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2769

’10년 경력에 8개월 스페어면 개인택시 없다’

인천시 상대로 싸우는 한 택시 기사의 법정투쟁기


택시기사 최윤복 씨(51세, 인천시 계양구). 경력 10년차인 그는 스페어 택시기사다. 스페어 택시기사란 정식등록이 안된 택시 운전사를 말한다. 현재 그는 10년 넘게 다니던 택시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서 스페어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평생 소원은 본인이름으로 등록된 개인택시 1대를 갖는 것이었다. 이제 곧 최씨는 어엿한 개인택시 사업자가 된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도 잠시.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보면 캄캄한 터널을 지나온 듯한 느낌이라고 털어놓는다. 개인택시 면허증을 따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인천시와 법원을 오가며 법정싸움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작은 권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한 택시기사의 법정 투쟁기를 들어보자.

“99년 5월이었어요. 1년 동안 기다리고 있던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 대상자 모집공고’가 나왔죠. 99년 모집공고에 나온 개인택시 면허기준 1순위는 동일한 택시회사에서 10년 이상 근속중이고 최근 6년 간 무사고 운전 경력 5년 이상인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죠. 신청서를 내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다가 운전경력증명서가 필요해서 회사에 요청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스페어 기사로 일했던 8개월치를 경력에서 빼고 9년10개월짜리 경력증명서를 내주는 겁니다.”

불법으로 ‘스페어’ 고용한 후 경력에선 누락

스페어 기사 경력 8개월. 최씨의 원래 입사일은 88년 11월 27일인데 회사측에서 업무상 착오로 89년 8월 1일이라고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회사측이 가지고 있던 ‘월별 운전경력 사실확인서’에도 최씨의 경력은 9년 10개월로 기록되어 있었다. 입사일이 정확하게 기록된 다른 입사동기들은 10년 근속 경력증명서를 발급 받았는데 최씨 혼자만 빠진 것이었다. 그는 억울했다. 회사에서 가장 성실한 운전사로 뽑혀 여러 차례 표창도 받았고 운전사가 모자랄 때는 남들이 싫어하는 시간외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던 최씨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절대 스페어 기사 경력을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최씨의 스페어 기사 경력을 인정해 줄 경우 회사가 불법으로 스페어 기사를 고용해 운영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의 태도가 너무나 야속했다. 부려먹을 때는 실컷 부려먹고 이제 와서 택시기사의 억울한 사정을 나몰라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기사들에게 개인택시 사업자 자격증은 일종의 퇴직금 같은 거예요. 5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도 있어요. 현재 개인택시 번호 값만 해도 6100만 원이 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택시기사들은 그거 하나 바라보고 일하는 거죠. 그런데 회사측에서는 기사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네 편의대로 기사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1년 더 기다려 개인택시 사업자 자격증을 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면 다른 운전기사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개인택시 면허증을 따기 전에 회사에서 쫓겨날까봐 회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기사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저는 제 운전경력이 10년이 넘는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몇 가지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찾아낸 자료는 두 건의 교통사고 사실확인원입니다. 89년 2월 21일 음주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어요. 89년 5월 4일에도 무면허 운전자 차량과 접촉사고가 있었구요. 게다가 88년 11월 25일 가입한 노동조합원 신상카드도 찾아냈습니다. 이 카드에는 88년 11월 25일이 제 입사년월일이라고 적혀 있어요. 99년 노조에서 만든 조합원 현황표에도 제 이름이 1번으로 나와 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10년 근속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표까지 썼습니다. 퇴직을 할 경우 퇴직금 명세서에 스페어 운전경력이 기록되기 때문이죠. 회사측에서 처음부터 원칙대로만 했다면 이렇게 퇴직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사법부도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 교부하라’ 판결

그가 모은 자료를 가지고 인천시에 이의신청을 했다. 하지만 최씨의 이의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에 행정심판 청구도 해봤지만 그것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99년 11월 인천시를 대상으로 ‘개인택시 운송사업면허제외처분취소’소송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변호사 선임료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릴 거라면서 최씨를 말렸다. 몇몇 동료들은 최씨가 옳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씨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모아둔 비자금을 털어 소송을 준비했다. 그 결과 사법부는 최씨의 편이 되어 주었다. 2000년 12월 19일 법원은 최씨의 증거를 인정해 인천시가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 제외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천시는 항소했지만 2001년 8월 30일 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했다. 최씨는 대법원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로서는 드디어 개인택시 사업자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기쁘지만 다른 택시기사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것도 큰 보람이다.

그 동안의 법정 투쟁을 계속 지켜봤던 회사 동료 임휘순(50) 씨는 최씨의 승리를 이렇게 평가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까지 인천시에서 이런 선례가 없었거든요. 사실 택시회사나 인천시에서는 택시기사가 대법원까지 가면서 끝까지 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회사가 아무리 부당한 일을 해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최씨의 이번 승소는 택시기사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사건이에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싸워줘서 동료들이 힘을 많이 얻었어요.”

최씨 또한 이번 승리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 옳은 일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앞으로 그는 동료들과 함께 개인택시운송사업 면허 대상자 기준에서 10년 근속기간 조항 폐지를 위한 소송을 벌일 생각이라고 한다.

“개인택시 사업자 면허기준 1순위는 동일 택시회사에서 10년 이상 근속중인 자입니다. 동일 회사라는 전제 조건 때문에 일하던 회사에서 쫓겨나서 다른 회사로 가면 다시 근속기간이 시작됩니다. 사실 오래 일하다 보면 회사 비리도 많이 알게 되고 불만 사항도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근무일수가 오래 될수록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택시기사들은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몇 년만 참고 나가면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거든요. 회사에서도 그걸 악용하고 있습니다. 10년 근속이라는 족쇄로 기사들을 잡아 놓고 있는 거죠. 아마 근속제도가 폐지되면 택시회사 내 노조도 활성화되고 근로 조건도 많이 향상될 겁니다.”

최씨는 이번 소송을 통해 인천시와 택시 회사에 “택시 기사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는 경종을 울려 줬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는 더 이상 택시기사들이 택시회사를 위한 ‘스페어(spare)’인생을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스페어’ 인생의 청산을 선언한 최씨의 무한 질주를 기대한다.

박정선영(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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