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1월 2002-01-01   894

삼성의 부당내부거래는 아무도 못말려!

삼성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해온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발견됐다.

내부 직원이 한 언론사에 제보해 세상에 드러난 이 문건은 삼성그룹이 2000년 8월부터 12월까지 실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5대재벌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대비해 부당지원행위가 드러날 수 있는 자료를 폐기하거나 조작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더욱이 삼성카드가 2000년 9월 27일 공정위 조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했던 사실도 밝혀진 바 있어, 이 문건은 삼성그룹이 공정위 조사에 대한 조직적인 방해공작을 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갖게 한다. 특히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공정위 조사는,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의 아들인 이재용 씨(현 삼성전자 상무보)가 최대주주로 있던 회사들에 대한 그룹차원의 부당지원행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어서, 조사를 방해한 배경과 드러나지 않은 부당지원행위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이재용 씨와 인터넷 벤처기업들

이씨는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박사과정을 거친 뒤 작년 3월 삼성전자 상무보로 승진하였다. 그는 이미 에버랜드, 삼성SDS 등 삼성그룹의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증여받는 방법으로 재산을 물려받아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그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이씨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즉,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부당한 재산증여 지적에 밀려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지 않자 삼성그룹이 그의 경영능력을 부각시켜 재벌세습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순조롭게 경영권을 이어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그룹은 벤처열풍이 불던 2000년, 이씨를 최대주주로 하는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들을 세우고 이들을 성공시켜 그의 경영능력을 과시하려 하였다. 이재용 씨가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컴퓨터 관련 분야인 것으로 최근 알려졌지만, e-비즈니스 사업을 전개할 e삼성 등이 설립되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씨가 미국에서 e-비즈니스를 공부했다고 잘못 알려진 사실에 대해 삼성이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이씨는 2000년 5월을 전후로 설립된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비롯 시큐아이닷컴, 이누카, 가치네트의 지분 50∼60%를 가진 최대주주가 되었다. 또 이들 기업을 통해 오프타이드USA, 인스밸리, 에프앤가이드, 이니즈, 뱅크풀, 크레듀, 엔포에버 등의 벤처기업들을 지배하여 ‘e삼성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그러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의한 ‘e삼성그룹’ 형성 과정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룹 차원의 각종 부당지원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세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혹은 국회에서도 제기될 만큼 확산되어 공정거래위원회는 2000년 8월부터 삼성그룹을 비롯한 4대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여부를 조사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참여연대도 인터넷 벤처기업을 통한 이재용 씨 지원 의혹과 관련하여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삼성의 수법

공정거래위원회는 작년 1월에 삼성그룹의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한 부당지원행위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당시 공정위는 인터넷벤처기업 (주)올앳에 대한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부당지원행위만을 밝혔다. 그즈음 제기되었던 많은 의혹들에 비하면 조사결과는 너무 빈약했다. 과연 삼성그룹은 조직적인 부당지원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게 바로 이번에 드러난 문서다. 공정위 조사에 대한 조직적인 방해공작을 담은 이 문건은 공정위의 조사결과가 왜 `속 빈 강정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작년 11월 19일 삼성의 공정위 조사방해 사실을 특종 보도한 한 언론사는, 삼성그룹 내부자로부터 제공받은 삼성그룹 내부 문건의 일부만을 외부에 열람하도록 하였다. 5쪽만 공개되어 있는 그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eSamsung 관련 사항」이라는 제목이 붙은 2장의 문서에서는, e삼성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기획되고 설립된 회사가 아니라 삼성그룹의 김모 자금부장이 구상하여 이씨의 투자를 끌어들인 회사라는 회사설립 시나리오가 적혀 있다. 이는 e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재용 씨 경영승계 시나리오에 따라 설립된 회사라는 점을 부인하여 그룹 차원에서 굳이 부당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문건에서는 2000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김모 자금부장이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신모 이사를 통해 이씨를 소개받아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에 대한 투자의향을 타진했으며, e삼성이 사이버교육과 게임포탈, 배틀탑 등에 투자할 것을 요청받고 관련된 사업계획서와 이사회 의사록을 그에 맞게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김모 자금부장이 신모 이사를 통해 이재용 씨를 소개받은 3월 15일에 이씨가 국내에 체류하고 있었는지를 비서팀이 확인해야 한다는 지시사항까지 적혀 있어 이 문건을 작성한 삼성그룹의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예상 문제점 / 대책」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는, ‘관련자 사전교육’, ‘임원 결정’, ‘사무실 임대차 미계약’, ‘투자서류 비치’ 등 주요 사안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관련자 사전교육’ 부분에서는 ‘(e삼성 설립과정) 시나리오대로 통일된 답이 나오도록 사전교육’을 실시하라는 대책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e삼성이 삼성중공업 소유 사무실을 임대차 계약 없이 무상으로 3개월 간 사용한 것과 관련해서는 e삼성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내세워진 “김모 자금부장이 개인명의로 삼성중공업과 임대차 계약(3.25∼6.24)”한 것으로 답변하라는 대책이 제시되어 있다.

