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2월 2002-02-01   797

제멋대로 하는 “황제경영”시대 끝났다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승소 의미와 파장


지난해 12월 수원지법은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의 기업전횡을 고발한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이 소송은 재벌 산하 상장기업들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상실한 채 총수의 입맛대로 경영의 들러리가 됐던 관행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소송을 지난 3년 간 진행했던 담당 변호사로부터 이 소송의 의미와 사회적 파장에 대해 들어보자.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27일 수원지법은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들에 대해 총 977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이는 비록 제1심 판결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경영진의 경영상 주의의무와 관련해 실질적인 기준을 제시한 사실상 최초의 판결로 보여지기 때문에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우리나라 재벌 산하 주요 상장 대기업들은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독립성을 상실한 채 오너인 총수의 지시에 종속된 경영을 해왔다. 이번 판결은 오너의 지시에 따랐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재벌구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의 주요내용과 향후 전망을 살펴본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회사자금을 뇌물로 바친 행위

법원은 “피고 이○○가 1988년 3월경부터 1992년 8월경까지 삼성전자로부터 조성된 자금 75억 원을 교부받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공여한 행위는 형법상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이고, 이와 같이 위 피고가 위법한 행위를 함으로써 삼성전자로 하여금 75억 원의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하여 그에 상당한 손해를 입게 하였다.

기업활동을 함에 있어서도 법질서의 범위 내에서 행하여야 하므로 이를 벗어나서 행위한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게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뇌물공여와 같은 형법상의 범죄행위를 기업활동의 수단으로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고, 이를 불가피한 행위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영판단으로서 보호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뇌물제공에 대해서는 몇 년 전 일본의 주주대표소송 하급심 판결에서도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일본 법원은 건설회사의 이사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공사를 수주한 사안에서, 뇌물공여로 인한 손실과 공사를 수주하여 얻은 이익을 상계하면 오히려 회사에 이익이 발생했다는 피고 이사의 주장에 대해, 불법경영에 따른 이익은 뇌물공여로 인한 손실과 상계할 수 없다며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기업은 이윤추구의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며 법질서의 테두리 내에서의 이윤추구의 자유임을 확인한 것이다.

삼성종합화학 주식, 계열사에 낮은 가격으로 매각

법원은 “삼성전자가 1988년 7월 23일부터 1994년 4월 22일까지 10여 회에 걸쳐 삼성종합화학(주)의 주식 2175만여 주를 액면가인 1만 원에 취득하여 왔음에도, 1994년 4월 22일부터 채 8개월이 경과하기 전인 1994년 12월 17일, 당시 시행되던 상속세법 시행령이 규정하는 비상장법인 주식의 평가방법에 의하여 산정된 2600원에, 소유하던 삼성종합화학(주) 주식의 약 92%에 해당하는 2000만 주를 처분하였는 바, 삼성종합화학(주)의 1주당 주식가치가 위 처분 당시 보수적인 평가방법이라 할 수 있는 삼성종합화학의 순자산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2600원을 훨씬 상회하는 5733원에 이르고 있었고, 종전 취득가액에 비하여 그 주식가치가 1/4 수준으로 감소되었다고 볼 만한 별다른 사정도 없으며(오히려 1994년 4월 22일에 비하여 삼성종합화학의 주요 재무상황이 모두 개선되었다), 1993년 6월경 2600원보다 훨씬 비싼 6600원에 거래된 실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의 이사들이 법인에게 이익이 되는 처분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법규에 근거를 둔 세액만을 징수할 수 있는 조세징수권자의 입장에서 평가한 가액을 근거로, 불과 1시간 동안의 토론 끝에, 일시에 삼성종합화학에 대한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를 양도하는 결과를 갖는 2000만 주라는 많은 주식을, 종전 취득가액의 1/4 가액에 처분하기로 결의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이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이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하였다 할 것이다. 매각결의를 한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은 합리적인 자료를 토대로 충분한 검토를 한 후 매각결의에 찬성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결과 경영판단으로서 보호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회사라고 할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하더라도 10% 남짓한 지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지분은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소액주주가 가지고 있다. 다만 이건희 회장으로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삼성계열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유·무형의 이익을 얻고 있는 이건희 회장에게는 삼성전자로부터 다른 삼성계열사로 부가 유출되더라도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소액주주로서는 부가 유출되는 만큼 지분권가치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이 같은 부당내부거래는 소액주주의 이익을 해치고 지배주주의 이익을 도모하는 거래로 주주평등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주식회사제도에서 용납될 수 없는 거래이다.

