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773

미국 이데올로기 뒤집기

이번에 소개하려는 『오만한 제국-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당대 펴냄, 2001)은, 지금 ‘새로운 신’이 되어가고 있는 ‘세계화’의 발원지인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의 비판대상은 직접적으론 미국식 민주주의이지만, 현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일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기도 하다.

그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기’를 권고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단순한 흥밋거리나 학문적 논쟁의 주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그대로 직결되는 것”이다. 예컨대 ‘흑인은 인간 이하의 것이다’,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미국의 국가안전에 위협이 된다’ 등은 한때-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인 다수의 ‘상식’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의 경향과 관련해 “우리가 걷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선택권의 제한”을 문제삼는다. 예컨대 왜 미국사회-아니 현대사회-에서는 “노령자들이 보건혜택을 받기 위해서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지만, 사실상 그들이 돈을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 그 누구도 보건혜택을 위해 자기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은 왜 논쟁조차 되지 못하냐”는 것이다.

그는 미국식 이데올로기에서 독립하고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는 길로 “시민들 자신의 처지에서 사고하기”를 권고한다. “민주주의란 일반 시민들이 사회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즉 시민(달리 말해 ‘개인’)의 자율성과 합리성의 존중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 무기 중독증

그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현실주의’-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무자비한 사상-라고 규정한다. 이 사상의 대변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다. 좋게 말해, 마키아벨리는 ‘수단 합리성과 힘의 정치’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이 그를 ‘현실주의의 화신’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목적 합리성’보다는 ‘수단 합리성’을 좇는다. 그러나 “모든 수단은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실현할 목적과는 또 다른 직접적인 결과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수단은 목적이 된다. 또 모든 목적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그는 ‘외교정책’(‘정당한 전쟁’)과 ‘법의 정의’, ‘경제정의’, 수정헌법 제1조로 상징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이데올로기의 허실을 파헤치는 것으로 미국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미국의 ‘외교정책, 정당한 전쟁’과 관련해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맨해튼 프로젝트’가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 원폭 사용여부 결정을 맡았던 임시위원회 책임자 헨리 스팀슨은 “(원폭 투하는) 장병들의 인명손실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워드 진이 보기에 “국수주의, 아니 인종차별주의에 의해 재단된 도덕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인식은 베트남전-네이팜탄 투하, 2차 대전-도시폭격, 이라크전-화학무기 사용, 발칸전쟁-공중폭격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바티칸 2차 공의회(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1962년 소집됐음) 성명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도시 전체 또는 광범위한 지역을 그 주민과 함께 무차별 파괴하는 전쟁행위는 신과 인간 자신에 대한 범죄”이며 “단호하고 즉각적인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미국의)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약물중독과 같은 특징을 지닌 ‘무기중독증’을 갖고 있다”. 예컨대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미국의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하는 첨단무기 개발·배치에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기꺼이 쓰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미국의 수천만에 이르는 빈민과 여성,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재원부족’을 이유로 예산 사용을 기피한다. 왜? 그게 ‘부자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의 핵심 내용은 ‘가난한 자들은 내버려두고(자유방임주의), 부자들은 도와 주라(경제성장)’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기업가(자본가)에게는 생산의욕을 고취시키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 즉 ‘일하지 않고 놀고 먹으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는 담론도 다를 바 없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수정헌법 1조(언론·출판·종교의 자유와 청원권을 제한하는 법을 의회가 만들 수 없다는 조항)를 비롯한 독립선언서가 주창한 많은 자유는 ‘정당한 가치’를 관철하려 한다는 ‘국익 수호’라는 명분 앞에서 제한된다. ‘전시’에는 특히 그렇다.

‘정당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익’이데올로기, 즉 ‘애국주의’는 이렇게 강력하다. 에마 골드만의 “자만, 오만함, 자기중심주의가 애국심의 본질”이고 “애국주의는 악마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비판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쨌든 전쟁의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피해자는 승전국과 패전국을 불문하고 언제나 ‘인민’이라는 것은 현실이 입증하는 바다. “전쟁은 계급적 현상”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정당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규모 살상(1차대전 때는 1,000만 명, 2차 대전 때는 4,000만~5,000만 명이 희생됐다)을 무릅쓰고도 관철해야 할 ‘정당한 가치’란 게 성립 가능할까.

지은이는 폭력을 “우리시대의 가장 위험한 마약”이라고 비판하며, “어떻게 대규모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정의를 쟁취할 것이냐”에 고민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물론 지은이도 “힘이 없다면 인권을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에게 ‘진정한 힘’은 “국가의 우두머리들이 우리에게 믿어달라고 애원해온 것처럼 총구나 미사일 격납고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다. 때문에 “비폭력 직접행동은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지은이 스스로 이를 ‘유토피아적 사상’이라고 고백했을 정도니, 아마도 적잖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옳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20세기의 끝자락에서 볼 때 가장 부각되는 것은 ‘역사의 완전한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강조하는 지은이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의식과 정책상의 거대한 변화에 대해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인내하며 계속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태가 제 갈 길로 풀려나가도록 하는 것뿐이다.” 또 “유토피아 사상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 사상의 도덕적인 힘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고 다수가 이를 지지하게 되는 때가 되면, 현실적인 것으로 된다.”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살아가며 믿고 의지하는 ‘궁극적인 힘’은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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