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6월 2002-07-02   824

기업주 책임경영 시작에 불과하다

이재현 회장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 소각


지난 4월 26일 대한민국 재벌 회장이 했다고 보기 힘든 결정이 발표됐다. CJ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인 제일제당 이재현 회장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 전량(약 600만 주)을 소각하겠다고 나선 것. 이재현 회장이 신주인수권을 소각하겠다고 나선 당일시가를 기준으로 할 때 그는 총 1000억 원대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포기한 셈이다. 이 회장이 소각하기로 한 600만 주의 신주인수권은 CJ엔터테인먼트의 총 발행주식 1430만 주의 약 42%에 이르는 물량이다.

신주인수권 포기로 도덕적·법적 시비 벗어

이재현 회장이 소각하기로 결정한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에 대해서는 그동안 부당지원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00년 3월 제일제당이 현물출자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떼어내 에스엔티글로벌에 넘기면서부터 세간의 의혹은 시작되었다. 에스엔티글로벌은 이재현 회장이 지배주주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제일제당의 알짜배기 사업부인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배주주에게 빼돌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변의 의혹이 불거졌다. 현물출자 직전 이재현 회장은 에스엔티글로벌 주식의 85% 가량을 인수해 대주주의 지위를 확보했다. 게다가 막대한 수량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도록 하여 다시 이를 인수했다. 이때 90억 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발행되었고, 그중 85%에 해당하는 76억200만 원을 이재현 회장이 인수했다. 한달 후 제일제당이 현물출자하고 주식을 넘겨받을 때 액면가의 5배로 주식을 계산해 준 것을 감안할 때, 제일제당이 액면가(1000원)에 신주를 살 수 있는 조건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는 점은 지나치게 특혜성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제일제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현물출자 받은 에스엔티글로벌은 CJ엔터테인먼트로 회사명을 바꾸게 되었다.

이재현 회장은 이처럼 특혜성 의혹이 짙던 신주인수권을 스스로 소각함으로써 특혜성이라는 의혹을 불식시켰다.

이재현 회장의 소각 결정이 발표된 후 참여연대는 이를 환영하는 논평을 통해 “문제가 된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 중 현재 남아 있어 처분이 가능한 물량 전체를 포기함으로써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사안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시장 차원의 감시가 대주주의 전향적인 자세와 조화를 이루어 결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로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성 제일제당 경영지원실장은 이재현 회장이 소각을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겉으로는 언론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신주인수권의 존재가 주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판단, 주주의 이익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 소각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사촌 이재용과의 차이

이재현 회장의 이번 조치는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풍토에서 전혀 유래가 없는 생소한 결정이다. 때문에 각종 부당거래행위로 부를 축적하고 기업의 지배력을 강화시켜 온 여타의 재벌들과는 차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같은 삼성가(家)이며 사촌간인 이재용 씨와는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재현 회장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부사채 취득 과정은 기존의 재벌들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이는 이재용 씨가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구입하는 과정과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의 경우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주주들에 의해 부당내부거래 시비가 이어지고 경영자로서의 도덕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의심받자, 스스로 문제가 되는 신주인수권을 소각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향해진 부도덕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킴과 동시에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굿모닝증권은 지난 2월 CJ엔터테인먼트가 코스닥에 등록할 때 “신주인수권이 행사되면 주당 가치는 60% 수준으로 하락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씨의 경우는 신주인수권에 대한 소각여부 외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현 회장의 경우 이미 경영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부당이득을 행사한 경우이고, 이재용 씨의 경우는 경영권의 승계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승계과정에서 문제화 된 것이다”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이재현 회장의 경우 그와 같은 부당행위가 시장에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같은 행위를 반복할 가능성이 적지만, 이재용 씨의 경우는 부와 경영권의 승계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바람직한 선택, 하지만 책임경영의 시작일 뿐

이재현 회장이 문제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을 소각하기로 한 결정은 분명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여 경영의 책임성을 높인 적절한 선택이다. 그의 용단에 대해 문제제기했던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일제히 환영의사를 밝혔고, 시장은 CJ엔터테인먼트 주식의 연 이틀 상한가 행진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이재현 회장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 600만 주를 소각한 것이 그가 취득한 모든 이익을 소급해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며, 이재현 회장이 인수했던 신주인수권부사채 가운데, 이미 장외에서 매각된 16억 원어치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행방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제일제당이 운영하던 다른 사업부문을 분사 내지 양도하는 과정에서도 대규모로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발행되었고, 그중 상당수의 실질적 소유자가 이재현 회장일 가능성이 크다.

2000년 8월 제일제당으로부터 현물출자를 받은 후 2001년 코스닥에 등록한 CJ푸드 시스템의 경우 이재현 회장의 지분은 1%도 못 미치지만, 제3자의 소유로 되어 있는 막대한 물량의 전환사채가 실질적으로 이재현 회장 소유일 가능성이 크다. 전환청구자 중에는 에스엔티글로벌의 전신인 IMM컨설팅그룹과 이름이 비슷한 ‘MM컴퍼니’와 에스엔티글로벌의 전 대표 등이 있어 이 전환사채의 실제 주인은 이 회장일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택배회사인 CJGLS는 애초 제일제당이 이재현 씨와 공동으로 인수한 후 이재현 회장이 지분 전부를 인수하여 단독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이 상당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될 경우 이재현 씨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재현 회장의 CJ엔터테인먼트 신주인수권 소각은 보기드문 용단으로 다른 기업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례이긴 하지만, 기업주의 책임경영의 시작일 뿐, 이재현 회장이 온전히 투명경영을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재현 회장의 사례를 토대로 기업주들은 더 이상 투자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부당내부거래는 시장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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