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1755

된장 두 숟갈로 병을 고치다

유기농농사꾼 임락경 시골교회 목사의 건강이야기


강원도 화천군 광덕면 광덕주유소를 지나 우회전하니 좌측에 돌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너른 들판에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크고작은 돌들을 모아 지은 돌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시골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박정희식 새마을표 주황지붕 파란지붕들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전한다.

담벼락 없고 흙내음 그윽한 행복이 가득한 집. 이 집 식구들은 커다란 비닐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마솥에서 방금 쪄낸 고구마와 잘 익은 김장감치를 먹고 있었다. 노오란 빛깔의 작은 고구마. 덩달아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토종 흙돼지, 유기농으로 기른 오리, 꽃사슴들, 장닭과 암탉, 토끼 그리고 풀무학교에 다니는 ‘딸’이 여름에 데려다놓고 아직도 못 데려간 유기농(개이름). 모두 임락경 목사(58세)와 함께 사는 시골교회 가족들이다.

임 목사가 화천에 시골교회를 세우고 장애인들과 살아온 건 벌써 20년이 넘었다. 세 살배기 아이가 엄마에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임 목사에게 들러붙어 얼굴을 비비고 살갗을 맞대는 스물셋의 정신지체장애인 여성은 그가 다섯 살 때부터 데려다 기른 딸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태어나면 제일 먼저 병원에 가요. 그 다음엔 한의원, 그래도 안 되면, 절. 그것도 소용없으면 기도원. 아님 외국으로. 그럼 왜 여기까지 오느냐. 형제간에 장애인이 있으면 애가 집에 친구를 안 데려와요. 청년이 되면 애인이 안 생겨. 결혼하면 파혼을 당해.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 없다 하고 사는 게 속편하지. 우리 집에 온 장애인들 사연이 많아요. 어머니가 기르다 죽어 큰며느리에게 맡겼더니 아들더러 이혼하자 하더래. 아버지 죽고 어머니가 먹고살려니 산업전선에 나가야 돼서 온 애도 있고. 어머니가 노망나 더 이상은 기를 수 없어 온 애도 있지. 노인들은 자녀가 있긴 하지만 혼자 집 지키기 어려우니까 우리와 함께 사는 거고.”

물 두 사발과 된장 한 병

시골교회는 30명 정도의 장애인들이 더불어 사는 미인가 사회복지시설이다. 규모로 볼 때 정부가 충분히 사회복지시설로 인정할만한데, 임 목사는 등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시설로 등록하면 사회복지사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 시골마을에 와서 일할 사회복지사를 구할 수 없어요. 사회복지사는 많은데 시골에 와서 일할 복지사는 없어. 양평도 안 온다는데 화천까지 누가 와. 둘째 여기는 가족이 있는 장애인들이 있어요. 시설에 있으려면 거택보호자라야 되거든. 거택보호자 아닌 사람들은 전부 집으로 가야돼. 그런데 군에서 나라면 믿고 그냥 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싫다고 했어요. 정부 돈도 아껴야지.”

1945년 전북 순창에서 해방동이로 태어난 임 목사는 1958년 유동국민학교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다. 열여섯엔 이현필 선생의 제자가 되고자 무등산 동광원을 찾아갔고, 70년대엔 가톨릭농민회에서 농민운동을 했다. 80년대엔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교육보조활동을 하며 더러 강의도 다녔다.

이런 활동의 한 가운데에서도 임 목사는 언제나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살았다. 의사는 아니지만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을 척척 고치는 걸 보고 주변사람들은 그를 기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20년간 병자들과 함께 살며 겪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뿐이라며 겸손하게 웃는다. 동료 서호 목사의 말이다.

