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6월 2002-07-02   370

병든 사회의 자정역할을

택시기자 김성중 씨


는개비가 우산을 타고 내리던 지난 5월 17일 오후 5시, 기자는 ‘특별한’ 택시 한 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대하운수’라 적힌 택시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참여사회』가 찾아나선 독자는 김성중 씨(57세). 그가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민심파악 로드인터뷰’를 하리라. 조수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고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서려던 찰나 그는 불쑥 갈 데가 있단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안국동에서 출발한 택시는 어느새 사직공원 내 현정회라 적힌 조그마한 사당에 도착했다. 그는 대뜸 단군상 앞에 깔린 돗자리 위로 신발을 벗고 올라오란다. 생게망게한 섟에 그를 따라 넙죽 절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현정회(이사장 이항녕) 회원이었다.

‘현정회(이사장 이항녕)’는 1967년에 만들어진 사단법인으로 단군성전을 관리하며 외부적으로 개천절과 어천절(3월 15일, 단군이 하늘로 오른 날) 행사를 주관해 오고 있다. 난생 처음 만난 기자를 무조건 끌고 가 단군상 앞에서 절까지 하게 할 만큼 적극적으로 현정회 활동을 하는 그가 참여연대에 가입해 『참여사회』를 받아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답은 간단하다.

참여연대가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 벌이는 활동들에 일일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후원하고 싶고, 또 참여연대가 늘 민족의 입장에서 역사인식을 지니고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란다.

제약회사와 생활정보지 신문사, 애완견 센터를 거쳐 이순이 다 된 나이에 운전대를 잡은 이유는 명료했다.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민족의 혼을 일깨워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택시가 제격. 그는 지체 없이 택시 운전기사가 됐다.

지난 99년 라디오 광고를 통해 참여연대 회원이 됐다는 그는 “작지만 사회에 일익을 담당해야겠다”는 마음에 회비를 내기 시작했다고.

지난 4년간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정치권의 새판 짜기로 시도됐던 낙천·낙선운동은 그동안 도덕성이 결여되고 역사인식도 갖지 못한 정치인들이 시장꾼처럼 난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월간 『참여사회』 기사에 대해서도 그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NGO 활동소개가 퍽 인상적이었다”며 “인식의 지평을 미국인의 시각으로 만드는 세태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달했다. 우리 사회의 등불 같은 존재라 해도 언제나 흠은 있는 법. 참여연대와 월간 『참여사회』에 대한 쓴소리를 부탁했다.

“병들어 있는 우리 사회의 자정역할을 참여연대가 꼭 해주어야 합니다. 민족을 크게 생각하세요. 특히 음지를 헤아리셔야 합니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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