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974

섹스, 거짓말 그리고 시민사회운동

성폭력이냐 화간이냐

지난 2월 17일 토요일 오전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는 혜진 스님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는 나눔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두 명의 여성과 성적 관계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한 여성과 서로를 의지해 오다 둘만의 환경이 조성된 상태에서 원장과 간사라는 직책보다 같은 동료로서의 믿음과 유대의식이 강하게 됐고, 종국엔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운동진영에서는 ‘나눔의 집 혜진 스님 양심고백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간추리면 이렇다.

“오늘 혜진 스님의 소위 양심고백 기자회견은 성폭력 사실을 왜곡하고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자기방어적 기만행위다. 혜진 스님은 기자회견문에서 자신이 성적으로 유린한 여성들을 마치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이는 피해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이를 양심고백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서 혜진 스님의 기만성과 위선을 확인할 수 있다.…(중략)”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저녁 이 사건을 보도했다. 처음부터 주요기사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은 셋째날인 2월 19일 현재 100여 건이 넘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는 의견부터 ‘혜진의 기자회견은 솔직히 비겁한 행동이다’, ‘성직자도 인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등의 ‘혜진을 위한 변명’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주로 여성단체의 성급한 성명을 비난하는 기사가 많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논쟁에서 중요한 지점이 누락됐다. 바로 피해여성의 진술이다. 혜진 스님이 서둘러 잘못을 고백했어도 진위여부는 가려야 한다. 기자는 지난 2월 13일 경기도 광주에서 피해여성을 직접 만났다.

안마 뜸 오일마사지

작은 체구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면바지, 화장기 없는 맨 얼굴. 오현숙 씨(가명·43세)는 하얀 엑센트 승용차로 기자를 마중 나왔다. 2차선 도로를 한창 달려 도착한 카페 레드포인트. 그는 앉자마자 지난 2월 2일 여기서 혜진 스님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 옆에는 또 다른 피해여성도 자리했단다.

이 피해여성은 아직까지 신분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오씨에 따르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당했다고 하고, 이에 대해 피해여성은 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에게 상담한 바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명상을 하며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고 했다.

오씨는 96년 7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사무간사로 일했다. 보수는 월 45만 원이었지만 역사속으로 소멸해가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했다. 초창기 나눔의 집 실무자는 혜진 스님과 오씨 둘뿐이었다. 그는 소식지 편집과 할머니 수발 등 잔무로 밤새워 일하기 일쑤였단다.

“파혼 당한 뒤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나눔의 집에 들어갔어요. 그만큼 성실히 일했다고 자부해요. 할머니들의 아픔과 저의 아픔이 통한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수발하는 것이 곧 제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집착도 강했어요.”

오씨에 따르면, 97년 6월경부터 혜진 스님은 그에게 안마, 뜸, 오일맛사지, 담배연기를 입에 불어넣어줄 것 등을 요구했단다. 97년부터 98년까지 이런 성행위는 매월 두세 차례 반복됐다고 오씨는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혜진 스님을 피하고자 다른 생활동으로 옮겨보기도 했지만 혜진 스님의 방문은 계속 됐다고.

“점점 요구의 수위는 높아졌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 앞에서 선임간사인 저를 면박 주기 시작했을 때 아, 이제는 내가 떠나길 바라는구나 싶었어요. 부당한 처우라고 느낄 때도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 털고 얘기할 수 없었어요. 때로는 정신이상자로 몰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 혜진 스님은 “성행위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본인은 97년 3∼4개월간 5∼6차례 정도 성관계를 맺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시말서 두 장과 해고

그러던 즈음 오씨는 개인적으로 혜진 스님과 독대했다. 인생의 마지막 선택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나눔의 집에서 실패하면 인생의 전부가 엉망이 될 것 같다, 모든 걸 덮어 둘테니 일 속에서 보람을 찾고 일하도록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오씨에게 되돌아온 건 더 심한 냉대 뿐이었다.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할머니들에 대한 태도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있어 할머니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간사들의 역할은 아니라고 말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오씨에 대한 혜진 스님의 요구는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다고.

“왜 매번 말을 못하게 가로막느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내가 이러는 건 다 나눔의 집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박정희도 그런 논리였다고 말하니까 ‘나를 박정희에 비교해! 당장 나가!’ 그러더군요.”

오씨는 점차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는 본인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뭇 여성들과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 혜진 스님에게 ‘인권운동가의 품성’을 느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떠나버리기엔 나눔의 집에 바친 열정은 너무나 값진 것이었다.

2000년 10월, 그는 나눔의 집에서 해고됐다. 해고경위는 이렇다. 혜진 스님은 노인양로시설로 등록된 나눔의 집에도 생활보조원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요원 자격이 필요하니 3개월 연수를 받으라고 했다. 3개월간 사회복지사 양성과정 교육을 받았다.

그후 복귀하니 새로 채용된 총무는 사무실에 새로운 내규를 만들었다. 지각하면 벌금 1만 원. 30분 이상 지각하면 2만 원. 그는 나눔의 집 간사들 중에는 나눔의 집에 기거하는 이부터 광주·양평·인천 등지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각규정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항변했다.

