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2월 2001-02-01   1341

명동성당은 피난처일지언정 투쟁의 공간은 아닙니다

백남용 명동성당 주임신부

얼마 전 인권운동가들의 단식농성도 있었지만 지금도 들어오다 보니까 노점상인들이 생존권 보장을 위한 집회를 하면서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더라고요. 신부님, 들어오면서 보셨습니까?

“못 봤습니다만, 지난번에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한 건 아시죠? 아쉬운 게 집회장소가 명동성당으로 명기됐을 때 사전에 우리의 집회동의서를 첨부하지 않으면 신고접수를 받아주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왜 또 보란듯이 사전에 우리에게 집회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몰려오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중에 질문하려고 했는데요,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질문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명동성당에서 시설 보호 요청을 했는데….

“아까 물으신 것 답변하면, 못 봤습니다만, 소리는 들었습니다. 소년합창단을 가르치는데 아우성 소리가 들려요. 경찰은 막고, 사람들은 들어오려고 하고.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대표자가 와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면 훨씬 수월하게 풀릴 문제를 왜 그렇게 풀까, 하는 겁니다. 계속 이랬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에게 동의를 구한 적도 없고, 무조건 수로 밀고 들어온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앞으로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게 약자일 수도 있고요. 그 사람들이 명동성당에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도 같이 고민할 준비는 되어 있어요. 그런데 무조건 자기네 식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대화의 자세가 아니에요, 그렇죠?”

그럼 도움을 요청할 때 어떤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이런 일을 하는 어려운 단체들인데 명동성당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주겠죠. 시설보호 요청을 한 것은 우선 근본적으로 두 가지 차원에서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여기를 민주화의 성지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의 성지라는 의미는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게 다는 아니다, 그 밑에, 저변에는 신앙의 성지라는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우선은 그런 의미를 살리고 존중하면서 그 위에 민주화의 성지가 설 수 있는 것이지, 기본 토대를 부정하면 민주화의 성지도 불가능한 거죠.”

들어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리고 시설물들을 잘 지켜주면서 민주화의 상징인 명동성당을 활용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첫째, 우선 여기는 국유지도 아니고 경찰이 함부로 집회를 허락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우리 동의서 없이 여기서 집회하는 것을 허락한다든지 신고서를 접수받는다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예요. 경찰뿐만 아니라 농성하고자 하는 분들도 역시 그것을 이해해줘야 해요. 자기네 권리를 주장하면서 남의 권리는 전혀 인정치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죠. 그러니까 일단 여기를 존중해 달라는 거고, 두 번째는 같은 맥락에서의 얘기인데 이곳은 민주화의 성지였지, 기타 다른 투쟁의 장소로 사용될 곳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점에서는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 과정은 투쟁을 통해서, 80년대 투쟁의 과정 속에서 명동성당이 보여준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가 민주화의 성지가 된 데에는 성서론적인 개념이 있어요. 성서에는 ‘도피성(城)’이라는 게 있어요. 도피성이라는 개념은 출애굽기 등에서 나타나는데 그 때에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동태복수법이 있었잖아요? 내가 악의 없이 누구를 죽였어요. 감을 따려고 돌맹이를 던졌는데 그게 빗나가서 누구의 머리에 맞아 죽었단 말이죠. 과실치사라고 하죠. 과실치사범을 그 피해자 가족들이 동태복수법에 의해 죽일 권한이 있다고 죽이면 그건 불의한 일이라고요. 피의 복수가 시작되는 거죠. 도피성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과실치사에 의해 도망다니는 사람은, 일단은 동태복수법으로 죽임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 복수를 피하게 하고, 그 다음 정상적인 법절차를 밟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거죠. 사회의 법을 세우기 위한 거였지, 법을 무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단 말이죠. 그 도피성이 80년대 초에 민주화 과정에서 교회 안에서 확립된 사건이 최기식 신부님 사건이에요. 미 문화원 방화범들을 최기식 신부님이 보호를 해주신 거죠. 그 때문에 그분이 체포되게 생겼으니까 이리로 오게 됐어요. 그 당시는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던 시절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론을 환기시켜서 가능한 한 법적인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게 하고, 사흘 만에 자수를 시켰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도피성이었지, 투쟁의 본거지는 아니었단 말이에요.”

87년 6월항쟁 당시 시민들이 거리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모이던 곳이 명동성당이었습니다. 시민뿐 아니라 종교인들 또한 집회, 촛불기도회 등 다양한 행사를 이 명동성당에서 치렀고, 그래서 6월항쟁에서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죠. 물론 이 시대의 투쟁과 당시 80년대를 비교해 보면, 이슈는 다르지만 국민들의 요구와 열망이 명동성당으로 직결된다는 공통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동성당이 도피성, 그야말로 갈 데 없는 사람들만이 오는 곳이라면 민주화의 성지가 만들어졌던 6월항쟁 과정에서의 명동성당 이미지는 부정되는 겁니까?

