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1월 2001-11-29   1320

황학동 블루스

동대문시장은 거대한 불야성이다. 1990년대 후반에 새로 들어선 거대한 의류상가들이 이 불야성의 주역들이다. 밀리오레며 두산타워 등의 새로운 의류상가들은 거대한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주변을 불야성 지대로 만들고 있다. 서울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곳은 서울의 어느 곳보다 더욱 휘황하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다른 곳들이 어둠에 잠겨 하루를 마감하려고 할 때, 이곳은 가장 바쁘고 요란한 시간을 준비한다.

동대문시장은 정말 놀랍게 변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화시장 주위는 정말 놀랍게 변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높다란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서 주변의 경관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경관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서울에서도 이름난 10대들의 해방구이다. 예전에도 평화시장에 옷을 사러 오는 10대들이야 있었지만, 요즘은 아예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10대들도 많이 있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에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동대문시장의 거대한 인파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다. 이곳에서 인파에 휩쓸리지 않고 길에 서 있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걷는 사람을 위한 여지가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어서 이미 거의 진부한 개념이 되어 버렸지만, ‘삶의 질’이라는 개념은 변화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분명히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한다. 동대문시장에서는 이런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기게 된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외형적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곳은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 되었다.

동대문시장은 ‘삶의 질’에 대한 말만 무성한 우리 사회의 실상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동대문시장에서는 이런 공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휘황하기만 한 신축 의류상가들과 달리 예전 모습을 아직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황학동은 어떤가? 바야흐로 몰아닥칠 거대한 개발의 물결은 그곳을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변화

지하도를 건너 청계7가 쪽으로 간다. 이곳에서 지하도는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곳이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한 상가의 성격을 훨씬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하긴 남대문시장 지역은 이곳보다 한 술 더 뜬다. 그곳에서는 얼마 전에도 횡단보도를 없애고 지하도를 신설했다. 그곳이 어느 곳이건 지하보도와 육교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제하는 물리적 장치의 구실을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가장 대표적인 상가 지역은 가장 대중적인 곳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물리적 구조 자체가 그렇지 못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육교와 지하도를 없앨 수는 없을까?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남긴 이 잘못된 유산을 없애는 것은 서울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에 성균관대 앞에 가 본 사람은 아마도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언제나 거기에 있던 육교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통해 편하게 길을 건너다닌다. 이런 변화가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는 불가능할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그런 곳이야말로 이런 변화가 더욱 더 절실한 곳이 아닐까?

황학동은 이른바 ‘벼룩시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온갖 허접한 것들이 주인을 만나는 곳이며, 그런 것들을 사고 파는 모습이 이 지역의 중요한 볼거리로 자리잡은 곳이다. 내가 이곳에 처음 가봤던 것은 21년 전인 1980년 가을이었다. 창신동에 살던 친구를 따라 교복을 사러 갔었다. 리어카 노점에서 파는 헌 교복을 사서는 바로 옆의 수선가게에서 원하는 형태로 수선해서 입었다. 당시는 바지 끝을 좁게 해서 입는 게 유행이라 그런 식으로 줄여 입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천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요즘 황학동에서는 물론 교복 노점은 볼 수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가장 많이 끌고 있는 것은 각종 ‘고물’들이다. 이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고물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거리지만 특이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또 맘에 드는 물건을 만나 흥정하는 재미는 여간한 것이 아니다. 파는 사람에게는 생계활동이겠지만 사는 사람에게는 여가 활동인, 이런 식의 거래와 장터는 흔한 것이 아니다.

이 지역은 흔히 인간미가 넘치는 곳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삶의 내음이 짙게 배어 있는 고물들이 거래되는 곳이고, 또 사는 이와 파는 이가 입담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환경으로 보자면, 이곳은 삭막한 서울에서도 유난히 삭막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청계고가도로가 지나가는 곳이고, 길가에는 삼일아파트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창하고 남루한 시멘트 환경을 서울의 어느 곳에서 또 볼 수 있을까?