또 「전체공통사항」이라는 제목의 문서와 「주요점검사항」이라는 문서에서는 삼성의 각 계열사 전문핵심인력들이 e삼성의 설립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점검사항들이 기재되어 있다. 즉 “T/F(태스크 포스) 인력은 전원 해당법인(e삼성 등 신설 인터넷 벤처기업) 설립일자에 맞춰 발령사항 조정”, “신규설립 법인 공히 인사카드 새로 작성” 등의 대책이 제시되어 있다. 또 인사분야에서는 ‘교육급여대장’과 ‘인사카드’를 점검하고, 총무분야에서는 ‘회사설립신고서, 자산대장’ 등을 점검하도록 지시하고, ‘싱글점검’이라는 항목에서는 삼성그룹 내부 전산망인 ‘싱글내 우편함’과 ‘개인서랍 게시판’에서 ‘관계사 지원’과 관련된 내용을 점검,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또 ‘홈페이지’라는 항목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회사설립)시나리오와 맞지 않는 부분’을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다.

이처럼 공정위의 조사를 받기 전 관련 서류와 사실관계를 조작, 은폐하도록 지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정위 체크 포인트」라는 문서에서는 타 계열사에서 파견된 ‘파견인력은 (공정위) 조사요원 출입 시 외출’시키라는 방해작전까지 지시하고 있다. 또 삼성 구조조정본부 명함과 전화번호까지 없애고, 구조조정본부에 대해서는 사람 이름도 모른다고 답변하라는 지시까지 적혀 있다.

‘이재용 씨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를 부인하기 위한 새로운 회사 설립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조사대상 직원의 외출 지시까지 치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관련된 여러 계열사의 서류와 인사카드 재작성에 이르기까지 부당지원행위를 은폐하려는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부당지원행위 은폐 및 조사방해 사실이 기록된 문서는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가 입수한 전체 문서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대상이 되었던 삼성그룹 인터넷 벤처기업이 e삼성 외에 10여 개 더 있었던 사실을 생각해볼 때 회사별로 각각 대책문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가 자금흐름이 기록된 문서도 있다고 한 말을 감안하면 문건에 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문서들은 분명치 않은 이유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거듭되는 삼성의 공정위 조사 방해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삼성그룹이 방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삼성그룹은 2000년 9월 27일 조사반원들이 삼성카드의 핵심부서인 경영지원실을 방문하여 인터넷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여부를 조사하려 하였을 때 사무실 출입을 물리적으로 막은 바 있다. 당시 수모를 당한 공정위는 출입저지를 당한 그 다음날부터 삼성카드뿐 아니라 삼성물산에서도 철수하였다고 알려졌다. 이 사실을 제보받은 참여연대가 9월 29일 공정위에 삼성카드의 조사방해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고 MBC에서 이 내용을 취재하자 공정위는 삼성그룹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공무방해행위를 유야무야 처리하였다.

지난 98년에도 당시 삼성자동차 직원들이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를 돕기 위해 삼성자동차가 제조한 SM5 자동차를 계열사 직원들에게 강매하거나 구매를 지원하였다는 제보를 받아 이를 공정위가 조사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공정위가 삼성자동차를 방문하여 조사를 진행하던 중 조사반원이 입수한 관련 자료를 삼성자동차 직원들이 빼앗은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공정위는 삼성자동차와 관련자 2인에게 각각 1억 원과 1000만 원씩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삼성그룹이 공정위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사례는 세 차례나 된다.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정치권력도 무시하지 못하는 재벌 중의 재벌인 삼성의 거만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삼성그룹의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어쩌면 공정거래위원회의 나약한 조사의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사를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조사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도 그 원인일 것이다.

상습적 조사방해 근절해야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따라 설립된 e삼성 등의 경영성과는 처참했다. 그러자 e삼성 등의 나쁜 경영성과가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한 삼성그룹은 이씨와 e삼성 등의 관계를 하루라도 빨리 끊기 위해, 2001년 3월 이씨가 가지고 있던 인터넷 벤처기업들의 주식을 제일기획, 삼성SDS 등이 인수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 따라 그룹차원의 부당지원행위마저 서슴지 않으며 설립되었던 ‘e삼성 그룹’은, 다시 그 시나리오에 따라 계열사에 부담을 떠넘기고 사라졌다. 게다가 삼성그룹은 부당내부지원행위를 은폐하면서 공정위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이는 국내 최대 재벌그룹에 온존해 있는 부도덕성과 후진성의 극치이며, 재벌개혁의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조사방해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엄벌하도록 해야 한다.

참여연대가 이미 삼성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이는 원래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이다. 이어 공정위는 삼성그룹의 부당지원행위를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 밝혀진 부당지원행위에 대해서는 가벼운 과태료 처분으로 흐지부지 끝낼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법에 의해 검찰에 고발해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재벌그룹의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근절하고 상습적인 조사방해 행위를 뿌리뽑을 수 있음은 물론, 공정위의 위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박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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