“종교가 사회의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 대해 정의를 얘기하는 것은 본래의 모습입니다. 투쟁이라는 차원보다는 옳으냐 그르냐를 얘기해주는 것이란 말이죠. 정부에서는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걸 거짓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복음적인 의미입니다.”

이번에 시설 요청을 하실 때 마음이 불편하셨을 텐데 어떠셨어요? 명동성당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잖습니까?

“처음은 아니에요. 다만 구두로 꽤 오래 전부터 있었죠.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여태까지 문서상으로 얘기한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허락을 해준 적은 없었어요. 폭력으로 밀고 들어와서 폭력으로 그냥 머물러 있었어요.”

신부님, 그건 좀 관점의 차이라고 보는데요. 제가 알기론 인권단체들이 지난 몇 년 간 농성할 때 신부님께 꼭 찾아가서 허락은 못 받았어도 ‘합니다’라고 얘기는 했었습니다.

“이미 와서 천막 치고 그 다음에 찾아와요. 그럼 난 안 만나요. 왜냐하면 지금 들어와 있는 것 추인해주십시오,라는 것밖에 안 돼요. 만났다는 그 사실로 신부님에게 허락받았다고 얘기해요.”

제 경험담을 얘기하자면 예전에 인권단체들이 여기 와서 농성을 했어요. 그때 제가 “신부님 아무래도 여기서 농성을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러 왔습니다. 허락은 안 하셨어요. 왜냐하면 층계 보수공사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보수공사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옆길을 내드리는 걸로 하고 공사 들어가기 전에 끝내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우들을 다 폭력으로 들어왔다고 한다면 사실은 섭섭하지요, 신부님.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요청하면 지금도 반대할 거예요. 허락 안 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 곳은 도피성의 자리로 가능한 한 남겨두자, 여기가 신앙의 성지로, 민주화의 성지로 보존되어야겠다, 그러니까 정말 어려울 때 극단적일 때만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의 공감대를 늘 확보하고 있자는 얘기죠.”

신부님 생각에는 그런 경우가 어떤 때입니까?

“그렇게 확보를 하면 언젠가 정말 군사독재 때처럼 또 도피성이 필요할 때가 있단 말이죠. 지금은 아무나 들어와 있는 그런 상태란 말입니다. 국민들의 여론이 이렇게 나쁘면 자칫 공권력이 들어오는 경우가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좀 아껴두자. 우선 아껴둠으로써 민주화의 성지라는 숭고한 개념을 고이 보존하자. 언젠가 우리가 또 필요할 때 그 도피성이 없어서 쩔쩔매는 불행한 민족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껴두자는 차원에서 얘기하는 거고, 여기를 도피성으로 잠깐 쓰는 것은 좋은데 죽치고 농성하는 것은 그건 지구상에서 명동성당 하나예요. 그것이 교회의 본모습에 속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다른 데서 집회하고 여기서 정리집회하고 가고 이런 거는 뭐 지나가죠. 예를 들어 철거민들이나 잘 데가 없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럼 어떡하겠어요?”

신부님 의견은 오히려 세련된 운동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뜻이지요?

“저는 그런 차원입니다. 그러니까 시위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난번 단식농성을 할 때 그 방법이 신부님 보시기에는 언짢으셨어도 가장 혹한의 추위에 농성을 했어요.

“누가 와서 거기 사람들이 단식하다 쓰러졌는데 성당에서는 아무런 조치 안 하십니까, 라고 하더라고요. 난 한마디로 그래요. 그렇게 방법을 정한 건 그분들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기운차리고 이튿날 와서 열심히 외치면 되지 않느냐, 서로간에 생각이 다를 때 상대방의 방법이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지 않아요? 와서 극단적인 단식으로 나에게 보여주는데 나로서는 억지로 끌려가야 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게 싫은 거예요. 계속적으로 홍보를 통해서, 활동을 통해서 국민의 공감대를 늘려가야지, 그 방법이 지나치게 비상사태적이지 않느냐는 거죠.”

시설보호 요청 이후인 지난 12월 27일 강제철거가 있었잖아요? 이튿날 재야단체들은 강제철거였다고 주장하던데요.

“사실은 강제철거였어요.”

이튿날 농성단이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철거과정에서 면도칼을 가진 용역깡패들에 의해 농성자들이 집단구타를 당했다는 주장이 있던데요.

