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828

우리의 역사교육은 떳떳한가?

일본 역사교과서왜곡 뒤짚어 읽기

최근 한 고등학생이 애국투사를 비하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 남자는 전원 탄광에 갖다 버리고 여자는 미국, 중국에 팔아버리자”, “사무라이 정신도 없는 오합지졸 조센징이 대일본의 교과서 개정에 간섭하면 다친다” 등 자극적인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이 사이트를 만든 학생은, “평소 일본을 좋아했는데 최근 안티 일본 사이트만 늘어 기분이 나빴다”며 “처벌하려면 수많은 안티 일본 사이트 개설자와 형평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의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먼저 왜 우리가 일본 역사교과서의 개정을 요구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일본의 교과서를 고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받았고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끼리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문제도 아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본질은 일본의 군국주의 경향이 노골화된다는 점에 있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일제의 한국 강점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침략 행위가 바로 이런 역사 인식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21세기를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이 같은 역사관을 가르치겠다는 것은 또 한번의 침략을 기약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문제의 교과서를 온전하게 수정함으로써 그 동안 표명해온 국제이해와 평화공존의 의지를 실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우리 역사교육에 대한 점검의 필요성이다. 현재 중학교 국사교과서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서술은 딱 한 줄이다.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되기도 하였다.’ 종군위안부의 규모, 실상, 그들의 최후, 현재의 생존자 수 등에 관한 소개도 전혀 없다. 사진도 없다. 마치 우리들의 치부이기나 한 듯이….

이런 역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어떤 역사인식을 갖고 있을까. 일본 대중문화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일제 침략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의 온전한 성장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그리고 그 결과 민중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학생들이 체험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국정교과서가 경전인가?

우리의 올바른 역사교육을 막고 있는 것은 뭘까. 그것은 바로 역사교과서가 ‘국정’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교육은 ‘교과서 지상주의’였다. 즉 교과서는 경전으로 간주되었다.

국정 국사교과서의 가장 큰 규정력은 바로 한 국가의 지배이념을 심어주는 것이다. 국정제를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지배이념의 고수 의사에서 나온 것이다. 부당한 절차로 권력을 장악했던 군부독재 정권의 현대사 서술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가 인정하는 유일한 진실 혹은 진리를 담고 있는 국정 국사교과서. 이 공신력에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는 세력 집단들은 교과서 내용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유일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교과서에 자기 편에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그 집단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국사교과서 내용이 자기들의 생각에 가깝게 쓰여지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따라서 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상이한 집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관점으로 역사가 서술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그 집단들의 이념 분포의 스펙트럼은 간단하지 않다. 단군 서술이 불충분하고 냉대받고 있다고 공청회의장에서 시위를 하거나 재판을 거는 경우는 상례화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단군을 역사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반대하고 나선다.

현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6차 교육과정 교과서 준거안의 현대사 사건 명칭을 놓고 전개되었던 격렬한 논란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제주도폭동’과 4·3 항쟁’ 사이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기 어렵다.

진실은 하나이고, 교과서는 그 하나의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관념이 국정 교과서 체제를 고수하고 있고, 그러한 논의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결국 국사교과서의 역사상들을 결정하는 중요한 배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소한 검정제를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정으로는 교과서 나름의 관점을 담아낼 수 없다. 국정 국사교과서는 앞으로도 기존이념을 온존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두루뭉술 처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과 근현대사 교육의 실종

역사가 학생들에게 의미있게 다가설 수 있으려면, 그들이 접하는 사실들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을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장에서 근현대사 교육이 실종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교과서가 친일 파나 그 제자의 글로 도배되었다. 또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근대사의 기술은 왜곡되거나 반쪽일 수밖에 없었다. 독재 정권하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주입하기 위해 서술된 현대사 부분에서 시험 문제를 낼 대학 교수가 뉘 있을 것이며,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데 이 부분을 굳이 가르치는 중등 교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분단과 독재로 대표되는 현실정치의 왜곡, 그러한 현실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우리 역사학계의 관행, 무엇보다도 왜곡된 역사 교육을 강요한 권력과 이에 대한 수동적 저항으로 ‘안 가르치기 운동’을 벌여온 교사들의 자세가 그 동안 총체적으로 현대사 교육을 방치하게 만들었다. 현대사 학습은 오늘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는 구조를 해명하고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구조 속에 내재된 모순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를 지양할 수 있는 방법과 경로를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현대사 교육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2002년부터 시행되는 7차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은 근현대사를 선택과목으로 배우게 된다. 학생들에게 선택을 권장하면 된다지만 그게 먹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입시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마당에 공부하기 쉬운 다른 선택과목을 제쳐두고 굳이 까다로운 근현대사를 택할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결국 근현대사는 있으나 마나 한 과목이 될 수밖에 없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제 역사를 독립된 교과로 편성하여 후세에 가르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말고는 없다. 지금 우리는, 민족 문화의 계통과 발전, 나라의 흥망과 민중의 정서를 일관된 논리로 체계화하고 그 원리와 특징을 익힘으로써 조국과 겨레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해온 ‘국사’를 독립교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사’를 사회과의 한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민중을 시급히 근대시민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여기던 미군정기의 유산이다. 기능주의와 효율 우선의 서구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의 나아갈 바를 민족적 정체성과 대의적 원칙 위에서 생각해온 고대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외국과 국제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화·세계화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먼저 역사교육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최현삼 전국역사교사모임 중앙고등학교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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