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890

단과대별로 분리해 지방국립대로

1970년대 초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단과대들을 모아서 서울대가 관악산으로 이전할 때 정희성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렇게 바라본 조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폐쇄회로(Closed Network)로 인해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경제학자들이 빈정거리는 투로 명명한 ‘끼리끼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타인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회로를 통해 정보가 흐르고, 그에 따라 돈과 명예를 둘러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재벌과 함께 서울대 인맥 역시 이 폐쇄회로의 대표적 보기 중 하나이며 그 역기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대라는 폐쇄회로는 이제 해체되어야 한다. 재벌해체와 마찬가지로 단과대별로 잘라내서 지방 국립대로 이전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관악산 중턱에 모두 모인 지 30년 가까이 됐어도 이른바 집적효과(Conglomeration Effect)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전국에 흩어진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각 국립대학은 차별화 경쟁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부 지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각 사립대학도 이제는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부문별로 수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각 지방의 특성에 따라 지역산업과 힘을 합한다면 우리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산업단지를 도별로 하나씩 가질 수도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가 아니라 인문의 향기에 취하고 싶다면 ‘가’도로, 전자산업의 연구나 취업을 하려면 ‘나’도로… 이런 식으로 살 곳을 정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미 들어와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4년의 유예기간을 두면 서울대 교수들이 그 이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버릴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보기에 학파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으니 팀의 해체에 따른 손실은 걱정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오히려 교수들의 활발한 이동을 촉진해서 우리 대학의 고질적인 학문의 동종교배(Inbreeding)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으니 그 또한 얻는 바가 될 것이다.

엘리트 육성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20여 년 전의 일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사실상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가 없어졌지만 이 사회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 일류고등학교를 없앤다고 똘똘한 아이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23년 전의 고교 인맥이 아직도 살아서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해야 한다. 또 서울대를 없애면 연세대나 고려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짐짓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덧붙인다. 이미 두 학교 이름이 들먹여지는 것 자체가 커다란 변화일 뿐더러 어떠한 사립대학이라도 모든 부문에서 다 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 내의 자원과 사람을 쏟아붓는 치열한 경쟁에 의해서 몇몇 부문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폐쇄회로가 개방적인 회로로 대체될 때 비로소 우리는 좀더 효율적이면서도 평등한 사회, 한마디로 살맛 나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질 것이다. 서울대의 해체는 그러한 사회로 다가가는 첫 걸음이다.

정태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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