“그러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 받아주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 직원들이 명찰까지 달고 나가서 철거했어요. 면도칼 갖고 뭐 했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철거시키면 꼭 그런 소리를 해요. 순수하게 우리 직원들 사목위원들이 가서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해요. 그때 그 사람들 230여 명 있었어요. 성당 들어올 때 우리는 명동성당은 도피성의 장소로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수배자로서 장기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거절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비가 오고 있으니까 당장에 갈 데가 없다, 오늘 밤만 비 피하게 천막에서 있게 해달라,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요. 인간적으로 그렇잖아요? 그 이튿날 안 나가고 그 주위로 포장을 빙 둘러치더라고요. 그냥 눌러앉았어요. 우리가 쫓아내려 하면 학생들이 왕창 몰려와서 구호 외치고 데모하고요. 그렇게 있다가 8월 15일 특사가 있으니까 우리 그때 나가겠다, 만일 특사가 안 되면 자수하겠다, 그랬단 말이죠. 그리고 또 안 나갔어요. 10월 1일 개천절인가 그때 또 특사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자수하겠다, 그랬어요. 또 안 나갔죠. 또 17일로 미루고 그러다가 한통노조가 들어와서 내보낼 수 밖에 없었어요. 한통노조 나가면서 그냥 정리하는 김에 다 정리해버렸어요. 순전히 우리 사람들이 가서 철거했습니다.”

신부님, 약속을 안 지켰다는 차원에서는 저도 유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구성원이라기보다는 교육과정에 있는 학생들이고, 수배자들인데 강제철거되면 거리로 나앉게 되는데 어떻게 될 것인가는 고민이 안 되셨습니까?

“그것을 200일이 넘는 동안 고민을 한 거예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기는 도피성이지 투쟁의 장소가 아니에요. 여기 와서 숨어 있는 게 아니었어요. 마이크 설치하고 경찰들이 있는데 앞에서 투쟁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약올리는 것밖에 안 돼요. 피해 있는 거면 그런 모습으로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여기를 투쟁의 장소로 삼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내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230일 동안 했으면 된 것 아니에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바꿔야 하는 것이 있고, 사회단체들도 걱정하시는 것처럼 투쟁의 방법들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하셔야 할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부의 역할보다는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냐로 포괄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요. 교회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 복음정신으로 현상으로 분석해 사회의 길을 가르쳐야 돼요. 교회 구성원들에게 그 길을 가르치면서 이 사회가 그 구성원들을 통해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것이 교회의 정도예요. 물론 민주화 과정처럼 극단적인 경우에는 직접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유신헌법이 악법이다’라고 제1탄으로 터트리셨죠. 그런 극단적인 경우에 교회가 그런 일들을 하지만 평상시에는 복음정신에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반성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기본적인 행동양식이에요.”

그러나 신부님들이 사회를 이끌어주셔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라고 지칭하지 말고 교회라고 하죠. 우리 투쟁의 무기는 증오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많은 인권단체에서는 적을 두고 투쟁을 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이백 며칠 동안 여기 있던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개에 비유했어요. 나무에다 개 목 매달고 양쪽에서 몽둥이를 들고서 이참에 끝내 버리자고 하는 거예요. 그런 방법은 교회에서 쓰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투쟁한다고 하면 사랑의 투쟁이에요. 그러니까 투쟁이라는 말을 써도 정말 다르단 말이죠.”

앞으로 신부님, 많은 부탁을 드려야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시설보호 요청을 하시긴 했지만 집회를 완전히 막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죠?

“아니에요.”

명동성당은 여전히 시민들이 집회 할 수 있는 여지를 분명히 두고 있다는 얘기죠?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교회측과 사전에 대화나 절차를 밟아달라는 뜻으로 정리하면 되겠죠?

“덧붙이자면 우리가 그 동안 입은 상처가 크다, 1년에 320일을 농성을 했으니 생각을 해보세요. 누가 견디겠어요?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우리한테도 마음의 여유를 줘야지, 나도 사람인데.”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올까요?

“그렇죠. 일단 시설보호 요청을 했으면 우리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유치한 표현인데 좀 이렇게 한 다음에 정식으로 들어오면 받아주고… 그러면 이해를 해주기 쉽지 않겠어요? 나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진 말란 말이에요.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해야 되는 사람이죠. 내가 인간적으로 남들보다 한 발짝 나은지 그건 잘 모르지만. 나는 남들보다 한 발짝 나은 생각을 해야 되는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교회에서는 종교의 성지이자 민주화의 성지로서 유일하게 역사에 남아 있는 이 장소를 어떻게 계승할지 궁금합니다.

“결국은 이 나라의 이 국민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 아니냐, 그 얘기겠죠. 이 문제에 대해 심포지엄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성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주었어요. 지금은 지연되고 있지만 명동성당 백주년 기념으로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한쪽에 열린 문화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지나가던 악사가 연주도 하고, 젊은이들이 춤도 추고 또 인권문제를 외치고 싶은 사람들이 외쳐도 좋고, 늘 열린 공간으로 마련하고 싶은 거죠.”

어쨌든 빨리 숨돌리기를 해서 많은 단체들이 와서 협조 요청을 할 때 많이 도와주세요.

“참여연대를 비롯한 사회단체나 인권단체가 한숨 돌렸으면 좋겠어요.”

차미경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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