“제 처 막내동서 어머니가 하도 머리가 아파서 수원 A대학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런데 한 달 동안 정밀검사를 해도 병명이 안 나오는 거예요. 결국 뇌수술날짜를 잡았죠. 그런데 임 목사님 오시더니 뇌수술 할 필요 없다면서 퇴원하라는 거예요. 열이 위장으로 올라가서 머리가 아프니 배가 쿨렁쿨렁 할 정도로 냉수 1.5ℓ를 먹으면 괜찮을 거라구요. 정말 그렇게 했더니 체가 내려가더라구요. 그 뒤로 멀쩡히 잘 살아요. 뇌수술 했으면 어쩔 뻔했어, 나 참.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 아내가 허약한 편이에요. 어느 날 아무 것도 못 먹고 드러누워 있다가 병원에 입원했지요. 애들은 울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급하게 목사님께 병원으로 오시라고 그랬는데, 목사님이 직접 만든 유기농 된장 한 병만 달랑 들고 오는 거예요. 식중독 같다면서 된장 두 숟갈에 물 두 사발을 타서 조리로 걸러 그 물을 먹이더라구요. 된장물만 마셔도 식중독 70%가 해결된다면서. 그 뒤로 정말 씻은 듯이 나았어요.”

이뿐 아니다. 1년에 두 번 가량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아야 했던 사람도 사슴피 한 모금으로 2년간 무병토록 했고, 육식을 자주 하며 한달 평균 29일은 체해 있던 사람도 물 두 사발로 치료해줬다. 발병한 지 15년 정도 된 간질도 고치고, 건선피부염(아토피성 피부염)도 첫 번째 자른 녹용을 들통에 넣어 녹용이 우뭇가사리처럼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과 먹이니 뱀이 허물 벗듯 아토피가 없어졌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30명이나 되는 장애인 식구들이 함께 살지만 2001년 한 해 동안 시골교회가 의료비로 지출한 돈은 한푼도 없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아니면 병원 갈 일 없다는 게 시골교회 사람들 생각이다. 병원 안 가고도 음식이 약이 되고 약이 곧 음식이라는 철학이 관통하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서호 목사는 임락경 목사를 기인이라 부르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자급자족 유기농

시골교회 식구들은 20년간 임락경 목사와 함께 살면서 초상을 딱 두번 치렀다. 97세 되신 할머니가 100세를 채우지 못하고 가신 것과 8년간 간질 앓던 사람이 사망한 일이다. 97세 된 할머니의 생일 때는 언제나 돼지를 잡아 마을잔치를 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95세 때 큰잔치 한번 해드릴 걸…, 임 목사는 무척 후회된다고 말했다.

20년간 초상 두 번 치렀다는 건 그만큼 식구들이 건강하다는 얘기다. 직접 만나본 식구들의 피부도 수십만 원짜리 화장품을 바르고 다니는 연예인 얼굴보다 뽀얗고 예뻤다. 여느 사회복지시설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도 없다. 임 목사는 모두 나무와 된장 덕이라고 말한다.

“왜 있잖아. 복지냄새. 여긴 그거 안 나죠. 나무 때문이에요. 맥반석, 숯 등이 정화작용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나무는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우린 유기농 콩으로 직접 된장을 만들어요. 시골집 된장이라고. 이게 약이 되고, 또 음식이기도 하죠. 먹는 걸 제대로 잘만 먹어도 병이 나지 않아요.”

그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은 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시골교회 식구들이 튼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었다. 그들의 점심메뉴를 봐도 쉽게 짐작된다. 된장국, 들깨와 소금으로 간한 콩나물, 들기름으로 군 김, 계란찜, 김장김치, 말린 고추, 멸치, 현미찹쌀밥. 왜 이렇게 들깨를 많이 넣었느냐고 물으니 식용유를 일체 안 먹는단다. 이뿐 아니다. 그들은 감자를 실하게 길러 정농회 전라도 회원들이 기른 고구마와 바꿔먹고, 시골집 된장 판 돈으로 경상도 정농회 회원이 기른 사과 등의 과일과 바꿔 먹는다. 식용유에 튀긴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 오로지 시골교회에서 직접 기른 43가지 과채류와 직접 기른 닭, 오리를 잡아먹는다. 사슴고기도 몇 년에 한번씩은 먹는다. 거의 유기농으로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달리 생길 병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병원 갈 일 없고, 의료비 지출될 일도 없다. 그리고 그들은 없으면 안 먹는다. 우리나라 국민 1/4이 체해 있는데도 계속 먹어 생기는 병이 많단다.

