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1359

프리랜스 방송작가의 서러움을 아시나요?

전국여성노조 방송사지부 MBC지방방송사에 단체교섭 요청

“직업이 뭐죠?”

“저요? 방송국 구성작가인데요.”

“정말이에요? 돈 많이 벌겠다. 이제 든든한 빽 하나 생겼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송국에 다닌다는 말에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지방방송사 구성작가들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덧붙이며 큰 돈벌이도 되지 않고 든든한 빽도 아니라며 겸손(?)을 떨게 된다고 한다.

1년 동안 지방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을 맡아온 구성작가 정모 씨(24세). 정씨는 서브작가를 조건으로 주당 10만 원을 받고 반년 가량 일을 했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는 “방송사에 취업하기 위해선 누구나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흔쾌히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방송국에 들어가 보니 상황은 달랐다. 다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신참 서브작가의 경우, 정씨와 마찬가지로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임금을 2배 가까이 받고 있었다. 정씨는 담당 PD에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제작비가 이미 책정돼 있어 다음 개편 때까지는 변동이 어렵다는 것이 PD의 변명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나중에 대가가 지불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들은 2~3년 고생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방송국에 지원서를 제출한다.

고용불안과 과중한 업무부담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희망도 잠깐이다. 개편 때가 되면 상황은 바뀌고 고용승계가 이뤄지지도 않는다고 작가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방송국의 프로그램 개편과 인사이동이 같이 이뤄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없어질 수도 있고, 작가를 채용한 PD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제작에서 손을 떼는 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새로운 PD와 손을 잡지 못하면 방송국에서 내몰리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대부분 지방방송사 구성작가들이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 구두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PD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편당 임금에 대한 얘기가 고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개채용으로 뽑힌 작가들도 개편 때의 마음고생에는 예외가 없다. 근로계약서 작성은 고사하고 구두계약조차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작가들은 어떠한 불이익도 호소할 근거가 없다고 답답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은 명확하지 않은 업무분담으로 인해 작가라는 정체성마저 자문하게 된다. 방송작가들은 대부분 방송 소재 선정, 회의 참여 등의 업무 이외에 홍보문 작성, 공문 작성 및 발송, 자료 대출과 복사, 소품 구입, 출연자 안내 및 접대, 배차 신청, 사무실 잡일 등 작가 본래의 업무를 벗어난 보조업무들까지 맡고 있다.

3년 경력의 한 지방방송사 작가는 “여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 뿐더러 공휴일 또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작가 하모 씨(30세) 또한 “일은 일대로 하고 보험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며 “프리랜스(자유계약직)라는 허울 속에 의무만 강요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방송사와 단체교섭을 희망하는 작가들

대구경북 방송작가협의회 강병순 씨는 “프리랜스 구성작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들의 처우를 PD 고유의 영역으로 떠넘겨 방송사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잘못된 발상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작가들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PD 개인에게 고용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방송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방방송사 작가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특히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들의 노동3권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방방송사 작가들의 현실 개선 의지는 최근에 노동조합을 탄생시킴으로써 첫발을 내디뎠다. 지방방송사 13군데 150여 명의 프리랜스 작가, 진행자로 구성된 전국여성노조 방송사 지부는 지난 8월 29일 창립결성식을 갖고, 9월 말 개편을 앞둔 7개 MBC 지방방송사에 공동요구안(회사와의 대화창구 마련, 채용과 퇴직의 기준 마련, 고료 현실화, 근무환경 개선)을 내놓고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이는 지난 3월 마산MBC 작가들의 노조 결성이 기폭제가 돼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 마산MBC 작가들은 개편을 앞두고 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마산MBC에 다섯차례나 단체교섭을 요청했으나 마산MBC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이에 마산MBC 작가들은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으나 9월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각하했다. 한마디로 방송사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구체적인 계약서류가 없고 작가들은 방송사로부터 어떠한 통제도 받고 있지 않다는 점, 보조 업무도 각자의 책임감이나 열의, 재계약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지 방송사가 강제한 것은 아니라는 게 거부판정의 이유였다. 현재 마산MBC 작가들은 여성노조 명의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소 신청을 한 상태다.

이에 대해 10월 10일 ‘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사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방송사 구성작가·진행자들의 노동3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김진 변호사는 발제문을 통해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은 근로자성 판단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계약의 형식이나 형식적 요소만을 주로 평가한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소영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노조법상 작가는 분명히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으며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작가들은 단체교섭을 방송사에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성작가들의 노동권 보장해야

전국여성노조 방송지부 소속 작가들은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노동계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상당부분의 제작 인력을 비정규직, 용역,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방송사들도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주시하는 눈치다. 여성노조 이혜순 기획국장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구성작가들의 노동현실은 우리 사회 전체 노동자 중 58%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구성작가들의 노동권 보장 요구는 방송환경과 제작여건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로 볼 수도 있다”며 “올바른 방송 인력구조를 마련하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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