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6월 2002-07-02   894

국가인권위 인권단체와 같이 가야

국각인권위원회법 1년, 빛과 그림자


“동생 사건이 KBS <취재파일4321>에 방송된 후 뒤늦게 조사를 시작하는 듯싶더니, 참고인 조사 두 차례를 하고 그 이후에는 진전상황을 알 수가 없어요. 오래 두면 사건이 은닉돼 버립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디에 기대라고. 차라리 인권위원회에 제소나 하지 말 것을….” 서울구치소에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조순원 씨 사건으로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한 조혜은 씨는 끝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인권위원회 측의 무성의한 조사활동에 분노하고 있었다. 현재,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인권위원회의 미진한 조사활동에 실망하는 이가 조혜은 씨 하나만은 아니다.

인권위원회법 제정 1년 성과는 무엇인가

지난 2001년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된 후 1년이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기초로 지난해 11월 26일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법 제정 및 출범과정에서 난항을 겪었지만, 국민과 인권시민사회단체의 높은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법 제정 1년, 인권위 출범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 활동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이후 올 4월 30일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건수는 1671건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진정건수는 우리 사회에서 인권유린 행위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라는 점과, 인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진정건수에 비해 지금까지 인권위가 발표한 처리결과는 진정 1호 사건인 ‘제천시장의 장애인차별 사건’을 포함해 시정권고 처분 1건, 의문사관련 수사의뢰 1건, 긴급구제조치 2건에 불과하다.

물론 지난 4월 1일 비로소 직원채용이 이뤄져 그때부터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인권위원회로 밀려드는 진정사건에 대한 처리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사망사건 등 초기 수사가 중요하고 시간이 갈수록 증거확보가 어려워지는 진정 및 구치소내의 상습 구타사건 등 신속한 조사와 긴급구제조치가 필요한 사건들에 대한 우선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은 과연 인권위가 조사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인권단체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인권실천시민연대의 오창익 사무국장은 인권위원회의 조사활동이 미진한 데 대해 “인권위 직원들의 인권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인권위가 사건해결 의지만 있었다면 좀더 실질적인 구제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진정해결 의지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인권위는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어떠한 기구보다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기구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위원선임 과정과 설립준비기획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인권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특히 설립준비기획단(이후 사무처 준비단으로 변경, 구성에서 대다수 인권사회단체가 배제돼 인권위와 인권단체 간에 간극이 생기기도 했다.

이주영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준비기획단 구성과 관련 “민간단체에서 일하던 활동가 몇 명이 사무처 준비단에 들어갔다고 해서 인권·사회단체와 진정한 협의를 이룬 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향후 시민사회와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을 위해서는 이 지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측의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인권위와 인권사회단체 간의 불협화음은 인권위의 직원채용 과정에서 더욱 깊어졌다. 인권위원회의 직원채용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사전합격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인권위의 직원채용 과정에서 사무처 준비단 출신이 지원한 경우 거의 대부분 임용된 것으로 볼 때 사실상 사전합격 의혹이 있다”며 “인권위원회가 최종합격자 성명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인사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영애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사전합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며 “직원채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주어졌다면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곧 채용기준과 과정을 밝혀 의혹을 불식시키겠다”고 밝혔다.

인권위가 해결해야 할 과제

유시춘 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인권위원회는 다른 국가기관과는 대별되는 기관으로 NGO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외딴 섬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인권사회단체와의 관계회복이야말로 인권위원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도 “인권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기대치는 여전히 높다”며 “인권사회단체들과의 관계개선과 함께 시민사회단체 참여의 폭을 넓히고,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공개회의 원칙을 확립하고, 주요정책과 기획사업을 결정함에 있어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정인들과 인권단체들로부터 관료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인권위가 이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권에 기초한 조사활동과 구제활동을 펼치고, 진정인들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 또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인권위 내부적으로 위원들과 사무처간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고문변호사인 조용환 변호사가 해촉된 것도 이러한 내부갈등이 표출된 결과로 해석된다. 위원들과 사무처간의 역활분담을 명확히 하고 상호협조 체계를 마련하는 것 역시 인권위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영애 사무총장은 “여러 가지 사유로 위원들과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만간 모두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인권위원회에 대해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이는 인권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기대와 애정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위원회가 열린 자세로 인권사회단체의 비판에 귀기울이고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한태욱(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