이 사건의 경우 삼성전자는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지분 구조로 보자면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는 삼성종합화학 주식은 삼성전자의 주주들이 지분 이익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 해당한다. 만약 삼성전자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현대종합화학에 처분한다면 삼성전자는 삼성종합화학의 자산가치뿐 아니라 영업권 등 무형의 가치와 장래 수익성 및 경영권 양도에 따른 프리미엄 등을 포함해 가장 비싼 가격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이처럼 헐값에 처분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입장에서 볼 때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삼성전자가 보유하건, 삼성건설 또는 삼성항공이 보유하건 자신이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부도난 이천전기를 인수한 까닭

법원은 “삼성전자가 이천전기(주)를 인수하기 직전의 이천전기(주)의 비정상적인 재무상황에 비추어 이천전기의 인수에 따른 위험성의 정도가 통상적인 범위를 이미 훨씬 넘어서고 있는 사정이었으므로, 마땅히 1997년 3월 14일 인수결의에 참석한 삼성전자의 이사들은 이천전기의 재무구조, 이천전기를 인수하는 것이 신규업체를 설립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는지 그에 대한 근거, 삼성전자가 이천전기를 인수하여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부담하여야 할 투자비용, 그로 인하여 삼성전자가 장래 얻게 될 예상수익, 인수에 따라 예상되는 위험성의 정도 등에 관하여 보고받고, 필요한 경우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여 검토하는 등 이천전기의 인수에 따른 위험성의 정도를 면밀히 검토하였어야 함에도, 이사회 개최 전은 물론 이사회 당일에도 참석 이사들은 그와 같은 점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에 기하여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한 검토를 하지 아니한 채, 중전사업 인수의 필요성과 추진방법에 관하여만 기재된 자료를 참조하고 1시간 만에 이천전기(주)의 인수를 결의하였는바, 따라서 인수결의에 참석한 이사들은 삼성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충분한 정보에 기하여 합리적인 통찰력을 다하여 적절한 판단을 하였다고는 도저히 보여지지 아니하므로(따라서 위 인수결의는 경영판단으로서 보호될 수도 없다.) 이사로서의 임무를 해태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법원이 경영자의 경영판단을 대신했다고 오해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위 사안에서 법원은 이사들이 충분한 정보를 수집해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은 과정상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다. 통상 이사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경영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이를 기초로 판단해야 할 주의의무를 안고 있는데 이사들이 이를 어긴 경우에는 경영판단의 법칙에 의해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천전기는 원래 1993년 삼성전관이 38%의 지분을 인수한 이래 삼성중공업이 사장, 이사, 감사, 부장급 직원 등을 파견하여 경영에 참여해온 사실상의 삼성그룹 계열회사였다. 삼성전자가 이천전기를 인수할 당시 이천전기는 재무적으로 보면 사실상 이미 부도상태였다. 부도상태에 있는 회사를 부채까지 떠안고 인수하려 한다면 누구나 신중한 검토와 고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당시 이천전기를 인수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이천전기가 부도나는 경우 모회사로서 적색거래처로 지정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천전기의 부채문제를 검토하고 실사도 해야 했다. 또한 부도상태의 이천전기를 인수하지 않고 신규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대안도 검토했어야 한다. 나아가 삼성전자가 이천전기를 인수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투자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므로 투자의 수익성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고들은 이와 같은 내용을 검토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이천전기 인수결정이 삼성전자가 아닌 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내려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이사들이 경영상 의사결정을 할 때 충분한 정보에 기초해야 한다는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법원은 피고들을 경영판단의 법칙에 의해 보호하지 않은 것이다.

부당내부거래·선단식 경영·뇌물의 부패고리 끊을 것

이번 판결은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최대의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간판 기업의 경영진을 상대로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들에게 미칠 파장도 크다. 주식회사의 경영에서 경영진의 충실의무와 주의의무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이 판결이 시금석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판결은 이사회의 심의와 토의를 강화함으로써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재판부가 이사들의 책임을 물은 가장 큰 근거는 이사회가 그룹의 방침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형식적 역할만 수행했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각 기업의 이사와 이사회는 보다 신중하고 책임있게 경영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생겼다. 특히 이번 사례는 이사회가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주주들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은 이사로서의 충실의무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이끄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두번째로, 이번 판결은 그룹 경영에서 발생하는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나 선단식 경영 행태를 바로잡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문제가 된 이천전기 인수, 삼성종합화학 주식의 헐값 매도는 삼성전자라는 회사 차원에서 이루어진 경영판단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을 삼성전자 이사회가 그대로 수용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룹 오너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는 선단식 경영방식이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그룹차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기업차원의 이익을 고려한 경영형태와 이사회 운영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번째로, 불법정치자금 제공이나 뇌물 제공과 같은 부패구조 타파에도 큰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경영인들은 회사 자금으로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줄 경우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금전적 배상책임까지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경영인들은 정치인이나 관료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강력한 명분을 갖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김석연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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