“옛날에는 못 먹어 생긴 병이 많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너무 먹어 생긴 병이 많아요. 체하면 며칠 굶으면 나을 것을, 활명수 먹고, 소화제 먹고…. 쓸 데 없는 일이죠. 조금씩 덜 먹어도 돼요.”그래서일까. 시골교회엔 옛날 병이 다시 나온다. 머릿이, 종기, 눈다래기, 회충. 그런데 큰 병은 없다. “우리 식구들을 잘 봐요. 뚱뚱이도 홀쭉이도 없어요. 정신장애인들은 자칫 너무 많이 먹거나 혹은 너무 안 먹거나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 식구들은 그렇지 않죠. 고루 건강해요.”이 정도로 풍부한 의학지식이 있다면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왜 농사꾼을 고집하는 걸까.

“국민학교 3학년 때 곱하기를 배우다가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까 계산해봤어요. 육십살까지 따지니까 딱 2만 일 남았더라고. 그 날들을 어떻게 사느냐 고민하다 직업 중에 꼭 필요한 일이 뭘까 궁리해봤어요. 그랬더니 농업이 나오더라고. 평생 농사 짓고 살았어요. 군대 3년을 빼고 단 한 해도 씨를 뿌리지 않은 해가 없어요. 그런데 이건 이래요. 전태일이가 노동자 하고 싶어서 노동자로 한 건 아니에요. 그러다 자살한 것도 아니죠. 나도 마찬가지야. 난 죽지 않으려고 농민이 됐거든.”

때밀이와 주차요원

그는 집터와 수맥도 본다. 수맥은 완전 경험으로만 알게 됐다. 물론 이치는 배웠지만 나머지는 홀로 터득했다. 언젠가 일동의 수맥을 봐달라기에 알아봐 준 일이 있다. 온천이 있길래 여기에 온천수가 흐른다고 말했더니 거기에 대형 목욕탕을 지었다. 그게 물 좋기로 유명한 일동하와이와 제일온천이다.

“내 다시는 온천자리 안 봐줘. 동네 여자들은 죄다 때밀이하고, 남정네들은 주차요원 하는 거 꼴보기 싫어서. 동네 남자들이 농사 안 짓고 하루종일 서서 호루라기 불더라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그뿐인가요? 환경파괴 또한 무지막지하게 일어나잖아요.”그후로 그는 수맥으로 온천자리를 찾아도 입 싹 씻고 없다고 말한다. 그래야 자연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도 가급적 먹을 수 있는 걸로 입고 다니라고 충고했다.

“목화잎이나 삼베로 지은 옷이 좋아요. 명주도 견도 괜찮지. 돌, 흙, 나무, 짚 등 사람이 먹어서 괜찮으면 입어도 좋아요. 염색도 감물, 황토물, 쪽물, 밤물, 홍화물 이런 걸로 들이고.”그런 그가 최근 분통터져하는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쌀값.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인당 쌀 78kg 정도 먹는다데. 유기농쌀로 쳐도 25만 원쯤 돼요. 한국사람이 주식으로 1년에 25만원은 써야지. 그걸 비싸다고 깎어? 강남 가면 커피 한잔에도 8000원이야. 병원에 가서 무슨 병인지 알아내는 것만도 70∼80만 원은 족히 넘어요. 병원 안 가는 즐거움은 모르고 엉뚱한 데다 그렇게 돈 쓰고 있어요.”따끔한 충고였다.

그는 최근 한 권의 책을 냈다. 『돌파리 잔소리』(호미 간). 여기엔 그 동안 잘못 알고 있던 몸이야기, 병이야기, 음식과 약이야기 등이 빼곡이 차 있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기독교가 들어와 속회, 구역예배를 할 때는 호박죽, 식혜 등으로 대접했다. 그랬는데 선교사를 통해 교회에 가장 먼저 정착된 커피 따위 가공식품이 우리의 밥상을 변화시켜 마침내 우리의 심성과 체질을 바꿔 놓고 갖가지 질병을 유발시켰다. …우리가 얼마만큼 건강하게 사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자연을 접하고 사느냐와 비례한다. 학교 안 가고, 병원 안 가고, 비료와 농약 안 하고 살아온 농사꾼이 하는 음식이 약이 되고 약이 음식인 이야기, 자연이 살고 사람이 사는 길이야기를 들어보라.”하루 2시간 일하면 혼자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농민. 얽매임이 없는 가족관, 가족혈연에서 해방된 자유인 임락경. 정농회 이사이며, 북한강유기농업운동연합 의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오늘도 진도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된장독을 살피고, 계란 주으러 닭장으로 간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나았네에에에~”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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