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406

누군가 당신의 운명을 엿보고 있다!

사람의 몸 속에는 그/그녀가 평생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생물학적 운명을 적어놓은 ‘미래의 일기’가 하나씩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열광하고 있는 과학자들과 기업가들은 개인의 ‘미래의 일기’인 DNA 정보를 알 수 있게 되면서, 각종 유전병과 암 등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중문화에서는 DNA가 일종의 ‘패션화’되면서, 증권사의 광고에서 ‘투자게놈프로젝트’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신조어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DNA 정보에 관한 이러한 말과 이미지는 사실 거품이 많다. 신중한 과학자들과 생명공학 비판자들은 DNA 정보를 분석하고 이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DNA 정보를 분석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은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규범과 문화는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낙관적인 상황만이 일방적으로 선전되고 있으며, 그 뒤에는 엄청난 규모의 생명공학 시장의 이윤이 놓여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인 유전정보를 이용하려는 시도다.

앞서 개인의 DNA 정보를 ‘미래의 일기’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그녀의 미래에 발병할 지도 모를 각종 질병 (예를 들어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헌팅턴 무도병 등의 유전병, 유방암, 간암, 위암 등과 같은 질환) 뿐만 아니라, 그/그녀가 키가 클지, 비만이 될 지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일부 과학자들은 알코올 중독, 범죄 성향, 천재 성향 등과 같은 사회환경적 결과라고 여겨지는 사회행동까지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DNA에 담겨진 정보는 개인의 아주 내밀한 사적인 내용이다. 이것이 자신 이외의 누군가에 노출된다면, 한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사회적 차별을 위한 직접적인 요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위험은 벌써 보험과 고용 분야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보험회사들은 높은 이윤율을 위해서, 피보험자들에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검사를 거부할 경우에는 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며, 또한 검사의 결과로 치명적인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혹은 이상(異常))가 있을 경우에는 보험료를 올려 받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보험회사는 ‘잘못된’ 유전자에 의해 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의 결과에 따라서 보험료를 올려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에게 질병이 발병함으로써 얻는 손실을 초기에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주는 고용시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유전자의 존재가 곧바로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특정한 유전자에 의해 어떤 특징(예컨데, 폐암과 같은 질병)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환경적인 요인과 결합된 결과이며, 따라서 아직 발현되지도 않은, 더 나아가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는 요인을 가지고 보험이나 고용에서 사회적 차별을 가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게다가 사회보장의 성격을 지닌 보험이 시장 기제에 맡겨지면서, 그러한 사회적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유전자를 이용한 차별을 통해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주의 전략 또한 반사회적인 것이다.

한편 유전자 검사는 범죄 수사, 미아 찾기, 사체 확인과 같은 신원확인 목적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1990년대부터 검찰청의 유전자 감식을 시작했으며, 1997년에는 범죄에 대한 재판에서 단독 증거로 채택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오제이 심슨 재판과 같은 경우를 살펴 볼 경우, 유전자 검사가 과연 재판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아주 논란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유전자 검사가 단지 범죄 수사와 재판에 기여하는 수단 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오랜 기간 발전해온 전통적인 사법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유전자 검사를 위해 유전자정보 은행을 설치하여, DNA 샘플을 수집·분석하고 저장·관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가 보호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도 대단히 높다. 정부가 행정적인 이유로 유전자정보 은행을 설치하려고 하지만, 그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의 바이오 벤처들이 대량의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고 더욱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단히 사적인 DNA 정보가 잘못 관리돼어서, 목적 이외에 오용될 가능성이 없는 지에 대해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유전자정보 은행 자체가 ‘유전자 차별’을 낳게 될 것이라고 근본적인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다만 의료 목적으로 DNA 샘플을 수집한다고 할 지라도, 수집 및 분석의 목적, 샘플 제공자의 권리에 대한 충분한 설명에 기초한 동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세계적인 상식이 되고 있다.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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