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2월 2002-11-29   955

대선후보 정책 검증 보도 옥석을 가리자

지난 11월 13일 밤에 방송된 KBS(1TV)의 <대통령후보 초청 국민포럼>에서 50∼60대로 보이는 국민 패널이 정몽준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후보들이 선거 때 했던 공약(公約)이 선거가 끝나면 지켜지지 않는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정 후보가 당선되면 선거 때 약속한 정책들을 매년 점검하여 국민 앞에 평가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방송을 시청하면서 관심 있던 질문인지라 후보의 답이 기대됐다. 정 후보는 “정치인들이 선거 땐 지키지 못할 이런저런 약속을 하게 되므로 국민이 잘 가려 뽑아야 하고, 나는 대통령 선거에 처음 나온 것이므로 전에 나온 다른 후보와 다르다”고 대답했다.

정작 질문이 요구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사회자는 패널에게 다시 질문의 기회를 줬으나 후보의 답은 마찬가지였다.

TV 대담토론에 나오는 대통령 후보들이 곤란하거나 대답이 준비 안 된 질문을 받으면 핵심을 피해 가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고,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정책들을 잔뜩 늘어놓거나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이를 시청하는 국민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날 정 후보의 TV 대담토론은 내 심사를 뒤틀었다. 물론 내가 후보의 대답을 곡해했을 수 있으나, 이날 방송은 처음 투표를 한다는 패널이 물은 대통령 선택기준 질문에 대해 후보가 “대통령은 방송뉴스에 많이 나오는 만큼 얼굴이 잘생겼으면 한다…”고 농을 던지는 식이었다. 좌중에선 웃음이 터졌으나 나는 채널을 돌려버렸다.

다음날, 방송을 본 지인들에게 소감을 묻자 혹자는 “형편없는 코미디였다”고 하고, 혹자는 “성공적인 이미지 정치였다”고 갈렸다. 나는 그날의 토론이 정 후보 진영이 마련한 미디어선거 전략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TV 토론이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직접 대면하여 여러 정보를 얻게 되는 수단이자 후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를 준비하는 방송사나 이에 임하는 후보들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TV 대담토론 후보자 발언 검증 없어

방송사마다 대선후보 초청 TV 대담토론을 하고 있으나 일부 방송의 경우 진행이나 패널의 공정성 시비가 일기도 한다. 또 방송사가 추진했던 후보자간 합동토론회는 이회창 후보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16일 현재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간 전격 합의로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이 있을 예정이고, 공식 선거전에 돌입하면 오는 12월초에 세 번의 후보자 TV 합동토론회(국회가 정치개혁법을 개정하지 못하고 있어 기존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했을 때)가 열리게 된다.

앞으로 남은 TV 토론이 유권자들에게 후보자 선택에 유용한 정보를 주는 공간이 되려면 언론이 토론에 나온 후보들의 발언이나 정책을 비교 검증해 주어야 한다. 특히 신문이 TV 토론에서 후보들이 발언한 내용의 진위와 제시한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을 분석 보도해야 한다.

97년 대선 TV 토론을 보도한 당시의 일부 신문들은 음성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 가운데 후보자간 갈등을 부각시키거나 후보자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중계하면서 특정 후보에 대한 유겫恬??조장했다. 그리고 이런 신문들의 불공정 편파 보도와 구태 의연한 선거보도는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일부 신문의 특정 후보 편들기가 재현되고 있고, 흥미를 쫓는 여론조사 순위 발표와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후보자들의 동정이나 가십이 신문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뚜렷한 선거 쟁점과 정책들이 유권자에게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다만, 과거와 달리 후보들의 정책검증 기획보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신문들의 후보정책 검증보도 중 눈에 띄는 것은 시민단체와의 공동 기획물들이다.

언론사-시민단체 공동 대선후보 정책검증 기획들

시민단체와 공동기획을 처음 선보인 곳은 『문화일보』다. 『문화일보』는 경실련과 공동으로 10월초부터 ‘2002 대선 공약 검증’ 시리즈를 실었다. 10월 7일에는 ‘아파트 값 인하 등 주택정책’, 9일 ‘행정수도 이전’, 11일 ‘주 5일제 근무’, 21일 ‘경제성장률’, 24일 ‘북핵해법’, 31일 ‘여성정책’, 11월 11일에 ‘검찰개혁’, 12일 ‘대학입시’ 등 후보들의 관련 정책을 검증했다. 형식은 후보들의 분야별 정책을 비교하고, 후보자별 특정 공약 집중점검, 공약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제기 등 시민단체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공약의 문제를 검증하고 있다.

『한겨레』도 YMCA와 ‘대선 2002 이젠 정책선거다’란 기획을 마련해 10월 22일 첫 회에 유권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데 이어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10월 30일), ‘한국 경제의 비전’(11월 6일), ‘부패 근절 해법’, ‘빈부격차 해결’, ‘교육정책’ 등 5대 과제에 대한 후보자간 정책을 비교 검증한다.

『경향신문』은 참여연대와 함께 ‘2002 대선 정책으로 선택하자’란 기획으로 11월 5일부터 경제개혁, 6일 조세개혁, 7일 반부패개혁, 8일 사회복지, 11일 민생분야, 12일 정치개혁, 13일 외교안보 등 7개 분야에 대해 2개 지면을 할애해 참여연대 교수그룹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평가단이 평가한 내용을 기사화하고, 후보별 정책 비교분석과 후보진영 정책책임자 토론 내용을 실었다.

이들 기획은 유권자의 입장에서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비교 검증했다는 데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신문들도 학계 등 전문가들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정책 검증보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동아일보』는 한국정책학회, 그리고 『대한매일』은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증위원회에서 후보 정책과 선거공약에 대한 검증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중앙일보』는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후보자들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를 게재하여 다른 신문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정책 검증보도들에 대해 최근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부터 11월 14일까지 10개 신문들의 보도태도를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는 “시민단체와 공동기획 등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가 많아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검증보다는 인상평이나 단순비교가 주를 이루고 전문가 1인에게 의존하는 것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의 경우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이회창 후보의 공약을 편파적으로 많이 보도”하고, 『국민일보』는 “권영길 후보를 배제해 불공정 보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정치 시대에 유권자가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데 있어 언론보도는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독자들은 후보를 판단하기에 앞서 언론보도에 대한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의 의도적인 여론조작이나 편파보도로 판단을 그르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300여 개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대선유권자연대’는 국가보안법 철폐, 호주제 폐지, 부패 척결 등 3대 우선 청산과제를 비롯하여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대선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평가 검증해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시민단체의 활동이 성과를 거두려면 예상되는 일부 언론의 견제를 뚫고 이를 국민의 관심사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총선의 낙선운동 때와 달리 시민단체의 대선 활동이 언론에 의해 외면당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선택하기 이전에 후보와 관련해 제대로 된 정보를 주는 언론을 먼저 가려야 할 것이다. 혹시 자전거 경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는 신문이 있다면 당장 끊어버리자. 신문협회 약관에 계약 기간중 구독을 중지해도 받은 경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마음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권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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