달 전에 공공근로를 좀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데가 없어요. 사회복지사가 와서 소득에 대해 물어보길래 10만 원이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이걸 보고 수입원이라고 해서 지원금에서 제했어요. 남들이 들으면 10만 원이니까 별거 아니겠거니 하겠지만 이 처지에는 큰 돈이란 말입니다.”

기초생활보장은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가 26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전액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가구의 소득이나 기타 지원액을 뺀 나머지 부분이 지급된다. 그러니 조사 당시 김영훈 씨는 공공근로를 다녔고, 이 소득이 빠진 거다. 공공근로는 고정적인 수입원이 아니다. 현재는 공공근로 일자리가 없어 못 다니고 있으니 지원금 16만 원으로는 방세 14만 원 내고 나면 2만 원 남는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일일 행상을 나가요. 그런데 그 사람은 어찌 됐는지 제하는 것 없이 나오더라구요. 형평성이 없잖습니까? 구청 가서 따진 적이 한번 있어요. 누구는 그렇게 받는데 나는 왜 이러냐고. 구청에서 누구냐고 이름 대라고 하길래 누군지 안 가르쳐줬어. 그 사람 받는 것에 지장 생길까봐.”

그는 벽에다 대고 원망의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비단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생계급여 산정시 과거의 공공근로 소득을 반영, 소득 변동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수급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시민단체들은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에 질의서를 전달한 바 있다. 또, 시민단체들이 벌인 조사에 따르면 공공근로 대상자 중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공공근로에서 탈락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이런 푸념은 김영훈 씨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이후, 줄어든 지원금으로 생계가 더욱 어려워진 한 생활보호대상자의 비관자살 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줄어든 지원금 외에도 대상자 선정이 기존 제도보다 더욱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해 오히려 대상자가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애초에 약속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적어도 쪽방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두 달란트의 희망. 이것이 천국을 푸는 열쇠일 것이다. 허나 현실에선 언제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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