황학동 지역은 크게 네 개의 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도로이다. 사람들은 보통 평화상가에서 보도를 통해 황학동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황학동을 향해 걸어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옆의 도로가 예전엔 개천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개천을 뒤덮고 도로를 내고 그 위로 다시 고가도로를 놓았다. 이렇게 도로를 놓은 결과로 생겨난 것이 인파로 가득찬 보도이다. 서울에서는 자동차가 사람을 지배한다는 사실이 황학동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차들이 청계로로 청계고가도로로 지나다닌다. 황학동은 그 소음과 매연, 그리고 그늘 속에 가려 있는 가난한 동네이다.

월드컵 앞두고 철거되는 황학동

황학동에 들어서면 보도에 바로 붙어서 지어진 아파트들을 만나게 된다. 이 아파트들이 두 번째 층을 이룬다. 물론 그것은 깨끗하고 멋진 중산층 아파트가 아니라 더럽고 낡은 ‘시민’ 아파트이다. 곧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아파트들은 ‘삼일아파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다카키 마사오)가 생각했던 ‘삼일정신’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약간의 세월만 지나도 곧 무너지고 말 보잘 것 없고 엉성한 구조물, 아마도 그것이 박정희와 그의 부하들이 생각했던 ‘삼일정신’이었으리라.

이 아파트의 겉모습은 불쾌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많은 시민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서울시에서는 조만간 큰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도심미관 정비 차원에서 삼일시민아파트를 조속히 철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979년의 세계사격선수권대회, 1986년의 아시안게임, 1988년의 올림픽대회에 이어 이제 월드컵대회가 서울시의 변화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었다. 이 불쾌하고 불안해 보이는 아파트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라는 사실은 이렇게 국제행사가 서울시의 변화를 선도해 온 이상한 ‘전통’ 앞에서 쉽게 무시되어 버린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이미 이주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이주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떠날 수 없는 절박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주위가 그들에게는 생계의 터전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삼일아파트의 재개발계획은 이미 1984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도 견디고 살아남았으나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다시 사라질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재개발 사업안에 따르면 지금의 삼일아파트 자리에는 아파트 1989가구(분양 1353가구, 임대 636가구)와 지하 7층, 지상 36층의 대형 주상복합건물 3개 동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은 다시 한번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처음의 변화는 개천이 도로로 변하고 그 옆에 ‘시민’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었다. 이번의 변화는 ‘시민’ 아파트가 훨씬 더 크고 높을 뿐만 아니라 휘황하기도 한 아파트와 상가로 변하는 것이다. 낡고 초라한 황학동이 멋지고 세련된 황학동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물리적 외관만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할 것이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변할 것이다. 결국 황학동 자체가 변하고 말 것이다.

삼일아파트 주위에는 낡은 단층 건물들이 많이 있다. 복잡한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들에는 많은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비디오 테이프 가게들이다. 그 사이사이에 ‘건강’ 식품을 파는 가게들도 여럿 자리잡고 있다. “정력이 딸리시는 분들, 이 뱀 한번 잡숴봐” 하는, 그리고 덧붙여서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는, 어려서 많이 들었던 호객 소리를 이곳에서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가게들을 지나 청계로에서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조금 큰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의 양옆에는 음식이며 술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각종 꼬치, 회, 곱창, 그리고 수구레까지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게들이다.

거대한 상가 뒤에 가려진 가난

이 가게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황학동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언덕에 이르게 된다. 황학동의 마지막 층이지만 유일하게 아름다운 층이다. 북한산이 동숭동의 낙산과 숭인동의 동망산을 거쳐 왕산로를 지나 청계천을 건너서 이 언덕을 만나고, 다시 행당동과 신당동의 언덕들을 지나 왼쪽으로는 응봉을 향하고 오른쪽으로는 남산으로 향하게 된다. 옛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언덕은 남아 있어서 이곳에 서면 주위를 휘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동쪽은 여전히 열린 상태여서 멀리 아차산 능선이 보이기도 한다.

