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586

‘총장님은 정치 안 하실 거예요?’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 vs 장주영 녹색연합 야생동물보호 활동가


평생 시민운동에 복무할 수 있을까.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 일하는 활동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문하는 바일 것이다. 이번 2050데이트에서는 기로에 선 2년차 녹색연합 장주영 활동가(26세)와 20년 간 환경운동에 복무해온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53세)이 만났다. 각 단체의 직함을 벗어 던지고, 선후배 간으로 만난 두 사람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놓고 한국 환경운동의 비전과 지구의 미래에 대해 토로했다.

20대엔 무조건 몸을 던져야 한다

최열 환경연합에서 『지구환경보고서』를 냈어요. 오늘 만난 기념으로 한 권 드릴게요. 내가 단돈 10원도 못 받는 발행인이지만 이 정도는 드릴 수 있어요. 자, 한잔 때립시다.

해물파전에 노란 옥수수막걸리가 한잔씩 돌자 최 총장이 ‘때리자’ 한다. 활동가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로 소문난 최 총장이지만 막걸리 잔을 치켜들고 ‘한잔 때리자’고 할 때 교자상 앞에 모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장주영 전 녹색연합에서 자원활동하다 상근자가 됐어요. 지난해 여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최한 남해 활동가수련회에서 전 ‘활동가 비전만들기 마당’에 들어갔어요. 삶의 비전과 환경운동의 비전이 일치해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총장님은 어떤 생각으로 환경운동을 지속하고 계신가요.

최열 초등학교 6학년 때 4?9가 났고, 그리곤 5·16… ‘혁명공약’ 외우고 그랬다니까. 『사상계』 읽고 한일회담 반대 데모 쫓아다니며 사춘기를 보낸 세대예요. 대학 2학년이던 69년 9월 14일 새벽, 여당 국회의원들이 따로 모여 3선 개헌을 날치기 통과시켰어요. 그때 내가 즐기던 모든 잡기를 끊고 민주화운동에 전념하겠다고 맹세했죠. 내 당구 실력이 400이었어요. 이래봬도 내가 다방에서 DJ까지 했다니까. 난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서 환경운동을 고민한 1세대예요. 고문과 투옥으로 단련된 몸으로 20여 년 환경운동한 셈이죠. 그러니까 앞으로 내게 던져진 소임은 후배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환경운동할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돌쇠 식인지 몰라도 20대엔 무조건 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패기가 20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장주영 선배들이 닦아놓은 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고민이 많아요. 이를테면 선배 운동가와 후배 운동가 사이의 세대 차가 존재한다고 할까요? 물론 이런 문제는 기업을 비롯한 어느 사회조직에라도 있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운동조직에서는 가능한 한 세대 차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2002년인 지금 선배운동가들은 후배운동가들에게 80년대식 활동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싶네요. 삶과 운동이 실천적으로 일치하는 방향에서 좀더 발랄하고, 경쾌한 방식으로 시민과 호흡할 거리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최열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운동을 추구해야죠. 생태학적 감수성을 가진 아이들이 환경운동에 영입될 수 있도록 환경운동가 삶의 근본을 바꾸는 것부터 우리가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일회용품 다 쓰면서 나는 환경운동가입네, 하면 안 되죠. 전 일회용 볼펜을 쓰지 않고 만년필과 샤프펜을 써요. 그런 노력들을 스스로 해야죠.

장주영 가끔 선배들과 얘기하다 보면 선배들이 너무 책임감과 의무감에 갇혀 있지 않나 싶어요. 열린 상대로 후배들과 대화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물론 20대가 선배운동가들에 비해 덜 조직적이고 심지어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다 해도 선배들이 그런 걸 인정하면서 후배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봐요. 서로간의 개인차를 인정하면서 같이 가야죠.

