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1083

네트워크로 통한다! 우린 밀레니엄세대

27세, ㅅ대 사회과학부 00학번, 늦깎이로 대학에 재입학한 조진호 씨. 그는 달라진 캠퍼스 풍경을 때로는 망연히 바라본다. 단위 학생회마다 후임간부들을 구하지 못해 와해위기에 놓이고, 교수들도 전원 참석하는 학과 주최 1박2일 워크숍에 정원의 1/4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학교, 학과, 학번모임에 무관심한 학우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들이 어디에서나 ‘나홀로족’은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선택해서 참여하고 관리하는 커뮤니티에는 매우 적극적이어서 각자의 스케줄이 적힌 다이어리는 늘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약속 하나 잡기가 어려울 정도. 비주류인 언더밴드나 특정 일본문화 등에 마니아적인 식견을 펴는 아이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더구나 81년 출생의 동기들이 “80년도에 일어난 광주항쟁이 우리한테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이야기와 별로 다를 게 없다”고하는 얘기까지 듣고는 너무나도 달라진 사회인식의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전 세대들은 ‘대의’와 ‘명분’에 따라 집단이나 공동체의 지향과 암묵적 규범을 감히 거스르지 못하고 순종하느라 ‘개인’에 대한 성찰이나 실체를 절실하게 체험하지 못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과학도로서, 나이 어린 동기들과 자신의 미세한 인식의 격차를 이해하는 하나의 코드로서 ‘개인’이라는 화두를 안게 된 조씨의 말이다.

인터넷과 소비력으로 역동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세대

신입생들로 인해 신선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3월의 대학가. 그런데 이들 신입생과 선배들의 만남의 형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홍대 미대, 경희대 한의대 등에서는 선배들이 혹은 신입생 스스로 홈페이지나 ‘다음 카페’ 등을 차려 놓고 오리엔테이션이나 환영회 전에 ‘사이버 상에서 먼저’ 일상적인 만남을 가졌다. ‘지속성’ 여부를 떠나 자신과 함께 묶일 수 있는 동류집단의 커뮤니티에 속해 게시판에 그날 그날의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각종 정보를 나누는 일은 이미 이들 세대의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97년을 기점으로 하이틴과 로우(low)틴 사이에도 일상에서의 인터넷 활용도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공통적으로는 게임에서 시작해 인터넷서핑으로 나아가면서 커뮤니티를 선택해 그 속에 안착하고 그러다 또다시 끊임없이 커뮤티니의 이탈과 소속을 거듭하는 것이다.

서울시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 시민문화기획팀 최수정 씨는 “수업중에도 끊임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수시로 이메일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때로는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80년대 초반 태생인 이들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대부분 한 자녀, 혹은 두 자녀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문화나 사고방식의 흐름 속에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세대와의 거리감은 커지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각자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성장기를 보냈던 이들에게 외로움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 서울 영파여중 조원배 교사는 이들 세대에 대해 “개인주의와 이기적 성향이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언제나 또래집단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확인하려 한다”고 평한다. ‘학원에 안 보내겠다’고 하는 부모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것은 또래집단에서 소외되거나 이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튀고 싶어하나 또 남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이들은 음반, 핸드폰 모델이나 가방, 액세서리 등에서도 끊임없이 유행을 창출한다. 따라서 주요 소비계층으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이들의 기호와 성향은, 기업들의 연구 대상이며 경쟁적인 과다서비스를 낳으면서까지 계속적인 손짓으로 유혹하게 만든다.

이들의 소비능력은 계층별 수준차는 있지만 대부분 외동딸·아들로서 두둑한 용돈을 타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계층의 아이들도 편의점 등의 아르바이트나 심지어 유흥업소 취업을 통해 소비력을 갖추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인터넷업체들도 이들을 겨냥해, 유료 인터넷서비스나 쇼핑몰 지불결제를 전화요금으로의 합산이나 e-머니 제도를 도입해 ‘부담없는’ 지출을 유도하며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팬클럽이 대중 스타의 확실한 인기유지 기반이 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지만 인터넷과 결합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특정한 거대 세력을 단숨에 형성하는 것도 이들 세대의 특성으로 실제로 상상을 초월한 영향력을 갖는다. HOT나 GOD와 같은 막강한 보이밴드의 팬클럽들은,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경쟁상대 팀의 기업 광고모델 기용에 항의해 불매운동을 감행하는 양상까지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 밀레니엄세대는 인터넷과 소비력이 결합된 힘을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하여 실제로 특정 문화를 창조하는 역동적인 세력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금강기획 카피라이터 김헌 씨는 “이전의 신세대나 X세대라고 불리던 계층은 결국 기업마케팅 차원의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했다면, 이들 세대는 나름의 문화를 창조하는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거대담론은 몰라, 그러나 나를 건드리지 마라

또한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표면상 정치적·제도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90년대 후반기에 성장기를 보낸 이들은 각종 매체나 학교에서 ‘뚜렷한 소신과 자기 주장’ 그리고 ‘민주적 절차와 합의’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배웠다. 그러므로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가정이나 교육현장의 장면들을 마주칠 때 이들이 참을성을 던져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전 세대들은 입시지옥이나 체벌 같은 것에 모두 불만을 갖고 있지만 ‘이 시기만 지나면…’ 하는 마음으로 대부분 견뎌냈다면 이들은 안 참는다”고 최수정 씨는 지적한다. 실제로 “안 참아, 왜 참아”를 외치며 학교를 뛰쳐나가 탈학교모임을 만드는 아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하자센터의 청소년들은 지난 해 아셈행사 기간에 구청에서 도로정비를 한다며 자신들의 벽화를 훼손하자 항의시위단을 조직, 구청에 몰려가 퍼포먼스를 곁들인 피켓시위를 벌였다. 또 지난번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박정훈 교사는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구호에는 입을 다물지만 “선생님을 석방하라”고 사이버 상에서 또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외치던 제자들의 ‘인해전술’ 덕분에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한 교사는 이들을 “자주성이 극도로 고양된 세대”라고 평했다. 내부에 개인주의라는 또아리는 남아있지만, 자신의 이해의 선과 영역을 침범하는 불합리에는 직접 대응도 불사해 이전 세대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작은 변혁을 하나하나 일궈내고 있다. 386세대가 거대담론에 매달리느라 간과했던 일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한혜영 |본지 객원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