언덕 주위는 한옥들로 이루어진 주택가였다. 이곳에 서서 북쪽을 향하면 청계로에 길게 늘어선 낡은 아파트 무리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계획에 따르면 아마도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 삼일아파트다. 이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그 분은 삼일아파트 재개발계획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언덕배기 동네도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이미 많은 집들이 헐린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울시의 계획대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황학동이 생계의 터전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런 생계의 터전을 옮기는 것과 다름없고, 그렇기 때문에 좀처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심지어 몇 명인가는 죽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언덕 주위의 한옥들은 이미 많이 헐린 상태고 멋지게 지은 다세대주택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기도 했다. 초고층아파트가 아니면 다세대주택이라는 재개발의 공식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낡은 아파트 무리와 시장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한옥들은 여전히 정겨운 모습들이고,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의 맨흙을 이곳에서는 만날 수 있다. 한때는 어느 집의 마당이었으나 이제는 밭으로 바뀌어 콩이며 열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우리를 만들어 닭과 토끼를 기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전에 서울의 어느 골목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똥개’들도 이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언덕에 서니 갑자기 과거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여전히 흙과 풀이 싱싱한 생명을 과시하는 과거의 서울이다. 이런 모습을 지키면서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서쪽으로는 황학동 상가의 어지러운 모습 위로 남산이 흐릿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저녁 햇살에 모든 것들이 흐릿하게 녹아내리는 듯하다. 밀리오레며 두산타워 같은 동대문시장의 부활을 가져온 새로운 의류상가들도 모두 저녁 햇살에 흐릿한 실루엣이 되어 겨우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휘황하고 우람한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는 저 거대한 상가들도 한 세대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삼일아파트처럼 완전한 철거와 재개발의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서울에서 그런 운명을 맞는 것은 가난한 ‘시민’ 아파트나 산동네 판자촌일 뿐, 엄청난 이권이 달린 거대한 상가나 중산층 아파트 무리는 결코 그런 운명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저녁 햇살은 동대문시장의 거대한 상가를 사막의 신기루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 상가의 휘황한 불빛들은 이런 착시가 한낱 감상의 소산일 뿐이라는 사실을 곧 밝혀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황학동의 언덕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만, 동대문시장의 상가는 그 존재를 더욱 더 분명하게 온 천하에 과시한다.

만일 서울시의 계획대로 황학동의 재개발이 착착 진행된다면, 2005년의 황학동은 지금과 자못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곳은 분당의 어느 곳과 동대문상가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서울시는 황학동과 동대문운동장 사이쯤에 ‘한류메카’라는, 이른바 ‘한류열풍’을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이어가기 위한, 복합문화산업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기도 하다. ‘한류열풍’이 급작스레 ‘한류한풍’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조만간 공간적으로 구체화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청계6가에서 청계8가에 이르는 커다란 지역이 모두 휘황한 상가지역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황학동이 이런 변화의 격류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언덕이 사라지고, 집들이 사라지고, 사람마저 사라지고, 황학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도시도 늘 변해간다.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이 되게 마련이다. 낡은 것은 도시의 역사가 되어 도시에서의 삶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그러나 낡은 것이라고 해서 모두 지킬 가치가 있는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도시계획은 시간적으로 더욱 더 깊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삼일아파트를 지을 때처럼 눈앞의 경제적 이득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황학동을 재개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울이라는 삭막한 세계 속에서 황학동이 수행하는 구실을 생각한다면, 그 재개발은 정말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황학동에서 횡단보도로 청계로를 건너 숭인동으로 넘어간다. 관운장을 모신 동묘 옆 골목에도 ‘벼룩시장’이 열렸다. 황학동 ‘벼룩시장’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까지 세를 넓힌 것이다. 황학동이 사라지고 나면 훨씬 작은 규모로나마 이곳이 ‘벼룩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게 될까?

홍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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