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809

한나라당은 조중동의 이중대?

김 대통령은 지난해 말까지 언론개혁과 관련해 일관되게 ‘자율개혁론’을 주장했다. 이른바 자율개혁론의 뼈대는 “우리 언론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면 언론탄압이란 불필요한 논란이 생긴다. 신문업계나 각 언론사에서 알아서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단체는 김 대통령한테 언론개혁을 주도하라거나 초법적 조치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법대로’ 세무조사도 하고 불공정거래행위를 단속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시민단체나 현업 언론인단체의 개혁 요구에 대해 ‘자율개혁’을 빌미로 미적거리기만 했다. 이런 김 대통령을 두고 그 동안 시민단체들은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주류언론의 왜곡과 무시

지난 1월 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김 대통령이 언론개혁을 이야기하자마자 몇몇 신문들은 언론탄압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언론개혁이라는 것이 공정보도와 자유로운 비판정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좌파적인 소유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지극히 편협한 소수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야 한다.”(『중앙일보』 1월 12일자 사설 ‘오늘의 위기가 언론 탓인가’)

“독자인 국민이 언론의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것을 언론사가 수렴해 자체 반성과 개혁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자유의 본질을 해칠 위험성이 큰 어떤 시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권력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의 언론개혁은 그 어떤 포장에도 불구하고 언론탄압이다.”(『동아일보』 1월 12일자 사설 ‘김 대통령의 위험한 언론관’)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과 일반 언론인 사이에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면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언급했다. 여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 말이고, 시민단체 등의 합심개혁은 또 뭘 의미하는 것인가.”(『조선일보』 1월 12일자 사설 ‘실망스런 대통령의 시국관’)

그러나 이들 신문들의 주장은 기본적 사실관계마저 왜곡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먼저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언론개혁’이란 게 과연 좌파적 소유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지극히 편협한 소수의 소리인가.

지금까지 언론개혁을 주장해온 단체들을 보자. 거의 모든 언론사의 현직 기자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한국기자협회, 『조선』·『중앙』·『동아』 노동조합까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환경운동연합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사회단체 41개가 참여하고 있는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이다. 이렇듯 『중앙일보』가 주장하는 것처럼 언론개혁은 편협한 소수가 아니라 대표적 시민단체들의 일치된 요구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기자협회나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언론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등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언론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단적으로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가 실시한 신문개혁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전국민 1,000명, 기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공정거래위의 신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 단속을 묻는 질문에 국민은 85.1%가, 기자는 85.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국민의 86.9%, 기자의 85.6%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또 소유지배구조 개선과 편집권 독립을 뼈대로 하는 정기간행물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고 답한 기자가 93.5%였다.

한편 ‘세무조사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조사도 부당하며 신문사가 알아서 개혁해야 한다’는 후안무치한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언론사가 치외법권지대냐’고 비판하고 있다.

언론사가 치외법권지대냐

지난 1월 31일 국세청은 언론사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각 언론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 언론개혁을 이야기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두고 『조선』·『중앙』·『동아』 등은 바로 다음날 사설과 논설위원 기명 칼럼 등을 통해 ‘언론장악 음모’라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세무조사 착수에 대해서는 사설과 기명 칼럼을 통한 명시적인 반대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은 IMF 이후 ‘성역을 없애자’며 모든 영역에 대한 투명성과 예외 없는 법 집행을 강조했다. 이런 기존 보도내용에 비춰 법에 따른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 조사를 대놓고 반대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게 ‘선택적’ 편집의 기술이다. 몇몇 신문사들은 한나라당의 ‘언론장악을 위한 특별세무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마치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알리는 것처럼 1면 머리기사 등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특정 언론 겨냥하기 위해 나머지 언론 들러리 조사” (『조선일보』 2월 6일자 1면)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 정치적 목적 의혹 있다” (『동아일보』 2월 6일자 1면)

“언론제압용 세무조사 부당”(『동아일보』 2월 7일자 1면)

특히 『조선일보』는 6일자 신문 2면에서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와 보수적 정서에 기대기도 했다. 이들 신문들은 정치권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세무조사에 대한 간접 비판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지면의 사유화란 비판이 나왔다.

“그 동안 일부 중앙일간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는 크게 확대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는 축소하거나 아예 지면에서 빼버리곤 했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국민의 이익과는 무관한 것으로, 자기 신문사의 이익 또는 특정 세력의 이익에만 부합해왔을 뿐이다.…결국엔 국민들로부터 더 큰 불신을 초래할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2월 6일 발표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성명서 중 일부)

한편 이 신문들은 ‘언론탄압’이란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대정부 발언을 중계방송하듯이 인용·보도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이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깡그리 무시했다.

몇몇 신문의 속셈은 언론개혁을 여야 간의 정쟁으로 몰아가 결국 흐지부지 덮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명분이나 논리 면에서 밀리는 칼럼이나 사설을 싣지 않는 대신 연일 국회에서 떠드는 ‘언론탄압’, ‘언론길들이기 의혹’ 따위의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만을 받아쓰고 있다.

이들은 언론장악 음모니 의혹이니 하면서 어떤 근거도 대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고칠 뜻이나 움직임도 없으면서 면피용으로만 자율개혁을 내세우며 ‘언론탄압’을 목청껏 외치는 몇몇 신문사. 이들에게 1920년 미국의 월터 리프만이 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만약 신문 발행인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언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노한 여론이 의회를 통해 도끼를 들고 언론에 달려들 것이다.”

권혁철 |『한겨레』여론매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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