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661

제대로 알고 비판하라!

시민운동 진영 내부에 던지는 쓴소리

시민운동의 관변화, 시민 없는 시민운동, 낙선운동의 탈법 시비 등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시민운동진영은 이런 문제제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한 사회학자가 던지는 쓴소리를 들어보자. 편집자 주

한국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비판이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 의해, 그리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에 의해서도. 과거에도 있었지만, 다시 최근에도.

이 글은 시민사회단체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성역(聖域) 내에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 글은 시민사회단체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고, 또 비판의 대상이어야 하고,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민사회단체가 그 생명이라 할 정당성을 시민과 시민사회로부터 부여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투명성·공정성·도덕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고 그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가 언제나 내·외부의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스스로 문제거리가 되거나 문제를 안고 있어서는 시민사회단체 외부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는 스스로 아무리 반복해도 문제를 만들지 않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돼야 한다.(이 글에서 규정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정부나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GONGO(Government-organized NGO)나 BONGO(Business-organized NGO)가 아니라, DONGO(Donner-organized NGO)임을 밝혀 둔다.)

그러나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비판들은 시민사회단체의 투명성·공정성·도덕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을 주거나 그를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꾀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볼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비판의 대상은 시민사회단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비판을 들어야 할 집단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회원들이 아니고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근거 없이 트집을 잡아 온 사람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 비판들은 사실에 입각한 비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의 역사를 권위의 역사로

시민사회단체가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으니 시민사회단체도 도덕성이 침해됐다느니, 정부에 대한 비판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느니 하는 주장이 그 예들이다. 물론 그런 사이비 시민사회단체도 있겠지만 그 잣대를 모든 시민사회단체에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프로젝트를 위해 쓰여졌을 뿐인데도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위와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은 그 저의를 의심받을 만하다.

그 비판들은 시민사회단체를 잘 모르고 행해졌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의 발전을 위한 비판이 되지 못하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비판자들 스스로가 알고 있으리라.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사실이 아닌 말로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이 아닌 말로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또 한 부류의 비판은 시민사회단체의 수명은 시민과 시민사회의 지지가 존재하는 기간에 그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현시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시민과 시민사회의 지지가 그 유일한 존립 기반이다. 현시적으로는 회원들의 회비가, 잠재적으로는 추상적인 상태의 지지 세력이 시민사회단체의 존립 기반이다. 시민사회단체는 회비를 강제로 걷을 수 없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을 강제로 모집할 수 없다. 그 사실이야말로 시민사회단체가 권력화할 수 없고, 자신의 조직 유지를 위해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한 예로 시민사회단체가 권력화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권력구조를 정부-시장-시민사회단체로 보아 시민사회단체를 제3섹터라고 분류하거나, 권력구조를 행정-입법-사법-언론-시민사회단체로 보아 제5의 권력이라고 보는 입장이 그것이다. 정부의 권력 행사의 잘못을 밝혀 내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고발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와 대등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정부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등한 위치에서 권력을 감시하려 한다는 말에 속아 시민사회단체를 권력 기관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와 맞설 수 있는 저력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에서 나온다. 권력의 독점체인 정부에 시민사회단체는 권위로 맞선다. 시민사회단체는 아무런 강제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아무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시민사회단체의 뒤에 경찰력이나 군대가 포진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는 이익 단체가 아니고 압력 단체도 아니다. 혹시 어떤 사이비 시민사회단체가 기업이나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미끼로 뒷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민사회단체는 짧은 시간 내에 공중 분해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시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해서만 정부에 의한 권력 남용을 저지하거나 견제할 수 있고, 그 저지력과 견제력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에서 나온다. “시민사회단체는 현재까지의 권력에 의한 역사를 역사상 최초로 권위에 의한 역사로 전환시키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가 권력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민사회단체가 권위를 악용해 조직의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이라면 그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차이와 경쟁을 넘어

그들의 비판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 간의 입장 차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민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도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에서 보면 모두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환경운동을 예로 들자면, 환경운동은 각 환경운동단체가 가지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 따라 환경보전주의에서부터 사회생태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환경운동단체들끼리 각자가 추구하는 입장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문제에 서로 다르게 접근하고 있을 뿐이어서, 서로 다른 단체의 활동이 중지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의 입장 차이와 경쟁은 시민과 시민사회가 취약한 한국사회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시민과 시민사회가 취약한 구조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수명은 앞에서 지적한 시민들의 지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경쟁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사회단체가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끝맺으려 한다. 시민사회단체는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영역을 존중하여 침해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도 크게 보면 참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같은 목적을 향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서로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양보하고 비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홍균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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