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769

이 땅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이 즈음이면 누구든 으례 덕담을 나누고 희망을 설계하기 마련이다. 새해 벽두부터 무슨 결례된 말씀이냐고 탓할지 모르겠으되, 그러나 새해를 맞는 우리의 가슴은 숨길 수 없이 무겁기만하다. 올 한 해 또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네 억장을 무너뜨릴 것이며, 부정과 불의의 제단 위에 또 얼마나 많은 선량한 희생들이 줄 이을 것인가. 새해를 넘어 새로운 세기, 새 천년을 여는 이 역사적인 마당에 서 있는 우리들의 처지는 안타깝게도 희망을 향해 있지 않다.

“분노야말로 희망의 씨앗”이라고 지난 세기의 한 혁명가는 말했다. 아무리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는 세상일지라도 몸부림치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분명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리라. 무릇 몸부림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자면 어떤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여 기를 쓰며 온몸으로 부딪는 짓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도 없으며 고상함이나 천박함을 가를 수 있는 질적 차이도 없다. 사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가. 비단 정치권력의 문제만도 아니다. 재벌에 의한 시장질서의 교란 때문만도 아니다. 차라리 그 뿐이라면 그것은 ‘저들의 위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저들을 넘어 우리 모두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는 이 위기의 징후를 ‘분노를 체념하고 영합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데서 읽는다. ‘남들 다 하는 데 나만 열낼 일 있냐’는 자조는 아마도 장기적 전망부재의 고달픔 끝에 도달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정의도, 공동선도, 공익도 자신의 이해가 털끝만치도 손실되지 않는 다음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사익과 공익이 서로 마땅히 지켜야할 선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알만한 사람들’이나 ‘집단’의 이런 행각들은 우리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하고 암담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대 이 땅의 시민운동도 하나의 ‘몸부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시민운동이라는 몸부림은 이제 처연한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치달을 판이다. 감히 공익을 주장한다는 것은 첨예하게 대립된 두 진영으로부터 싸잡아 공격을 받고, “니들이 뭔데!”라는 매도를 당하며, 점점 자리잡을 곳을 잃어갈 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정의의 잣대를 독점한 듯한 탈법적인 방식”이라는 비난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시민과 함께 몸부림치는 시민운동을 “국민 호응도가 제1의 판단기준이 되는 포퓰리즘 운동”이라고 일도에 치부되고 마는 서글픈 주장들마저 제기되고 있다. 언제부터 이 땅의 시민운동이 법의 잣대에 의해 그 정당성이 재단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 분노를, 이 몸부림들을 단지 ‘포퓰리즘 운동’이라 단언하기까지는 보다 사려 깊은 고민이 먼저 있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운동에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한낱 ‘동원된 우중(愚衆)’으로 전락되고 마는 까닭에서이다. 지난해 시민운동은 많은 활동을 했고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만큼 반성적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성찰은 좌절과 실의라는 불모의 땅에, 총체적 대안부재의 위기사회에 그래도 어떻게든 희망의 씨앗을 뿌려 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함께 부대끼는 역사가 공유될 때 비로소 설득력 있고 호소력도 있게 전해지지 않겠는가.

김형완 참여연대 합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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