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1317

주사파는 극우파와 닮았다

주사파는 극우파와 닮았다


진중권 씨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사회의 압도적 지배이데올로기인 ‘극우 보수주의’의 천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유학생 시절이던 1998년 ‘극우 파시스트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 펴냄)로 단박에 대중의 관심권에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왕성한 글쓰기로 극우주의와 ‘전쟁’의 최전선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대표적 논객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지금 ‘조독마’(인터넷 『조선일보』 독자마당)에서 ‘밤의 주필’로 통한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부터 민주노동당 인터넷 게시판에서 ‘엔엘 주사파’(민족해방 주체사상파)와 쉬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지금껏 단 한번도 제대로 된 공개논쟁이 없었던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전인미답의 신천지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진보진영이 공개적 언급을 애써 피해온 ‘엔엘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일까. 3월 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철학마당 느티나무에서 두 시간 남짓 경쾌한 리듬을 타고 폭포수 쏟아지듯 하는 그의 말을 들었다.

인터뷰는 가볍게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 100회 특집에 출연한 고등학생들이 꼽은 ‘존경하는 사람’에 그가 든 것에 대해 소감을 물었다. 단답형 답변이 돌아왔다. “논술학원 덕분이죠 뭐.” 그리곤 끝이다. 잠시 침묵.

그의 이름 뒤엔 자유기고가, 문화비평가, 소장철학자,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등 정말 많은 직함(?)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 직업을 뭐라고 생각할까.

“없죠 뭐. 백수예요. 문화평론가 시사평론가 같은 게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국세청 직업분류표에 없거든요. 자유기고가는 분류표에 있죠. 난 중립적 객관적인 자유기고가로 불러달라고 하는데, 언론매체 같은 데서는 그걸 쓰지 않으려고 하더라구요. 권위가 없어 보이나 봐요. 한국사회엔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직함에 대한 집착이 있는데 그게 짜증나요.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데 강사는 돈을 많이 주지 않잖아요. 세 시간 강의하면 7만5000원 주더라구요. 그걸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죠.”

백수? 그럼 그는 어떻게 먹고 살까? 돈을 얼마나 벌까?

“그냥 봉급쟁이들보다 조금 더 번다”며 빙그레 웃는다.

그는 새벽 4∼6시 어름에 잠자리에 들어 낮 12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김포에서 어머니와 살며 외출은 한 주에 두세 번 정도만 한다고 했다. 인터넷 세계의 논객답게 그는 컴퓨터를 하루종일 켜놓는다고 했다. 그가 요즘 자신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아붓는 곳은 어디일까.

“안티조선은 어느 정도 됐어요. 요즘은 대선이라서…, 당 문제가 중요하죠. 진보정당한테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대학사회 안에서 진보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당이 당인지 운동조직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민주노동당은 그냥 노조운동 지원단체 구실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당적 실천을 해야죠. 민중들에게 믿음직한. 당내 직접민주주의, 당적 실천, 그런 문제를 깨우쳐 주고 싶어요. 시민을 봐야 해요.”

그가 말하는 당은 민주노동당이다. 그리고 그는 그 당에 한 달에 당비로 2만 원을 내는 ‘평당원’이다. 그는 요즈음 이른바 ‘엔엘 문제’, 즉 당 지도부의 전국연합, 한총련 등과의 통합 작업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민주노동당 인터넷 게시판엔 이와 관련한 격렬한 논쟁이 몇 달째 진행중이다.

