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606

집회의 자유는 없다

시민단체와 검경의 집시법 개정 공방 예고

지난 8월 19일 서울지법 형사14단독 신광렬 판사는 광화문 앞에서 해골 마스크를 쓰고 온몸에 하얀 붕대를 감은 미라 분장으로 1인시위를 벌이다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즉심에 회부된 뒤 정식재판을 청구한 레미콘 노동자 김모 씨(40세)에 대해 벌금 3만 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4월 13일 정부가 레미콘 노조의 설립을 불허하자 도심에서 1인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된 뒤 즉심에 넘겨졌다. 경찰은 김씨의 1인시위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의 제2조2호의 ‘다수인’에 해당하지 않자, 경범죄처벌법 1조24항(불안감 조성) 위반죄를 적용했다.

이는 시민사회단체가 집시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시위방법으로 활용했던 1인시위조차 불법으로 간주한 셈이다. 이러한 조처는 사실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집회 신고제가 허가제로 변질되는 상황

특히 최근 몇 달 사이 경찰당국이 집시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과잉진압 등으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크게 훼손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4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는 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노조사무실로 들어가려는 것조차 경찰이 막아 커다란 사회문제로 쟁점화됐다. 그때 경찰은 “다수가 이동하는 것은 집시법상 시위에 해당하는데 신고되지 않았으므로 불법시위”라고 못박았던 것.

그 외에도 이미 경찰에 신고된 집회일지라도 종료시간을 20여 분 넘겼다고 전원 연행한 경우나 신고서에 기재된 인원보다 많은 수가 참석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연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의 이런 자의적 법 집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올 정기국회에 집시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사회진보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0월 말경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연대기구’(이하 연대기구)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이들은 이번 정기국회 동안 대사관 앞 집회금지 등의 개정을 요구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동시다발 집회를 개최하거나 공청회 등을 열어 앞으로 본격적인 집시법 개정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연대기구는 현행 집시법 중 개정돼야 할 조항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대사관 100미터 내의 집회금지(제11조), 둘째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규정 중 주요도시의 주요도로 집회금지(제12조), 셋째 집회 및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 통고(제8조) 등이 그것이다.

집시법 제11조1호의 ‘대사관 100미터 내 집회금지’ 조항은 무엇보다 삼성, 현대 등 재벌기업들이 본사 앞 집회를 막기 위해 이 규정을 악용하고 있어 문제다. 현재 현대상선 건물에는 파나마 대사관, 삼성생명 본사 21층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 그리고 종로 삼성타워에는 온두라스 대사관이 들어서 있다. 따라서 이 조항에 근거해 이들 건물 앞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권두섭 법규차장은 “집회장소 100미터 안에 대사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그 대사관과 관련 없는 집회를 열고자 하는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특히 노동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업장이나 본사에서 집회를 하게 마련인데, 사업주가 이런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무상 또는 유상으로 대사관을 유치 및 입주시킴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박탈하고 있어 그 위헌성을 제기할 만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제12조1항 ‘주요도로에서의 집회금지 및 제한’ 조항에 따르면 현재 종로, 여의도, 광화문 4거리, 청량리 등 서울시내 대부분이 주요도로로 지정돼 있다. 무엇보다 연대기구는 경찰당국이 이 조항에 따라 교통소통을 위해 언제든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주요도로의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8조2항의 ‘집회 및 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통고’ 조항은 한 장소에 둘 이상의 집회가 신고된 경우 동시에 여러 집회를 벌이는 것을 불허하고, 가장 먼저 신고된 집회만을 허가하고 있다. 따라서 연대기구는 이 조항을 개정해 한 장소에서 동시에 여러 집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 일부 기업 및 단체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장시간 집회신고를 해두고 실제로는 개최하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 것. 인간성회복국민운동본부는 지난 8월 한 달 동안 서울역 광장에서 ‘인간성회복국민운동결의대회’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집회신고를 했다. 대학로문화발전추진협의회는 지난 7월부터 석 달 동안 대학로에서 장기간 집회를 하겠다고 미리 신고를 낸 바 있다. 또한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주요 집회장소인 종묘공원은 세운상가협의회에서 연말까지, 광화문 앞은 전국건설운송노조와 마찰을 빚었던 유진기업측에서 10월 한 달 동안 집회신고를 낸 상태다. 따라서 이곳에서 타 단체는 단 한 차례도 집회를 열 수 없다.

연대기구는 추진중인 개정안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문제 조항 외에도 불필요한 기재사항을 채워야 하는 집회신고서 양식이나 야간집회의 금지, 사복경찰의 집회장소 출입이나 사진·비디오 채증 등을 지적하면서 이의 수정 및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옥죄는 정부당국

한편 검찰이나 경찰은 집회 및 시위를 좀더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18일자 일간신문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이팔호 청장은 “극심한 교통혼잡을 초래해 경제사회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대학로 등 서울도심 주요도로에서의 집회 및 시위에 대해서는 집시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 금지시키거나 제한해 집회 및 시위와 관련 없는 대다수 시민들의 편익을 적극 고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서울지검 공안2부도 언론보도를 통해 “지역별로 참가 인원 등 집회규모를 제한하는 쪽으로 집시법을 개정하기 위해 법무부에 건의할 방침”이라며 “서울의 경우 4대문 안은 집회 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하고, 그 외 지역은 1000명까지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와 행정자치부는 이같은 집시법 개정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몇 개월 동안 집회나 시위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법 집행을 고려해볼 때, 이런 움직임은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선 경찰당국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집회가 신고되는 종로경찰서 정보2과의 한 관계자는 “경찰은 공공질서 차원에서 현행 집시법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집회장소에서 앰프 등을 이용할 때의 소음기준 마련, 집회 제한통보 위반시 구체적 처벌규정 추가, 집회장소에 정·사복 경찰 출입 허용, 집회 또는 시위에서 자진 해산의 명확한 시간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도 이런 집시법 개악 시도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4월 2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의 폭력 진압 후 서울경찰청 이동환 경감은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무영 경찰청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경찰이 ‘보호’를 명목으로 집회 및 시위 현장에 습관적으로 배치되어온 것은 잘못되었다”며 “집회신고가 접수되면 금지통고를 하지 않은 모든 집회시위장소에서 경찰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상희 영등포경찰서 조사반장은 최근 발표한 「집회·시위관리를 위한 경찰 작용의 법적 정당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현재 집회신고서 기재내용이 너무 많아 집회·시위가 사실상 허가제로 변질되었고, 집회 방해 목적용 사전신고가 장기간 이뤄지고 있으며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험’이란 애매한 금지 조항에 경찰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의 집회·시위 진압시 정당성을 획득할 법적인 근거가 미비하다”며 “법이나 판례 등을 근거로 해산을 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적법한 집회와 시위는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현행 집시법이 애매한 법 규정과 경찰과 검찰의 자의적 해석으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반드시 개정돼야 하지 않을까. 경찰 내부에서조차 집시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마당에 경찰당국과 검찰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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