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890

기대는 높고, 의문은 깊고 …

의문사진상규명위 출범 8개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출범 8개월째. 83건의 의문사를 조사하고 있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은 안녕한가. 9개월이라는 조사시한 중 벌써 절반을 훌쩍 넘긴 사건이 많지만 별다른 보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위’) 활동이 난관에 봉착했다. 작년 12월 2일 첫 조사를 개시한 사건들 중 일부가 다음달이면 1차로 끝날 예정이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발표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92년 8월 행방불명됐던 노동운동가 박태순 씨가 신원불명의 행려사망자로 처리돼 화장된 사실을 밝힌 것과 82년 3월 변사체로 발견된 건국대생 신영수 씨가 단순사고사였다는 것을 밝힌 것, 이 두 가지가 전부다. 6월이면 1차조사가 끝나는 것이 8건이고 7월이면 대다수 진정 접수건의 1차조사가 끝나야 한다. 따라서 조사 연장 3개월을 고려해도 지금쯤이면 중간발표라도 나와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 진상위는 위에서 언급한 2건 외에는 여타의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일종의 함구령이 내린 상태이다. 직접 진상위에 찾아가 봐도 일선 조사관에서 위원까지 모두들 매우 공식적인 발언 외에는 말하기를 꺼렸다. 온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시점에서 너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진상위의 조사 과정 자체도 일반 국민들과 유가족에게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아 투명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언론에서도 의문사 조사의 역사적 의미는 어느 정도 보도했지만 조사과정과 결과가 빠져 한풀 꺾인 모습이다. 오히려 돈과 시간만 축내는 것은 아니냐는 흠집내기 식 보도가 일부 보수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간연장, 기득권의 저항, 자료부실의 문제 드러나

우선 진상위의 조사현황부터 알아보자. 현재 조사중인 것은 81건이다. 작년 11월 9일에서 올해 1월 5일까지 진정인에 의해 접수된 것은 80건. 이 중 2건이 각하되었다. 또한 위원회 차원에서 남민전, 인혁당, 삼청교육대를 조사한 것이 5건으로 총 83건이 조사 진행중이다. 그 중 1건은 진정인이 취하했고, 나머지 1건은 신영수 씨의 경우로, 이것이 종결됨으로써 현재 81건이 남은 것이다.

황인성 진상위 사무국장은 “현재는 대부분 피진정인에 대한 조사로 넘어간 단계”라며 “진척되는 정도로 봐서는 7월 중순쯤에 8건 정도를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현재 조사단서가 될 만한 것으로 5∼6건의 제보가 들어와 있다”고 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사건의 윤곽이 잡힌 것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더딘 진행과정과 함께 진상위가 실제 일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벽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의문사 사건 자체가 말 그대로 ‘의문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 개별적으로 일반인과 동떨어진 곳에서 사망했고, 너무나 오랜 기간이 지난데다 현장보존이나 당시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황인성 사무국장은 이를 두고 “은밀성과 개별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측면과 물리적인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며 “그런 이유와 더불어 1차 수사기관이 결과를 발표한 터라 더욱 엄정한 고순도의 조사를 요구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애초 특별법을 만들고 진상위를 꾸리면서 우려했던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먼저 조사기간의 연장 여부가 걸려 있다. 현재로는 조사기간이 길어야 9개월. 이처럼 조사기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의 경우도 처음 18개월 예정에서 2년 10개월로 연장되었다. 김형태 진상위 상임위원은 “3개월 연장이 위원회의 공식입장”라고 밝힌 후 “그렇지만 우선 정해진 기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은 최대 6개월까지 추가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직접 조사를 맡고 있는 일선 조사관들은 이보다 더 연장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특별조사과 현정덕 조사관은 “각 건의 진실을 제대로 조사하고 종결시키고 싶다”며 “이를 위해 기존 안과는 달리 상당기간의 조사가 보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윤희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 진상규명 사업국장은 “기간은 최대한 연장됐으면 한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단순한 기간연장이 아니라 수사권한도 함께 가져야 ‘기간만 연장하고 세금만 쓰는 식’이라는 방해세력의 흠집내기를 막고 내실있는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권한이 없다는 것은 곧바로 참고인이나 피진정인의 저항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예전 국가기관에서 일했던 이들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난 것들이 대부분임을 알고 있고, 조사를 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태 상임위원은 “참고인이나 피진정인 일부는 외국으로 나간다거나 불러도 오지 않는다”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꼭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오는 한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제로 데려와도 진실을 얘기해야 해결되는 부분이고, 그런 증언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단, 출석을 안 하면 벌금이나 징역 등의 형사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며 그와 함께 허위진술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조사권에는 진상위로 동행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거부할 경우 1000만 원의 과태료도 물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이 규정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현정덕 조사관은 “조사 도중 국가기관 출신의 참고인이나 피진정인은 우리에게 수사권한이 없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그냥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조사를 위해 다시 동행을 요구해도 거부하기 일쑤라는 것. 과태료를 부과하려 해도 현재로는 부과주체가 불분명한 상태라 어렵다고 한다. 그는 “과태료는 현재 절차상 시행령이 미비해서 직접 부과가 어려운 상태라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물적 증거나 자료를 가지고 있는 군, 경찰을 비롯한 기관의 비협조도 실제 조사에 들어가면서 문제로 드러났다. 황인성 사무국장은 “각 기관에 자료요청을 하면 형식적인 자료만 보내거나 보존기한이 지나서 파기했다는 통보만 온다”며 “그 기관들에 전체적으로 어떤 자료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동호 조사관은 “경찰의 경우 기록보존이 10년이므로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며 “참고인 조사는 거의 개인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유가족들이 모아둔 사본을 오히려 이용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진행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또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의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일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남아공과 같이 전국민적인 관심과 지지 속에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나서서 진실을 밝히면 우리 사회에서 소위 ‘왕따’가 되거나 자신의 가족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줄 것 같아 꺼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동호 조사관은 “가해자 측의 제보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사회적 매장이 두려울 것이며 동료집단의 따돌림, 개인적인 불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형태 위원은 “과거청산이 명확해야 현재와 미래에 건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사회적인 공감대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전체의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한편 진상위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민간단체들의 입장은 매우 불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정윤희 국민연대 진상규명 사업국장은 “어떠한 조사결과도 받아보고 있지 못하다”, “조사과정의 중간발표가 있어야 하며 진행상황을 공개하는 등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현재 진상위 활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 사건이 종결되어 판정이 났다고 해도 진행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사고사로 판정나는 경우에도 간접적인 공권력 개입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건 경위와 배경을 밝혀달라는 입장이다. 정 국장은 “진상위의 활동이 잘못되고 있다고만 보는 것은 아니”라며 “분명한 성과도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더욱 공개를 해서 진상위 스스로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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