“전국연합, 한총련 같은 한줌도 되지 않는 시대착오적 세력이 민주노동당을 먹게 할 수는 없죠. 정리하는데 한 3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엔엘은 진보도 아니다

그는 왜 엔엘을 문제삼는 것일까? 먼저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어떻게 보는지부터 물었다. 해방 이후 한국 진보진영, 특히 통일운동진영의 오랜 고민거리가 북한과의 관계설정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주 극악한 파쇼체제죠. 최초에 가졌던 긍정성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어차피 화물열차 정권이었잖아요. 소련이 들어와서 세워준. 김일성은 유고의 티토, 중국의 마오쩌둥과 달라요. 북한은 스탈린 체제 가운데 가장 극악한 체제예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거기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이에요. 그 사람들 ‘자주’ 얘기 많이 하는데 원조 끊어지자마자 어떻게 됐는지 잘 알잖아요. 자주는 고립주의와 다른 거예요.”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현 정권에서 하고 있는 남북대화말고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흡수통일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우리가 능력이 안 되죠. 미국식으로 영변 폭격하는 것은 최악이고. 남는 것은 분단 고착화인데, 분단에 따른 인적·물적자원 낭비가 너무 심하잖아요. 그러니 햇볕정책밖에 없다고 봐요. 문제는 외교적 입장과 대북관은 다르다는 거예요. 얼마든지 북한 정권에 비판적이면서도 외교적으로는 우호적일 수 있어요. 재밌는 것은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는 게 주사파와 극우파의 공통점이에요. 주사파는 외교적으로 북한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어야 한다고 하고, 극우파는 북한 정권이 극악하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도 우호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잖아요. 똑같아요. 쌍생이죠.”

그는 『말』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엔엘은 진보도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럼 한국사회에서 엔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사람들 아직도 1930년대를 살고 있어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죠. 남는 부분은 한미관계 불평등과 주한미군 문제 같은 건데, 미군문제는 미군이 나가든지 지위변동의 문제죠. 또 반전 평화 같은 긍정적인 게 있죠. 그걸 합리적으로 재구축해야죠. 그러면 엔엘의 현대화가 이뤄질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걸 원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통일전선 해서 연북통일 하자는 기본전략이 있으니까. 한마디로 북조선 외교노선을 정당화시켜 주는 수준으로 운동을 전락시킨 거죠. 운동은 언제나 정권이나 권력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하는 것인데. 전 오히려 엔엘 인성구조의 왜곡에 더 관심이 많아요. 첫째 무지 무식해요. 책을 읽지 않고 논증을 할 때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해요. 둘째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요. 한총련을 보면 나타나는 게 적과 아의 이분법, 대의를 위해선 어떤 수단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견을 제기하면 바로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버리는데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윤리가 없어요. 세번째는 너무 촌스러워요. 제일 짜증나는 게 이거예요. 한마디로 엔엘은 역사의 반동이에요. 지성과 도덕성과 미감에 있어서 그 사람들의 인성 자체가 후지다는 거죠.”

21세기에 193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무슨 소린가? “이 사람들은 해방적 민족주의의 레토릭을 구사하거든요. 1930년대에 김일성이 조금 싸운 것 가지고. 그런데 그게 이젠 국가주의화했거든요. 수령-당-인민이 일체라면서 계급대립이나 지배관계를 지워버리고 사람들을 통합하려 하죠. 그거 지배이데올로기예요. 그런데 해방적 민족주의는 피지배 이데올로기죠. 지금 엔엘은 국가주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마치 해방적 민족주의처럼 내세우고 있는 것이에요. 정통성 문제도 그래요. 엔엘은 북한의 정통성이 역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아니거든요. 정통성이라는 것은 당대 민중의 이해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느냐,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4·19, 6월 항쟁 등을 거치며 정권을 민주화해 왔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너희는 친일파 미제의 앞잡이다, 이런 식이에요. 옛날 것만 먹고 사는 거죠. 일종의 문법적 착각인데, 엔엘한테 그건 상당부분 의도적 착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어요.”

나는 사회주의자다

다시 남북관계로 돌아와 평화와 통일의 관계설정에 대해 물었다. “일단은 평화구축부터 해야죠. 통일은 먼 과제죠. 통일은 어차피 체제수렴, 즉 흡수통일인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체제가 있느냐. 그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대충 사민주의 수준에서 수렴을 하면 좋겠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죠.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훗날로 미뤄둬도 된다 이거죠. 일단은 분단의 적대적 성격을 극복하는 것, 평화와 군축 이런 게 가장 중요해요. 이것만 해도 우리세대에 죽을 때까지 해도 벅찬 과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상황만 봐서는.”