혜진 스님은 “지각 안 하면 될 게 아니냐”며 “새 총무의 지시에 따르라”고 지시했다. 그 즈음 한의사 침술봉사관련 공지사항을 할머니들에게 알려야 했었는데 그는 그 일을 깜빡 잊고 하지 못했다. 그 일로 시말서 한 장, 비품관리대장 미기재로 시말서 한 장 그렇게 두 장의 시말서를 낸 오씨에게 혜진 스님은 그만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오씨는 항변했고, 직원회의 시간에도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혜진 스님은 “법무사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장은 말로도 해고가 가능”하며 “상사명령불복종과 근무능력 저하 등은 충분한 해고사유가 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혜진 스님은 “전반적으로 나눔의 집 분위기를 흐리고 다른 간사들과의 불화가 있는 등 공식적인 논의구조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혜진 스님을 단죄할 것인가?

부당해고…. 오모 씨는 혜진 스님이 본인과 성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뒤 서서히 나눔의 집 운영에서 배제해오다 결국은 자신을 해고시켰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은 2월 21일께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조사작업을 벌이는 등 강도높은 활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실제 이 문제를 상담해오던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법적으로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승려의 신분으로서 저지른 과오는 그에게 되돌이킬 수 없는 ‘낙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혜진은 승려였고, 나눔의 집 원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평생 성적인 문제로 고통받았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식처였습니다. 그곳에서 혜진은 승려라는 신분과 원장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강압적이지는 않았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성적으로 유린했습니다. 마치 화간인 양 몰아가는 혜진의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이는 명백한 직장내 성폭행입니다. 이 사건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직장내 성폭행의 전형이랄 수 있습니다.”

강도높은 어조로 혜진 스님의 행동을 비난하는 최 소장은 여전히 시민사회운동 내부의 성의식이 미약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는데도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아무런 대응방안도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도 “이제는 우리 내부에서 자정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장원사건, 여성100인위원회, 나눔의 집 혜진사건까지 계속 문제가 터지고 있다”며 특히 이 문제는 “그동안 숭고히 진행해온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먹칠을 했다는 측면에서 다시는 혜진과 같은 사람이 시민사회운동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징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성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 스스로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갖고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옥 대구효성가톨릭대 교수(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일단 혜진 스님은 승려로서 그가 잘못한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다만 그가 시민사회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과잉처벌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성문제가 개인적 관계로 별 문제 안 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게 바로 성문제이죠.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운동가들이나 일반남성들이나 똑같은 수준에서 성교육을 받았다는 겁니다. 시민운동가들에게 지나친 성도덕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싶고, 평소 시민운동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이런 사건이 터지면 한꺼번에 싸잡아 시민운동 일반을 매도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은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혜진 스님은 그의 부적절한 성적 행동으로 여성활동가들이 활동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크게 보면 시민사회에서는 두 명의 활동가를 잃는 것이고, 결국엔 그게 시민사회운동 전체의 피해라고 생각합니다.”

김군자 할머니의 한숨

이 사건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의 본질은 혜진 스님과 두 여성의 관계에 ‘인권’이 전제돼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아무리생물학적 본능에 따라 사사로운 감정이 섞여 그랬노라고 치부하려해도, 그는 승려라는 신분과 나눔의 집 원장이었다는 직위하에서 이런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에서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평등과 인권’이 부재한 무분별한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는 판단을 해본다. 좀더 끔찍한 상상을 해보자. 만일 두 여성이 이 사실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숨겼다면, 그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름다운재단에 전 재산을 기탁해 화제를 모았던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는 한숨부터 몰아쉬었다. 민망하지만 심정을 물었더니 할머니는 “평생 성문제로 한 맺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승려가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당장 혜진 스님이 사임하면 나눔의 집을 누가 이끌겠냐고 물었지만 이 문제도 단호했다.

“스님과 내통하던 간사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바뀌어야겠죠. 별 문제 없어요.”

오히려 나눔의 집 간사들은 향후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미칠 파장을 염려했다. 그들은 2월 17일 혜진 스님의 ‘양심고백’ 기자회견과 동시에 위안부역사관을 휴관했고, 예정돼 있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해버렸다.

나눔의 집 황정란 간사는 “솔직히 성폭력상담소의 문제제기를 막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혜진=나눔의 집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막막했다”고 밝혔다. 일본인 자원봉사자 요시쿠라 마유미 씨도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마당에 이 사건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가 고민스럽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을 접한 재일 사회운동가 서승 씨도 한 시민단체 관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일을 계기로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신문』의 반격이 예상된다”며 “일본 내에서의 위안부 인권운동에 막대한 피해가 생길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혜진 스님의 일탈행동은 그가 승려라는 점에서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인권운동을 해오던 시민사회운동 지도자라는 점에서도 향후 전체 시민사회운동에 큰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여성100인위원회는 출범 당시 운동사회의 성폭력 문제는 언제나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은폐되고, 대의를 해친다는 구실로 왜곡·축소돼 왔다고 말했다. 이런 “조직 지키기 원리” 때문에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가해자는 “재범할 우려가 높다”고 강조했다.

나눔의 집 혜진 스님 사건도 이런 논리에 맞닿아 있어 보인다. 언제나 내부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진영이 한국사회를 좀더 살만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성의식과 성문제도 아프지만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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