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6월 2002-07-02   717

누구를 뽑을 것인가

정치인들은 목욕탕에 가서도 제일 늦게 나오고, 교회나 성당에 가서도 기도를 제일 오래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왜? 그만큼 몸에 때도 많고 죄도 많기 때문에. 악마와 목사가 대형 공사를 따내기 위해 경쟁을 한다면 누가 이기리라 생각하느냐는 퀴즈도 있다. 정답은 “말할 것도 없이 악마가 이긴다. 악마는 뇌물을 써서 정치인들을 모조리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으니까”다. 우리 국민도 지금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비웃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욱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횡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 논리에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정치적 무관심을 더 촉진시킨다. 오로지 시장을 사수하기 위한 정치만 허용하는 듯 보인다.

시장에서의 투표는 1인 1표가 아니라 1달러 1표의 원리가 지배한다. 시장에서 100만 달러를 가진 사람은 1달러를 가진 사람보다 정확히 100만 배의 권력을 행사한다. 시장의 불평등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를 허수아비꼴로 만든다. 따라서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침해받는다. 시장체제의 지배자는 자기가 고용한 사람은 물론 시장체제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지배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은 자치와 자기책임의 원리를 저해한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공단 개발로 인해 안락한 주거지가 오염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라는 것이 정치인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유권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어떤 사람을 대변자로 뽑을 것인가 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저 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우선 떠올린다. 아테네를 도시국가라 부르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 우리나라의 읍, 면, 동 정도에 불과한 규모였다. 이 도시국가들은 고작 수천에서 수만의 인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노예, 외국인, 부녀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고작 전체 인구의 20% 정도만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소수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꾸려나간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엘리트에 의한 국민통치

직접 민주주의는, 아테네의 경우에서 보듯이, 국민의 의사를 스스로의 직접 참여로 결집하고 관철시킬 수 있다는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의 구성원과 영역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반면에 오늘날의 민족국가는 영토나 인구 면에서 그 크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활용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따라서 간접 민주주의, 또는 대의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수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에 의한 국민의 통치”는 실제로는 “국민으로부터 나온 엘리트에 의한 국민의 통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민의 정치참여는 직접 민주주의에서와 달리 간접적인 선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요컨대 국민은 자신을 지배할 엘리트의 선택권만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선거 기간에만 주권자 대접을 받을 뿐, 그 후에는 다시 무기력한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떨어진다. 다시 말해 “국민은 ‘예’ 또는 ‘아니오’밖에 말하지 못하는 주권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엘리트, 즉 국민의 대표는 입법활동 등에서 간접적으로만 유권자, 즉 국민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국민 자신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것도 선택의 범위가 대단히 비좁은 몇 개의 정당들이 이러한 국민의 대표자들을 미리 선발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한다.

진정한 주민의 대변자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제도는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의 바탕이라 하여, 인민의 직접 지배를 구현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방안의 하나로 기림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중차대한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수많은 후보들이 선거전선을 누비고 있다. 이 선거에서 어떤 인물을 뽑을 것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지역에서 큰 사업을 하거나 엄청난 부동산을 갖고 있는, 이른바 토호세력은 지금까지 권력과 밀착해서 많은 비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이 주민의 대변자로 뽑힐 경우, 주민의 복리나 권리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둘째, 독재정권에 봉사했거나 민주주의를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의 출마자로 적합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피땀 흘렸던 이들이 일차적인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눈앞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주 정당이나 정치적 입장을 바꾼 사람들은 국민의 진득한 신뢰를 받기 힘들다. 이들은 언제 다시 유권자를 배반할지 모른다. 어느 편이든 담담하게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이 오히려 국민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우리 정치의 고질병은 무엇보다도 ‘패거리 정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줄이나 인간관계, 학벌 등의 객관적 연고 대신에 합리적 정책이나 이념적 노선을 추구하는 인물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적 연고에 집착하는 사람은 나라를 말아먹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자연을 죽이면 자연이 죽인다. 따라서 자연을 잡지 않을 사람만이 우리의 진정한 대변자가 될 수 있다.

약속 적은 후보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힘을 사랑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랑의 힘을 가진 정치인이 우리의 대표로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군중보다 한 발짝 앞에 나가면 지도자가 되고, 두 발짝 앞서가면 방해꾼이 되며, 세 발짝 앞서 나아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저에게 표를 주시면, 이 마을에 마을 회관과 강당을 하나 짓고, 다리를 하나 세워드리며 병원도 하나 세우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의 선거유세에서 어느 후보자가 이렇게 공약했다. 그러자 주민 한 사람이 따져 물었다.

“마을에 강도 없는데, 다리는 세워서 뭘 합니까?”

그러자 그 후보가 자신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강을 하나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약속을 적게 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테니까.

박호성 본지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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