그는 지난해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 글에서 “남의 일각에 반통일 세력이 있다면, 북쪽에는 반통일적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세력’과 ‘경향’, 어떻게 다른 것일까. “북한엔 민간과 정부의 구별이 없어요. 그러니 민간교류라는 게 사실은 웃기는 거죠. 민간도 없는데. 그래서 세력이 아니라 경향이라고 한 거예요. 전반적인 경향은 북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체제유지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남북교류가 본격화하면 저(북)쪽에서는 체제의 위기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오로지 레토릭만 남는 거죠. 반면 남한에는 통일을 바라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이 갈라지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통일을 바라겠죠. 흡수통일이나, 북조선의 인민을 양질의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그런 통일이 아니라. 남한의 대표적 반통일 세력으론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꼽을 수 있죠. 자본가들은 통일을 바라죠. 경의선 열리면 유럽까지 육로로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데 통일을 왜 바라지 않겠어요. 문제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자기 버전으로 통일을 바란다는 거죠.”

그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적 좌파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자유주의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법이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자유주의란 어떤 이념하고도 결합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란 다수의 지배인데 문제는 소수의 권리옹호죠. 개인의 권리와 소수의 권리존중은 누구나 가져야 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이죠. 때문에 자유주의란 이제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상식이 된 거죠.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을 때만 해도 새로운 얘기였지만, 이제는 상식이에요. 그래서 언급할 가치가 없는. 좌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제정책의 문제죠. 평등 얘기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사회정의의 문제가 있잖아요. 약자에 대한 보호, 사회적 안전망, 분배정의, 이걸 내가 얘기하는데 이건 분명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 그 점에서 나는 좌파라고 생각해요.”

그는 “상식의 존중과 합리적 의사소통 공간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게 민주주의의 핵심이에요. 진보 대 보수의 대립구도, 사상의 자유, 소수자 권리 존중이 시급하죠. 주사파 문제라는 것도 국가보안법만 없어지면 주사파는 사라지는 거죠, 다미선교회가 되는 거죠. 그걸 막으려는 것은 정치학에 불과해요. 극우파는 주사파가 필요하고 주사파는 극우파가 필요하고, 상대의 악을 통해 자신의 선을 주장하는, 선도 아니면서….”

좌파의 전망

그가 광대의 몸짓으로 문제삼고 있는 것이 한국사회의 극우 헤게모니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조선일보』와 이인화, 김용갑, 조갑제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박정희식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공병호와 자유기업센터로 상징되는 돈 내고 돈 먹기식 자유지상주의, 이문열로 표상하는 조선 선조연간의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되살아난 듯한 문화적 보수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주의적 극우 헤게모니 아래서는 좌파적인 평등의 가치가 억압받죠. 극우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정치공학엔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차별주의가 있어요. 사람들이 평등에 대한 욕구를 터트릴 수 있는 유일한 데가 병역문제예요. 그거 가지고는 빨갱이 소리를 듣지 않으니까. 사실 남이야 군대에 가든 말든 그게 자기한테 무슨 손해가 됩니까. 반미라는 얘기도 못했잖아요. 그런데 ‘김동성 씨 사건’이 보여주듯 스포츠영역에서 그게 터져나왔죠. 전 그걸 억압된 대중들의 정치적 진보성이 이런 기회를 통해 정말 구차하게 나타난 걸로 봐요. 여기에 비어있는 부분이 뭐냐, 좌파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당장이라도 15%는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장기적으로는 50%까지도 가능할 것이고. 갈 길이 먼데, 지금 좌파가 엔엘 따위한테 발목이 잡혀 있는 거죠. 어쨌거나 국가주의는 점차 약화되고 있어요. 『조선일보』가 왕따 돼가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역사의 퇴물이죠, 이들한텐 전망이 없어요. 문제는 자유지상주의라고 봐요. 국가주의는 사법적 권력, 강제력, 물리력을 동원해 지배하잖아요. 그건 슬슬 지나가고 이제는 자발적 지배, 예컨대 요즘 대학생들 토플공부하고 학점 잘 따고, 그 사람들 그거 절대로 강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자발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 이제는 거기에 대항해서 싸우는 게 중요하죠.”

