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963

한국의 BONGO, 기업이데올로기 전파에 몰두기업

대변하면서 시민운동 비판은 난센스

전경련 자유기업센터에서 독립한 자유기업원은 최근 참여연대운동에 대해 ‘사회주의적’이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레드콤플렉스를 선동하고있다. 이홍균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는 자유기업원의 논리에 대한 반박글을 본지로 보내왔다. 그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요즈음 자유기업원(원장 민병균)에서 참여연대의 시민운동을 좌파적이라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 근거들을 그들의 주장에서 찾아보자면 참여연대가 기업의 활동에 간섭하거나 노조 편을 드는 운동을 벌였으며, 시민운동 이론가들의 글 속에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주장하거나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거나 맑스주의적 개념이 거론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시민운동이 기업을 비판하거나 기업의 모든 활동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운동 이론가들이 기업과 자본에 위협적인 이론에 터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몰이해에 입각한 비판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기업의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시민운동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데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그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은 기업활동의 자유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기업활동의 각종 비리와 문제점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단체나 집단에 의해서도 비판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는 전제가 그들 주장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레드콤플렉스를 부활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따라서 마치 시민단체는 노조의 편을 드는 성명서를 발표해서는 안 되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업 총수들의 상속을 둘러싼 비리에 끼어들어서도 안 되는 일이며, 또한 4∼5% 내외의 주식을 소유하면서도 재벌기업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비판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주장을 보다 강력하게 하기 위해 기업활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또는 노동자의 편에 서 있는 모든 시민운동을 좌파며 사회주의적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한국 특유의 레드콤플렉스를 다시 부활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은 그 주장을 펴고 있는 자유기업원이라는 것의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뚜렷해진다. 자유기업원은 자유기업센터에서 얼마 전 그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 단체는 엄격한 의미에서 기업의 출자에 의한,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전경련의 출자에 의한 NGO이다. 이는 NGO의 종류 가운데 BONGO(Business-Organized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로 분류된다. 그 BONGO는 기업이 사회에서 얻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서 보면 BONGO로서 자유기업원은 특이하게도 기업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거나 기업의 주장을 대신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는, 사실상 그들은 기업의 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재계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기업원에서는 시민운동 이론가들의 이론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도 앞의 논의에서와 같이 기업에 의한 이윤의 극대화를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전제하고 있다. 시민운동 이론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민중과의 연대나 민에 의한 자본의 통제, 그람시의 진지전이라는 표현이 기업의 활동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들은 시민운동은 민중운동, 노동운동과 분리돼야 할 성질의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엄연히 시민의 범주에 들어간다. 노동자는 시민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게 납득될 수 있는 주장인가? 또한 시민운동은 민중운동 또는 노동운동과 분리돼야 한다는 주장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중이나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 및 고용되고 시위의 과정에서 부당한 폭력진압을 당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몫이기도 하다. 기업을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하기 전에 기업이 정당하게 이윤추구를 하고 있는가, 기업이 정당하게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하고, 또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정당하고 합법적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유기업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운동이 과거의 어떠한 이론에 입각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시민운동은 과거의 시민이론에 의해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이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이론에 의한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이론들은 현실에 입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사회운동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낱낱이 흩어져 있던 시민들이 조직화되어 시민사회단체를 만들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회원에 가입함으로써 이뤄지고 있는 시민운동은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없었던 현상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조직유지 방식이 전혀 강제적이지 않고, 연고주의에 기반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시민사회단체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지지에 의해서만 생존 가능하고 그 기반만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다.

시민단체 성향은 회원이 결정한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판단에 따라, 또는 한 개인의 이론이나 한 운동가의 주장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이다. 물론 시민사회단체 안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시민과 시민사회, 또는 회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시민운동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두 번 정도 되풀이될 수 있는 실수이지,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은 누구보다도 바로 회원들에 의해 판결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판단은 매 순간 일어나며 그 주체는 회원들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에 의한 시민운동이 진보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도 회원들의 몫이지, 결코 BONGO의 몫이 될 수는 없다.

자유기업원이 참여연대의 운동을 진보적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노동운동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재벌개혁과 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한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고, 세 번째 이유로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론가들의 글 내용이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BONGO가 시민운동의 범위를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는지하는 의문에 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는 시민과 시민사회에 맡겨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진보적’이라는 단어가 왜 부정적인 것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진보적’이라는 말은 뿌리를 되찾는다는 의미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역사는 스스로 발전한다는 ‘막연한’ 믿음에 자리잡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에 태어나서(탄생) 사회를 떠날 때까지(죽음)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의식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진보적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더라도 온갖 사회 문제와 부딪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는 좀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주력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회원들은 이미 자유주의적인 시민들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의 회원인 시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잠재적인 후원자들인 시민은 ‘진보적’인 시민들이다. 막연한 믿음을 갖기에는 현대 사회로부터 받는 고통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홍균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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