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721

인터넷이 대선 판도 바꿀까?

인터넷이 대선 판도 바꿀까?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최고를 선택하는 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거의 결과가 최고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를 선택하기 위해 선거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그것은 구성원의 의견을 잘 반영하기 위한 역사였다. 오늘날 선거에서 인터넷이 주목을 끄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단순히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결과를 선거에 반영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을 사고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단순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사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전개되고 있고, 정보가 생산-유통-소비-재생산되고 있으며, 나아가 상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TV는 대중사회에서 정당이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최고, 최후의 수단이었다. 1대N이라는 관계성을 바탕으로 유권자를 자극하고, 설득하고, 몰입시키기에 충분한 TV의 기능적 특성이 선거에 활용된 것이다. 유권자는 최고를 선택하기 위해 TV에 몰입했고, 후보자는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해 TV 속으로 들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TV와는 다른 기반을 창출했다.

인터넷은 더 이상 1 대 N의 관계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동원형 정치나 선거운동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거꾸로 인터넷이 정치를 동원하게 되는 역전의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은 지역별로, 또 성별, 연령별로도 구분되지 않는다. 인터넷의 유권자는 실체가 있는 듯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이버 커뮤니티는 존재하지만, 인터넷이 특정한 정치적 유형으로 지속되는 군집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집단이 형성되면 그것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해 동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한 개인이나 집단을 동원해내는 물리력을 갖게 된다. N대N의 관계이기에 어느 누구에 의해서 개인의 의식이 좌우될 수 없는 그런 실체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인은 TV를 통해 직감적으로 여론을 잘 알아차리면서 권력에 다가갔으며, 그 결과 “가짜 민주주의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카스토리아디스의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여론은 직감으로 포착될 수 없다.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서 이것이 여론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게시판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 직감이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된다. 이것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인터넷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는 대중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사회이다. 오늘날은 이중사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실에서는 대중사회가 지배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현실에서는 정보사회가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충돌하고 있으며, 그 충돌의 대격전장 중 1라운드가 16대 대통령선거이다.

‘최고의 선택’과 인터넷

인터넷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터넷이 기존과는 다른 사회적 환경을 창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럽고도 기계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그 활용이 사회적 의미를 창출하며, 나아가 그 결과가 ‘최고의 선택’으로 이어짐으로써 공공성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상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것은 비단 인터넷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은 그러한 선택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계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계기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터넷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선거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인터넷 속에서 우리는 현실의 조건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구의 구분과 인터넷의 탈영역성은 그리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반면 대통령선거는 인터넷의 속성과 선거의 범주성이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인터넷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은 16대 총선과 같이 많은 선택 중에서 어디를 클릭해야 할지 막막해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의 투표대상을 위해 어렵게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클릭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은 이미 최고의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다.

화를 추동하자

대통령선거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은 최고의 선택을 위한 나름대로의 준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정치가 지역주의, 상호비방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로 일관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대중매체를 타고 빗발치듯 쏟아져 나온다면, 아무리 인터넷이라고 해도 그 물량공세가 만들어내는 대세를 역전시킬 수 없다. 사이버공간은 그 자체로 독립적, 고립적 존재가 아니다. 사이버공간은 현실관계의 결과로 성립되는 것이며, 그렇게 성립된 사이버공간이 자율적인 능력을 갖춘다면 현실의 잘못된 관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의 상호작용성은 선거라는 첨예한 경쟁과정에서 더욱 강렬하게 작동된다.

대부분의 선거전문가들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젊은 유권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판단한다. 또한 들인 노력에 비해 투표장으로 나오는 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가늠하곤 한다. 기존의 데이터를 놓고 보면 거의 포기하는 경향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변화한 시대를 추동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숨은 열정을 어떻게 끌어낼 것이냐는 현실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다. 앞뒤를 재고 행동하기보다 사회를 올바로 이끌고 가려는 노력이 앞선다면, 그리고 그 노력이 인터넷을 통해서 구현된다면, 현실이라는 진흙탕에 후보자 스스로 자신을 내던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행위는 인터넷의 속성과 융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텍스트와 비주얼의 조화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감각적인 흘김이 성립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판단을 한다. 그리고 주위의 비주얼한 소스를 시각적으로 대입시키며 조화로운 판단을 한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다. 선거운동에서는 정책을 얼마만큼 가상현실적으로 구현하여 유권자로 하여금 확고부동한 지지나 반대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느냐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컨텐츠로 구현되는 것이다. 메시지와 정보의 흐름으로 구성된 인터넷 선거운동은 유권자들의 합리성을 복원할 것이며, 이는 상호연관된 두 공간의 순기능적 관계작용에서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의 입장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은 현실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정당에 의해 동원당하기 전에 내가 정당이나 후보자를 동원해 내겠다는 적극성이 발현되어야 한다. 선거운동용 이메일을 받으면 자신의 관심사항을 적어서 꼭 응답메일을 보내고, 그에 대한 답신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게시판에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적고, 이메일이나 참여할 수 있는 모든 도구들을 다 활용해서 후보자와의 대화를 요구해야 한다. 인터넷 이면의 현실공간에 매달려 선거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후보자를 인터넷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메시지를, 정보를 전송하는 것이다. 그리고 응답받은 메일은 첨부해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다시 전송해야 한다. 인터넷을 메시지와 정보의 공간으로 가득채워야 한다. 이때 비방성 메일은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그것은 인터넷을 비합리적이고 오염된 네티즌들이 활개치는 장으로 쉽사리 매도하게 만들 계기를 대중매체에게 제공할 수 있다. 비방메일을 받으면 정중하게 답변하라. 정신차리라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우리들의 사명 중 하나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박동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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