그는 “한국사회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면 좋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반증이 끝난 사회주의의 국유화 강령을 지금도 고집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에 불과해요.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적 관점, 즉 평등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판단하는 거라고 봐요. 굳이 사회주의적 세상을 상정해 놓고 거기에 뜯어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현재 사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봐요. 예컨대 독일에서는 저녁 7시만 되면 가게가 문을 닫아요. 노동자들도 가정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킬 거예요. 부르주아 혁명. 돈벌게 해달라고. 인성구조가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스웨덴 같으면 200만 원 벌어 120만 원 세금으로 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그걸 하려고 하겠어요. 문제를 이기적으로 해결하려고만 하지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교육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교육이 개판이에요. 사실 사람들이 쓰는 돈의 반만 사회적 해결방식에 써도 지금보다 훨씬 나을 텐데. 너희들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냐, 너 자신을 위해 태어났냐, 이런 얘기를 자꾸 해야 해요. 사람들한테 다른 삶의 비전을 보여줘야 해요. 그게 바로 좌파의 전망이에요.”

‘학’자의 몸 속엔 수도승과 예술가와 과학자가 통일된다

그는 무엇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정신세계를 가꿔왔을까, 궁금했다. “난 글쟁이니까 이론적으로 말하면 비트겐슈타인과 발터 베냐민, 칼 막스 세 사람의 영향을 받았죠. 그리고 역사적으론 세계관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에 광주가 있었으니까 평생 잊을 수 없죠. 우리는 광주의 세대, 광주의 아이들, 바리케이트의 아이들이죠. 광주는 이제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의미는 우리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주체형성의 과정, 민주의식이라고 봐요.”

그는 이태 전 『한겨레』에 실린 자기소개 글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내 인식의 기조이고, 베냐민은 영감의 원천”이라고 적어놓았다. 설명을 들어보자. “제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 방법을 이데올로기 비판에 사용하고 있어요. 또 그의 언어철학적 입장엔 ‘사적 언어는 불가능하다’는 게 있거든요. 언어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인간관의 문제거든요.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적 존재라는 거죠. 그게 바로 좌파적 입장이에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개인을 상정하고, 이 개인이 언어도 만들어내고, 계약에 의해 국가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비판이죠. 그러니까 정치 철학도 되는 거죠. 베냐민은 글쓰기 형식의 문제인데, 영감을 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인용만 가지고 책을 쓰자 그랬는데, 알고 보니 베냐민이 했던 소리더라구요. 그 다음에 역사적 데자부(기시효과-처음 보는데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의 경험 같은 것들. 99년에 귀국해 보니, 1930년대 나치가 대두할 때 독일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경악했죠. 이런 체험이 베냐민의 요소죠. 맑스는 자본주의를 보는 기본 관점. 그러니까 세계관과 나의 정치적 태도와 관련돼 있죠.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해부학적 진리. 전 아직도 맑스가 70%는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잖아요. 계급이 있잖아요.”

그는 사람들이 전투적 글쓰기, 게릴라적 글쓰기, 풍자적 글쓰기라고 부르는 특유의 글쓰기 전략에 대해 “광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미쳤을 때, 광대가 당신들 미쳤다 하면, 사람들이 광대를 미친 사람 취급하잖아요. 벌거벗은 임금님이죠. 임금이 벌거벗었는데, 그게 사실인데, 아무도 임금이 벗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는 “교수는 되지 않겠다”면서도 스스로를 ‘학’을 하는 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학을 하는 자는 그 몸 속에 수도승과 예술가와 과학자를 통일한다”고 말했다. “학문이 가치관과 세계관을 다룬다는 점에서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예술가만큼이나 창조적이어야 하며, 과학자처럼 발상은 황당하게, 논증은 엄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끝내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 하라고 부탁했더니, 이런다. “당원 가입 좀 많이 해주세요.”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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