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1275

‘자식 있어도 십원 한푼 안 줘’

기초생활보장법 사각지대 놓인 독거노인들


어쩌다 재활용 종이 수거 일을 놓친 날. 현관문 옆에는 종이뭉치가 쌓인다. 며칠 전 먹은 피자 박스, 일주일치 신문, 광고 전단지 등. 아무리 재활용 가능한 종이라지만 쓰레기는 쓰레기다. 그래서 구박덩이처럼 쌓여 있는 종이뭉치를 대문 밖에다 얼른 내놓는다. 오늘 이 종이뭉치가 김양금 할머니(70세)의 한끼 식사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32년도생이니깐 벌써 일흔 살이지. 나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종이 주워 그거 팔아 먹고사는 노인네야. 종이 팔면 한 달에 5만 원 정도 나와. 한 달에 어림잡아 20만 원 정도는 있어야 먹고살아. 입에 풀칠하는 데만 8만 원 들고, 보일러 기름값 5만 원, 약값, 전기세, 수돗세, 전화요금…. 왜 그렇게 내는 게 많은지 원. 취로사업이라도 나가면 빠듯하게나마 생활비는 맞출 수 있지만, 그것도 워낙 경쟁률이 치열해서 나 같은 늙은이는.…”

칠십 평생 고생이 그에게 남긴 것은 신경통과 천식뿐이다. 지금은 진통제가 없으면 하루를 견디기 힘들 정도. 그리고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모른다. 한 달에 10여만 원도 못 버는 처지에 병원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약국에서 사온 진통제 한 알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20년 전이야. 자궁의 혹을 떼는 수술을 했어. 그 때 의사 선생님이 석 달 동안 쉬라고 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신발공장에 일하러 나갔지. 의사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봐. 몇 년 전부터 몸뚱어리가 말을 통 안 들어. 얼마나 아픈지 몰라. 그놈의 돈이 웬수지 뭐.”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89번지. 윤철수 씨(50세)는 이곳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아직 환갑도 안 되었다는 윤씨의 얼굴에는 고생하며 보낸 인생살이의 흔적이 역력하다. 깊이 패인 주름이며 힘없는 목소리만으로 일흔 살은 훨씬 넘어 보였다. 윤씨는 보일러 기름 살 돈이 없어 냉방에서 두꺼운 이불 한 채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원래는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힘이 달려서 일을 못해요. 내가 이러고 사니까 마누라는 도망가버렸고요. 말썽만 피우는 아들이 하나 있기는 한데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요. 가끔씩 집에 들어오면 돈 달라고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갑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자식이에요.”

몇 년 전 윤씨는 정기검진을 받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는 폐가 안 좋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아파도 절대 병원에 가지 않는다. 수술비도 없는데 혹시 수술이라도 받으라고 할까 겁이 나서다. 그렇다고 평생 의지하며 살아온 술과 담배를 끊을 자신도 없다.

“자식 있어도 십원 한푼 안 줘”

김양금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정한 수급자가 아니다. 몇 차례 동사무소에 찾아가 이야기했지만 부양능력이 있는 아들이 있기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 할머니는 아무런 소득도 없고 아들 또한 할머니를 전혀 부양하고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02년 1월 발표한 사업계획에 따르면 김 할머니가 수급자가 되었을 경우, 최고 30만4000원의 생계비와 주거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영구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자격도 주어진다.

“나 같은 사람을 생활보호대상자로 만들어 줘야지. 아들이 있으면 뭐해. 명절 때나 돼야 얼굴 한번 보는 아들인데. 자기 자식 키우며 살기 바쁘다고 나한테는 십원 한푼 안 보태 주는데 말이야. 이렇게 아프다가 어느 날 밤 아무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르지. 병원 한번 못 가보고 말이야.”

윤씨 역시 수급권자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윤씨는 주변으로부터 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수급자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아예 동사무소에 가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제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데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 대상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이 몇 명 있어요. 저같이 몸이 불편해서 일을 할 수 없어도 자식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요. 이렇게 추운 겨울날 따뜻한 방안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언제 편하게 살아본 적이 있어야지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계보장 못 받는 건 부당

지난 1월 15일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 시행 1년 평가’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 및 재산기준, 부양의무자 기준 등에 따라 수급자를 정하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실제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대상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소득 자영업자·일용직 근로자 등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간혹 부정 수급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발표는 전국 50개 지역 2008명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및 탈락자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 자료에 따르면, 수급 신청을 냈다가 심사에서 탈락한 가구의 77.3%는 소득 면에서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23.9%는 최저생계비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탈락 사유를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 미달이 45.3%로 가장 많았고, 그 밖에 소득기준 미달 17.1%, 재산기준 미달 13.2% 등으로 나타났다. 또 탈락자의 63%는 자신들이 탈락된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특히 탈락 사유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인 경우에는 73.8%가 부당하다고 응답했다.다시 말해 저소득층에 대한 종합적 빈곤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현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 ‘최저생계보장과 복지기본권확보를 위한 공동 캠페인단’에서 주최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1년의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허선 교수(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는 이 법의 개선방안을 제안하였다.

첫째, 부양의무자 기준을 보면 자녀간의 부양 의무만 두고, 손자녀와 형제간, 부모와 며느리(사위) 간에는 부양의무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관계가 단절된 경우에는 공무원이 반드시 사실확인을 해서 보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부양 능력을 판별하는 소득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현재 최저생계비의 120%로 되어 있는 부양 능력 소득기준을 130%로 상향조정해야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셋째, 농어촌의 재산기준은 현 수준으로 두되 대도시의 재산 기준은 높여야 한다. 넷째,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촌의 소득기준을 차등화해야 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문혜진 부장은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재산기준, 소득평가액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면서 “실제 부양능력이 있는 자녀가 있다고 해도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보내지 않는 경우나 사망한 자녀의 배우자(예를 들어 사위)가 부양 의무자로 되어 있어 실제로 부양하지 않는 경우 등에는 수급자로 선정,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선영(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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