최열 지금 20대와 386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 모두 살아온 배경이 다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요. 우리 때는 책을 많이 봤지만 지금은 영화를 많이 보잖아요. 그런 문화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고…. 다만 난 오히려 젊은 세대가 나이 많고 경험 많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을 받들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깡통어른도 많거든. 부패하고 경직된, 그리고 권위적인 사람을 만나면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들이받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젊음인 것이지요.

녹색당은 정치적으로 이른 선택이다

장주영 21세기는 환경과 더불어 생명의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만큼 생태적 관점이 중요하다는 말일 수 있는데요. 총장님은 생태적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대중들을 모아 전사회적으로 한판 신나게 생명과 생태의 중요성을 일갈하는 문화운동도 필요한 것 같고, 또 그런 운동들이 모아져야 다음 운동의 전망도 나온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 속에서 운동가들의 전망이 솟구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최열 82년 공해병인 원산병이 전국적으로 알려졌을 때 그 사회적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어요. 공기오염으로 1명이 죽을 정도라면 10명의 환자가 있는 것이고, 100명의 환경성 질환자가 있게 마련이고, 1000여 명이 공해로 고통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이처럼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려면 한국이 앓고 있는 환경문제가 드러나야겠죠. 우리는 토목국가에 살고 있잖아요. 매일 부수고 새로 짓고 또 부수고 또 짓고…. 개발부처가 많아서 그래요. 이런 개발부처들이 보이지 않게 기업들과 유착돼 있죠. 이런 시스템이 결국 한반도를 죽이고 있는 거라구요. 따라서 이런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꾸는 노력이 대중적으로 확산돼야 해요. 대안의 시스템이 계속 나와야겠죠.

장주영 최근 환경운동진영에서도 녹색당이나 녹색자치위원회 등 정치참여문제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총장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열 환경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정치적인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정당형태로 도전하는 것은 좀… 분단, 지역갈등, 이념문제… 얼마나 복잡합니까? 이를 극복할 만한 대중적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전 너무 서두른 감이 있지 않나 싶어요. 정치는 운동과 달라서 의미있는 득표를 했다… 이런 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그 힘으로 운동을 열심히 하면 좋겠어요.

장주영 총장님은 정치 안 하실 거예요?

최열 정치도 때가 있어요. 나이가 안 맞아. 지금 내 친구들 중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2선, 3선 이런데 내가 초선의원이 돼서 너 국회 저지조 행동대원 해라하면, 이런 걸 내가 할 수 없지. 그리고 난 지구적 차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한 지역구에 가서 날 찍어달라, 할 수 있나? 나랑 안 맞는다니까. 생각 없어요. 이젠 내가 좀 물어볼게. 부모님께서 녹색연합 활동가로 일하는 걸 알고 계세요?

장주영 네, 어머니는 좀 이해해주시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직도 자원봉사한다고 생각하시죠. 너 언제 취직할래, 하신답니다. 좀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라시니까요.

‘운동의 짐’을 서로 나눠집시다!

최열 그게 참 문제예요. 대기업 수준은 아니어도 친구들과 네 번 만나면 한 번 정도는 술 살 수 있을 정도로 급여수준이 올라야 하는데…. 이런 상황인데도 앞으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겠어요?

장주영 그게 고민이에요. 나에게 환경운동가의 자질이 있는지, 대학 때는 열심히 했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내가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최열 우리가 항상 하는 고민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서 생활도 해결되면 진짜 좋겠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최근 내가 고민하는 게 활동가 최저생계비 권고치를 만드는 거예요. 서울은 최저 100만 원은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운동은 순발력과 지구력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거예요. 21세기는 환경과 여성의 세기예요. 우린 사회의 모순에 맞서 싸우며 좀더 평화롭고 환경친화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에요. 불행히도 우리 사회엔 아직까지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죠. 장 간사가 운동 그만두면 남은 사람들이 그 짐을 하나씩 더 가져야겠죠. 난 우리사회가 좀더 살 만한 사회가 되려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짐을 좀 나눠집시다. 계속할 거지? 아, 계속해.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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